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加)’에서 ‘힐혜자’(黠慧者·두루 지혜를 갖춘 사람)까지 가나다 순으로 11만9487개의 표제어, 200자 원고지 34만장 분량, 편찬 기간 40년(1982~2022), 사업비 385억원….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당대의 대강백(大講伯) 지관(智冠·1932~2012) 스님이 평생을 바쳤던 불교 어휘 대사전 ‘가산불교대사림(이하 ‘대사림’)’이 전 20권으로 완간됐다. ‘어휘의 숲’이란 의미에서 ‘사전’이 아닌 ‘사림(辭林)’이란 제목을 달았다. ‘가산(伽山)’은 가야산을 뜻하는 지관 스님의 법호다.
‘대사림’은 지관 스님이 동국대 교수 시절이던 1982년 표제어 15만개를 고르는 것부터 시작됐지만 1권이 나온 것이 1999년일 정도로 지난한 작업이었다. 지관 스님이 대사림을 펴내기로 마음먹은 것은 ‘한국 불교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는 “한자는 중국어가 아니라 동아시아 공통의 사유 언어”라는 생각으로 중국과 일본도 못할 어휘 사전을 만들겠다는 뜻을 세웠다. 서양 사전처럼 ‘정의(定義)’를 제시하기보다는 다양한 용례를 제공함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뜻을 파악하도록 하는 집필 원칙도 세웠다.
1991년엔 대사림 편찬 작업을 담당할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을 설립했다. 연구원을 통해 지관 스님은 한문과 불교 연구 인력을 양성하고 그 인력들이 대사림을 편찬하도록 교육과 편찬을 병행했다. 원문 검토부터 윤문 등 20여 명의 전체 연구자가 교차 점검하고 합의한 경우에만 원고를 인쇄로 넘기는 식의 다자결집(多者結集) 방식을 택했다. 공동 작업에 방해되는 ‘사이비 지식인 5가지 기준’도 정해 연구원 출입을 제한했다고 한다. 그 기준은 ‘아는 것 없이 아는 척하는 이’ ‘동료 집단을 외부에 비판해 이름 얻는 이’ ‘세상을 다 아는 척하는 이’ ‘가진 것에 인색한 이’ ‘주기적으로 뽐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이’였다고 한다.
지관 스님이 ‘대사림’에 기울인 노력은 불교계 안팎에 유명하다. 조계종 총무원장(2005~2009) 시절엔 오후 5시에 집무실에서 퇴근해 걸어서 창경궁 앞 연구원에 도착하면 오후 9시까지 대사림 원고를 정리하다가 다시 원고를 싸서 거처인 정릉 경국사로 가져가 밤 늦게까지 작업했다. 화재에 대비해 모든 원고 사본은 은행 금고에 따로 보관했다. 이런 엄격한 원칙 때문에 대사림은 스님 생전엔 12권까지만 발간됐지만 사후에도 똑같은 원칙을 지킨 덕분에 마침내 완간될 수 있었다.
1991년 개원부터 현재까지 가산연구원이 대학로 주변에서만 옮겨다닌 것은 지관 스님의 뜻이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부터 강주(講主) 등 ‘어른’ 역할을 해온 스님은 배낭 메고 버스 타고 다니면서 젊음의 활력과 함께하고 싶어했다다는 것. 2002년 월드컵 때는 스님이 직접 붉은 티셔츠를 사서 연구원들에 나눠주고 함께 입기도 했다고 한다.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은 27일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봉안 법회를 갖고 조만간 통도사 적멸보궁에서도 봉안 법회를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