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문화재(文化財)’라는 말이 17일 국가유산청 출범과 함께 ‘유산(遺産)’이란 용어로 바뀐다. 문화재란 말은 일본이 독일어 ‘Kulturgut’를 ‘문화’와 ‘재산’이란 말을 더해 만든 용어. 우리말에 수용된 근대 용어들은 서양 세력과 맞딱드린 일본이 19세기 이후 만들어 지금까지 남아있는 말이 상당히 많다.

19세기 후반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일본 지식인들은 ‘문명 개화’를 화두로 삼고 기존 한자어에 없는 서양 개념들을 번역한 용어를 만들어냈다. ‘society’를 번역한 ‘사회(社會)’가 1874년 등장했다. ‘right’를 번역하기 위해서 ‘권리(權利)’라는 말이 만들어졌고, ‘democracy’는 ‘민본주의(民本主義)’ 또는 ‘민주주의(民主主義)’로, ‘individual’은 ‘개인(個人)’, ‘photograph’는 ‘사진(寫眞)’이란 새로운 용어로 번역됐다.

기존에 있던 말이 번역어로서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 것도 있었다. ‘freedom’과 ‘liberty’는 ‘자유(自由)’로 번역됐는데 ‘남에게 구애받지 않고’ ‘제멋대로’라는 뜻인 기존 용어가 근대적인 의미로 바뀐 것이었다. ‘자연스럽게’라는 부사적 의미인 ‘자연(自然)’은 ‘nature’의 번역어로 ‘삼라만상’에 가까운 의미를 지니게 됐다.

이 같은 용어들은 현재 우리말 속에도 정착됐다. 그러나 지나치게 어렵거나 우리와 정서가 다른 용어들은 순화 대상으로 지목돼 왔다. 얼마 전까지 빈번하게 쓰이던 ‘망년회(忘年會)’가 ‘송년회(送年會)’로, ‘노견(路肩)’이 ‘갓길’로 바뀐 것이 그 예다. 하지만 ‘사양(仕樣·설계 구조 또는 설명)’ ‘기라성(綺羅星·빛나는 별)’ ‘십팔번(十八番·단골 노래)’ ‘제전(祭典·잔치)’ ‘택배(宅配·집 배달)’ ‘견출지(見出紙·찾음표)’ 등처럼 국립국어원이 2006년 낸 ‘일본어투 용어 순화 자료집’에 실린 용어들이 여전히 널리 쓰이고 있다.

문화 용어 중 일본식 한자어인 줄 잘 모르고 쓰는 경우도 많다. ‘간담회(懇談會)’는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란 뜻이지만 한자를 봐도 의미를 유추하기 쉽지 않다. ‘낭만(浪漫)’은 ‘매우 정서적이며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나 분위기’란 뜻인데 근대 일본에서 ‘romance’ 또는 ‘romantic’과 발음이 비슷한 한자를 써서 만든 말이다. 음악 용어인 ‘광시곡(狂詩曲)’은 ‘rhapsody’의 번역어인데, 일본 에도시대에 유행했던 자유체 한시인 광시(狂詩)에 빗대 형식적 자유로움을 표현한 말이라 우리 입장에선 고개를 갸우뚱거릴 만하다. ‘잊지 않도록 적은 글’이란 뜻의 ‘각서(覺書)’는 일본에선 ‘깨달을 각(覺)’자에 ‘기억하다’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용어지만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잘 쓰지 않던 말이다.

김세중 전 국립국어원 공공언어지원단장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용어이더라도 이미 우리말이 된 말을 무조건 배척할 수는 없다”면서도 “일본어식 해석이 아니면 뜻이 통하지 않거나 정서를 알기 어려운 용어들은 골라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