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전 대통령이 황성기독교청년회 간사이던 1911년 전국을 순회한 후 미국 YMCA 관계자에게 보낸 편지. /아트뱅크 제공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일제강점기인 1911년 황성기독교청년회(YMCA) 간사로 활동하며 1개월여에 걸쳐 전국을 순회한 후 미국 YMCA에 보낸 편지가 발견됐다. 고서점 ‘아트뱅크’ 윤형원 대표는 최근 미국에서 입수한 이승만의 편지를 본지에 공개했다. 이 편지 내용은 ‘YMCA 운동의 산증인’으로 꼽히는 전택부(1915~2008) 선생의 저서 ‘한국기독교청년회 운동사’(1978)에 인용된 적이 있지만 편지 원본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친구들에게(Dear Friends)’로 시작하는 1911년 7월 22일 자 편지는 한자 ‘皇城基督敎靑年會(황성기독교청년회)’와 영문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이 상단에 인쇄된 종이에 타이프라이터로 작성됐다. 이승만은 마지막에 자필로 ‘Syngman Rhee’라고 서명했다.

이승만은 1899년 1월 고종 폐위 음모에 연루돼 한성감옥에 투옥됐다가 1904년 8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1904년 11월 미국으로 건너가 1910년 프린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YMCA국제위원회의 제안으로 황성YMCA 간사를 맡은 이승만은 1910년 귀국해 약 1년 반 동안 활동하다가 ‘105인 사건’ 등 일제의 압제가 심해지자 1912년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이승만은 이 편지에서 “브로크만씨와 함께 5월 16일부터 6월 21일까지 37일간 전국 13개 선교 거점(스테이션)을 방문해 33차례 집회를 갖고 7533명의 학생을 만났다”고 적었다. 그는 전체 여정이 총 2300마일(약 3700㎞)에 이른다며 구체적으로 ‘철도 1418마일, 기선 550마일, 말 265마일, 도보 7마일, 인력거 2마일’ 등 운송 수단별 이동 거리도 명기했다.

이승만은 편지에서 “대부분 사립학교들은 재정난과 정치적 이유 때문에 폐교 위기에 놓여 있지만 선교사들이 세운 미션스쿨은 학생이 넘쳐 시설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적었다. 학생들의 전도 열기와 성과도 소개했다. 전주의 한 열네 살 남학생은 200명 넘게 전도했으며, 선천(宣川)의 학생 124명인 중학교(신성학교)는 졸업생 한 명을 유교적 전통이 강한 경상도 북부에 선교사로 파송하기도 했다고 적었다. 7개월 만에 휴가를 얻어 돌아온 이 선교사는 이승만 일행과 같은 기차를 타고 선천역에 도착했는데, 학생들과 매큔(McCune) 교장까지 역에 나와 목말을 태워 행진하며 환영했다고 묘사했다. 이승만은 또 여행에서 귀환하는 길에 송도(개성)에서 하계 연수(Summer Conference·夏令會)를 성황리에 가졌다고 보고하며 “새 학년에는 이 땅의 많은 젊은이가 그리스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편지를 마무리했다.

이 편지를 검토한 이승만 연구자 오영섭 독립기념관 이사는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이승만에게 YMCA 간사 시절은 전국적 인지도를 높인 기간”이라며 “그럼에도 자료가 부족해 이승만 생애 중 연구가 미진한 기간이 바로 YMCA 시절”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그동안 이 편지의 존재는 알려졌지만 원본을 보지 못해 연구자들은 전택부 선생의 책 내용을 재인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원본 자료가 발견돼 이승만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