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경봉(鏡峰·1892~1982) 스님은 당대 최고의 고승이자 도인이면서 ‘쉬운 법문’으로도 이름이 높았다고 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팔로워 수십만~수백만’에 이르는 인플루언서 혹은 명강사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스님은 노년에도 매월 한 번씩 직접 법문에 나섰는데, 그 당시에 1000명씩 모였다고 하지요. 극락암은 뒤로 영축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경치가 빼어나지요. 그렇지만 1000명씩 앉을 자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없습니다. 불자들은 마당에도, 돌에도 앉거나 서서 스님의 법문을 들었답니다. 그 ‘인기의 비결’을 느낄 수 있는 책이 나왔습니다. ‘사바를 무대 삼아 멋있게 살아라’(효림출판사)입니다.
고교생 때 경봉 스님을 처음 만나 유발(有髮) 상좌로 모셨던 김현준 불교신행연구원장이 스님의 법문 중 생활에 도움이 될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김 원장은 2년 전에도 경봉 스님 일화를 모은 ‘뭐가 그리 바쁘노?’를 펴낸 적 있지요. 김 원장은 통화에서 “그 당시 1000명이 모인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며 “그 인원에게 점심 대접 준비하느라 후원은 난리를 치르곤 했다”고 했습니다.
당시엔 더러 녹음도 했지만 주로 법문 내용을 정리해 소책자로 만들어 다음 달에 나눠주곤 했답니다. 대략 85권 정도 나왔다고 하네요. 책 내용 몇 부분을 소개해드립니다.
요즘은 ‘행복’이란 단어가 흔하지만 옛 스님들은 ‘복’이란 표현을 많이 썼지요. 법문 중 ‘복 짓기’에서 눈에 띄는 점은 새해 인사 ‘복 많이 받으세요’는 정작 상대방이 아니라 나를 복되게 만든다는 말씀입니다. 김 원장은 “다음에는 마음을 닦고 선을 닦는 데 도움을 주는 도인들의 수행과 삶을 담은 선수행(禪修行) 도담집(道談集)을 펴낼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복은 지어야 받는 것
“새해가 되면 서로 ‘복 많이 받아라’고 인사한다. 이런 인사는 참 좋다. 상대방에게 복이 깃들기 바라는 축원이 담겨 있기 때문이요, 이렇게 축원하는 마음이 나를 복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복을 많이 받아라’고 하면 상대는 그 말 자체를 기뻐한다. 그러나 ‘복 많이 받아라’는 말을 듣는다고 하여 상대방이 복을 받게 되지는 않는다. 복은 스스로가 지어야 받는 것이지, 남의 말에서 복이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지은 복은 절대로 남에게 가지 않고 나를 떠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 복은 특별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나 있다. 일상생활을 하는 어느 곳에나 있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그 속에 복이 있고, 밥 먹고 대소변 보고 일하고 공부하며 살아가는 그 속에 복이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복을 보지도 느끼지도 누리지도 못하나? 바로 이기심이 눈앞을 가려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오히려 ‘나’만 불행하고 나만 힘들게 지내는 듯이 우울하게 생각하며 살아간다. 만약 일상생활에서 복을 보고 느끼고 누리면서 살고자 한다면,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지금의 한 생각을 잘 다스려야 한다. 지금의 한 생각이 복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복을 쫓아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남의 이익과 행복을 앞세우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의 이익과 행복을 앞에 둘 것이냐, 상대의 이익과 행복을 앞에 둘 것이냐’를 생각하면서 갈등을 많이 하게 된다. 그때가 중요하다. 바로 그때 나의 이익을 버리고 바른 마음으로 살면 인생이 바뀐다. 바른 한 생각이 인생을 바뀌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늘 한 생각을 바르게 하면서 살아야 한다. 바르지 않으면 복이 깃들지도 않고 복을 누릴 수도 없다.”
◇복을 아껴라
“복을 짓고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복을 아낄 줄도 알아야 한다. 지금 복이 있거나 여유가 있다고 하여 복을 까먹으면서 남을 멸시하고 방탕하게 살면, 내생(來生)이 아니라 바로 이 금생(今生)에 그 과보를 받게 된다. 아무쪼록 지금 힘이 있거든 힘껏 남을 위할 줄 알고 복을 아끼면서 음덕을 쌓아가라. 복을 짓고 복을 쌓아서 세세생생 복된 삶을 누리고, 복을 아끼고 가꾸면서 평화롭게 행복하게 살기 바란다.”
◇참을 인(忍)자 세 개를 품어야 하는 이유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사바(娑婆)세계이고, 사바는 감인(堪忍), 곧 ‘잘 참아야 한다’는 뜻을 지닌 인도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는 ‘참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좋은 것에 대해서도 푹 빠지는 것을 참을 줄 알아야 하고, 싫은 것에 대해서도 인내하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실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정말 중요한 것은 인욕(忍辱)과 인내(忍耐)다. 그런데 흔히 인욕이라면 남한테 당한 것을 잘 참는 것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참을 인(忍)은 남한테 당하는 것만 참으라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 일어나는 나쁜 버릇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 특히 나의 급한 성질, 고집, 신경질을 잘 참아낼 줄 알아야 한다.”
◇급한 성질과 고집과 신경질!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얼굴이 평온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 나는 그들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등을 탁 치면서 꾸짖는다. ‘무엇 때문에 수심·근심 보따리를 잔뜩 안고 다니느냐! 그 근심걱정 보따리가 다 성질이 급하고 고집이 세고 신경질이 많은 데서 생긴 것이다. 고쳐라! 고무줄이나 용수철은 당기면 늘어나고 놓으면 오므라든다. 이것처럼 사람도 신축성이 있어야 세상을 살면서 상함이 없이 살아갈 수 있다. 버스에 쿠션이 없으면 엉덩이가 어찌 안 상하겠느냐?’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이 ‘예’하면서 반성을 한다.”
◇암소 잡은 요량 하소
경봉 스님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활용한 비유로 쉽게 법문했다고 합니다. 조선 영조와 당 태종, 자장 율사를 비롯해 스님이 들은 당대의 사람 이야기까지 다양하게 등장하지요. ‘괴짜 재담꾼 정만서 이야기’도 그 중 하나입니다.
“경주에 살던 정만서라는 사람이 한양으로 가던 중 노자가 떨어져 이틀을 굶었다. 너무 배가 고파 주막에 간 정만서는 소 불알을 삶아놓은 것을 보고 돈도 없이 일단 썰어달라고 해서 술과 함께 배불리 먹었다. 음식값 내라는 주모에게 정만서의 대답은 ‘암소 잡은 요량 하소’였다. 불알이 없는 암소를 잡은 셈치라는 소리였다. 주모와 남편은 화가 났지만 상대가 ‘천하의 잡놈 정만서’라는 것을 알고는 돈 받는 것은 포기하고 도리어 ‘고깃값 대신 소리나 한번 해보시오’라고 청했다. 정만서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온갖 장기를 다 펼쳤다. 그러자 길 가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 주막은 최고의 매상을 올렸다고 한다. 우리도 사람과 물질에 걸려서 번뇌망상과 근심걱정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면 정만서의 ‘암소 잡은 요량’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애초 불알이 없는 암소 잡은 요량을 하면, 한 생각 막혔던 것이 풀리고 꿈에서 깨어날 수가 있다. 곧 한 생각 애착을 비우고 생생한 산 정신으로 일하면 절후(絶後)에 갱생이라. 끊어진 곳에서 다시 사는 수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사바세계를 무대로 삼아 연극 한바탕 멋지게 하기 바란다.”(♣책 제목이 이 대목에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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