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90세 ‘어르신’이 진행하는 주간 라디오 프로그램이 1000회를 맞았습니다. 지난주(4월 19일) 1000회 특집 공개 방송을 한 극동방송의 ‘만나고 싶은 사람, 듣고 싶은 이야기’(이하 ‘만나고’)입니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지난 4월 16일(음력 3월 8일)로 만 90세를 맞은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입니다.
매주 금요일 오후 1시 라디오와 유튜브로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은 2005년 1월 28일 첫 방송부터 1000회까지 김 목사가 진행했습니다. 한 번도 쉬지 않고요. 생방송이 원칙이지만 해외 출장이 잦은 김 목사의 사정상 녹음을 하더라도 결방은 없었습니다. 만 71세에 시작해 90세까지 19년이 흘렀지요. 김 목사는 지금도 새벽 5시에 출근하고, 계단은 2~3개를 성큼성큼 올라갑니다. 체력뿐 아니라 기억력도 또렷합니다. ‘100세 시대’라고들 하지만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000회 방송은 그래서 가능했습니다.
저는 2년 전 900회 공개방송을 방청하며 취재했습니다. 당시에도 “김 목사님 컨디션으로 봐선 1000회까지는 거뜬하실 거 같다”는 이야기를 나눴는데, 과연 그렇게 됐습니다. 1000회 역시 공개 방송으로 진행됐는데요, 여러분도 유튜브로 보시면 ‘앞으로도 당분간 진행자가 바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드실 겁니다. 900회 당시 ‘TV까지 포함해도 송해씨를 빼곤 최고령 진행자’라고 했는데 이제 송해 선생도 세상을 떠나셨으니 김 목사의 최고령 진행자 기록은 계속 이어질 것 같습니다.
김 목사가 이 프로그램을 맡게 된 것은 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직을 은퇴한 후 청취자들과 직접 만날 통로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알려진 대로 김 목사는 1973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서울 여의도 집회를 열정적으로 통역해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미국에서도 유명해졌지요. 이후 역대 대통령은 물론 정계, 재계, 연예계, 스포츠계까지 두루 막역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으로 유명하지요. 그는 프로그램을 맡고 나서 출연자 섭외에 이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했습니다. 김영삼·이명박 전 대통령, 고(故) 방지일·김준곤·조용기·하용조 목사, 구봉서·김혜자·인순이·이정재·김원희씨 등 방송연예인과 이영표·최경주·장영란 선수 등이 ‘만나고’에 출연했습니다. 명사들만 출연한 것은 아닙니다. 굴착기 운전기사, 환경미화원, 이발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이 출연했다고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외부 출연진을 섭외하기 어려울 때에는 청소담당 직원, 주차 직원, 신입직원 등 극동방송 직원을 출연시키기도 했다네요.
‘중매 성사’라는 망외(望外)의 소득도 있었습니다. 1000회 특집엔 울산극동방송 운영위원장을 지낸 권오설 장로가 초대 손님으로 출연했습니다. 그는 2017년 ‘만나고’에 출연했는데 당시 40세 가까웠던 미혼 아들의 혼사가 큰 걱정이었다네요. 그래서 방송에서 기도제목으로 아들의 결혼을 이야기했답니다. 그랬더니 이 프로그램의 애청자가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왔답니다. “나도 시집 보낼 딸이 있다”면서요. 그렇게 선남선녀가 만나게 됐는데요. 권 장로는 방송에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맞선 자리에서 길어야 10분 앉아있던 아들이 그날은 밤 12시 넘어 들어왔다.” 두 남녀는 결혼해 손녀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출신 제갈성렬 해설위원도 이 프로그램에서 아직 결혼하지 못했다고 밝혔더니 청취자가 “내 딸과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전화를 걸어와 만남이 시작돼 결혼에 골인했다고 합니다.
방송에선 김 목사의 ‘애드립’이 속출합니다. 이날도 방송 시작 부분에서 김 목사는 출연자들에게 “1000회 라고 하니 긴장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 하는데, 그냥 막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중간중간에 출연자의 말을 끊고 돌발질문도 막 던졌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방송을 통해 아들 결혼이 성사된 권오설 장로에겐 갑자기 ‘사돈의 성함’을 물어 당황하게 했습니다. 권 장로는 “(갑자기 물으니)멘붕이 온다”고 했습니다. 방송인 김원희 ‘집사’에겐 거듭 “여태 권사가 왜 안 됐나요? 헌금을 적게 했나? 전도를 적게 했나?”라며 조크를 던졌습니다.
1000회 특집은 의미와 재미를 균형을 오가며 진행됐습니다. 한미동맹재단의 유명환 이사장(전 외무부 장관)과 임호영 회장(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초대해 한미동맹의 의미를 문답을 통해 설명했고, 미국·홍콩·몽골·우크라이나 극동방송 대표를 패널로 초대해 각국의 방송 선교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청취자 사연 중 눈에 띈 것은 외화벌이 북한 주민이었습니다. 목소리를 변조한 그 청취자는 “극동방송을 통해 성령 감화와 영혼 구원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극동방송 아나운서를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공산권 선교라는 극동방송의 설립 취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김장환 목사는 방송 말미에 “앞으로 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이 프로그램을 인수받아 할 때에도 (청취자 여러분이)2000회, 3000회 건강하게 극동방송 지켜주시고 사랑해주신다면 예수님 오실 때까지 극동방송은 오직 복음, 오직 복음, 오직 복음만 전할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김 목사는 ‘후임’을 이야기했지만, 앞으로도 ‘90세 현역’의 방송 진행은 꽤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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