모델 박우성(27)씨를 처음 만난 곳은 지난해 가을 ‘저스트비 홍대선원(선원장 준한 스님)’이었다. 저스트비 홍대선원은 2022년 홍대 앞 젊음의 거리에 문을 연 게스트하우스 겸 수행 공간. 키 크고 마른 체형에 삭발한 박씨는 말없이 수줍게 싱긋이 웃고 있었다. 준한 스님은 그에 대해 “모델 일을 하면서 명상과 요가를 하는 청년”이라며 “독학으로 명상을 배우며 정신적 어려움을 극복했고, 사람들과 만날 때 항상 웃는다”고 말했다. ‘마음을 찾는 사람들’ 인터뷰를 위해 지난 1월 말 연락하니 박씨는 런던에 있었다. 런던과 파리에서 오디션을 보면서 패션위크 무대에 서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줌과 메신저 인터뷰를 통해 MZ세대인 그가 어떻게 명상을 만났는지, 어떤 효과를 얻었는지 들었다.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1997년생이고요, 전남 광양이 고향입니다. 고교 2~3학년 때 모델에 관심이 생겨 대학 모델학과에 진학하며 상경했지요. 1학년 때 학교는 그만두고 에스팀이라는 모델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회사에 2~3년 소속돼 활동하다가 나와서 국내외 모델 일을 하면서 홍대 앞 저스트비 홍대선원에서 요가 가이드도 하고 있습니다.”
-명상을 하기 전 모델 생활은 어땠나요.
“회사를 나오고 혼자 활동하면서 정신적으로 심하게 방황했습니다. 아는 사람 없는 서울에서 지내느라 외로움이 컸고요, 알코올중독도 심하게 겪었습니다. 신림동 원룸과 고시원 등에서 살았는데, 술을 마시면 집을 찾아가지 못할 정도까지 갔지요. 술 마시고 도림천에서 노숙인 아저씨들과도 어울려 이야기도 많이 했어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들은 모두 바쁘고 모두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는데 나는 왜 여기 있나, 뭘 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고’ 이런 생각과 온갖 질문이 폭발적으로 가득했어요. 불만, 불안, 반(反)사회적 생각도 많았어요.”
-모델 일이 스트레스가 많은가요?
“흔히 모델을 ‘탈락을 가장 많이 경험하는 직업’이라고 해요. 늘 오디션을 봐야 하고, 하루 전까지도 일이 결정되지 않을 때도 많아요. 항상 대기하는 삶이죠. 게다가 내 작품을 한다기보다는 남의 작품을 표현해 주는 역할이라는 점, 거대한 소꿉놀이 속의 인형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 분야 사람들은 큰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그런 스트레스가 컸어요.”
-어떻게 명상을 통해 외로움과 알코올을 극복했나요.
“그런 상태가 너무나 괴로웠고요. 그 무렵 주변에 돌아가신 분이 계셨어요. 그분 명복을 빌어드리면서 저도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초기 불교 경전을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제 어머니는 천주교 신자이신데 동양철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노장 철학과 초기 불교 경전을 집에서 어렸을 때부터 접했어요. 그 가운데 ‘붓다의 말씀’이란 책을 국내외 어디를 가든 꼭 간직하고 다니며 읽었어요. ‘너희가 세상에 와서 흘린 눈물이 갠지스 강물보다 많다’는 부처님 말씀이 있어요. 그 구절에서 충격과 위안을 받았어요. 여러 경전을 보니 ‘부처님은 항상 결가부좌(結跏趺坐·양발을 반대편 허벅지 위에 얹고 앉는 자세)하셨다’고 해요. 어머니가 눈을 감고 명상하듯이 앉아서 하는 ‘향심(向心) 기도’ 드리는 모습도 많이 봤거든요. 부처님의 결가부좌에 마음이 꽂혀서 ‘부처님처럼 항상 저렇게 앉아서 항상 깨어 있어야겠다’ 마음먹고 항상 결가부좌로 앉기 시작했어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 결가부좌는 힘들지 않았나요?
“처음엔 다리도 저리고, 목도 아프고 그랬어요. 그런데 자꾸 하다 보니 몸이 열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그동안 살아온 습관 중 하나를 바꿔본 것이잖아요. 바닥에서도 의자 위에서도 항상 결가부좌로 앉았습니다. 이후로 시간만 나면 결가부좌로 앉았습니다. 오래 하면 좋은 줄 알고 계속 결가부좌를 했지요. 일이 없을 땐 사흘 동안 앉아 있은 적도 있어요. 한때는 귀마개 꽂고 생활한 적도 있어요. 제 호흡 소리를 잘 듣고 싶어서요. 그렇게 호흡법도 배우고 요가도 배우게 됐지요. 명상을 하면서 요가도 배우게 됐습니다.”
-명상과 요가를 하면서 외로움과 고통은 줄었나요.
“예, 하루하루가 달라졌습니다. 좀 더 밝아졌다고 할까요. 처음엔 명상하기에 좋은 시간을 찾았는데, 지금은 틈 날 때마다 결가부좌하고 눈을 감습니다. 요즘도 백 스테이지에서 잠깐 짬이 나면 결가부좌로 앉습니다. 그러면 스트레스도 사라지고 지혜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런던, 파리 등 외국에서 만나는 현지 젊은이들도 명상에 관심이 있던가요?
“그럼요. AI랑 스마트폰 이런 거 때문에 바쁘고 분산돼서 그런지 정신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어제 만난 음악하는 영국 친구는 ‘젠(Zen·禪)’을 알더라고요.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고, 오직 지금, 온리 나우(Only Now)!’ 이러더군요. 영국 친구, 미국 친구랑 이런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어요.”
-MZ세대로서 또래들에게 명상을 권한다면.
“우선 잠깐 멈추고 돌아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제 경험인데, 멈춤과 돌아봄이 꼭 필요합니다. 멈추면 그 자리가 있고, 멈췄을 때 보이는 그림이 있거든요. 명상은 멈추고 돌아보게 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지금은 삶에 만족하고 행복한가요.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