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이 광복회 등으로부터 ‘뉴라이트’ 인사로 지목되는 등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광복회 등은 김 관장이 뉴라이트 인사이며 그의 발언은 ‘친일적’이라고 지적하면서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학자로 볼 수 없다는 전문성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학계에선 ▲보수 성향의 인사이기는 하지만 ‘뉴라이트 인사’로 볼 수는 없고 ▲그의 발언을 ‘친일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다만 독립운동사 전공자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①'뉴라이트’로 보는 것은 무리
김형석 관장은 학자로서보다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한민족복지재단·북한어린이돕기 사무총장을 지내는 등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사업 분야에서 주로 활동했다. ‘해방 후 북한 기독교사 연구’ ‘북한 인권문제와 대북지원’ 등 북한 문제에 관한 논문도 집필했다.
최근엔 저서를 통해 한국 현대사 문제를 다뤘다. 2018년 ‘광주, 그날의 진실’에선 광주 북한군 개입설을 부정하고 5·18의 평화 사상에 대해 썼다. 2019년 낸 ‘안익태의 극일 스토리’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를 친일파로만 매도할 수는 없다는 주장을 담았다. 2022년 ‘끝나야 할 역사전쟁’에선 이승만과 김구를 모두 국부(國父)로 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근현대사 전공자 A씨는 “김 관장이 보수 성향 인사인 것은 맞지만, 뉴라이트 계열 인사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뉴라이트의 주류는 과거 좌파에서 전향한 학자들로 일제 때 경제 발전이 있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지만 김 관장은 그쪽 라인이 아니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펼치고 있다”고 했다. 김 관장이 이승만과 김구를 모두 ‘국부’로서 높이는 것 역시 뉴라이트의 주장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②과연 ‘친일적 발언’이었나
광복회 등은 김 관장의 몇몇 발언을 두고 ‘독립기념관장으로서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김 관장은 지난 8일 취임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을 언급하며 “사실상 오류들이 있다”고 했다. 또 “잘못된 기술에 의해서 억울하게 친일 인사로 매도되는 분들이 있어서도 안 되겠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자유민주를 위한 국민운동’의 행사에서 했던 발언도 도마에 오른다. 김 관장은 “대한민국이 1945년 8월 15일 광복됐다며 그게 광복절이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참 많은데 역사를 정확하게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김 관장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이야말로 광복이라고 주장했다. 2022년 저서 ‘끝나야 할 역사전쟁’에서는 “’국부 논쟁’을 끝내고 이승만과 김구를 모두 ‘건국의 아버지’로 둬야 국민 통합이 가능하다”고 했다. 또 “안익태를 항일과 친일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로 재단할 수 없다”고 했고, 백선엽 장군에 대해서는 “간도특설대에 근무한 사실만으로 진실을 오해한 것 아니냐”며 “친일파라는 불명예를 쓰고 별세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발언들이 ‘친일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한 것인지는 의문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친일인명사전’은 출간 당시부터 선정 기준이 정략적이고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아 왔고, 그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을 결격 사유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광복’이 1945년 8월 15일이 아니라는 것 역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광복’의 뜻을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음’이라고 한 것을 볼 때 광복이 1948년 8월 15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쟁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이를 친일적인 발언이라고 매도하기는 어렵다.
‘이승만과 김구를 모두 국부로 삼아야 국민 통합이 가능하다’는 것은 손세일 전 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이미 다수 인사와 학자들이 주장해 왔던 것이다. 안익태와 백선엽은 부정적 평가 못지않게 애국가 작곡과 6·25전쟁의 공적 등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특정 인물과 사실을 항일 아니면 친일이라는 극단적 잣대로 재단할 수는 없다는 것은 학계만이 아니라 일반의 상식이기도 하다.
③독립운동사 ‘전문성’은 의문
그러나 김형석 관장이 ‘독립운동사를 연구한 학자로서 전문성이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선 의문스럽다는 의견이 많다. 한국 근현대사 전공자인 A씨는 “학계에서 활동하던 사람이라기보다는 사회운동가로 봐야 한다”고 했고, 한국정치사 연구자 B씨는 “독립기념관장이 되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인물”이라고 했다.
김 관장은 1995년 경희대 사학과에서 ‘명말의 경세가 서광계 연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광계는 명나라 말기 천주교 신자로 서양의 과학과 기술을 중국에 소개한 인물이다. 박사 학위 논문만을 볼 때 독립운동사와 관련이 없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김 관장이 독립운동사 연구와 아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1990년대 중반까지 ‘남강 이승훈 연구’ ‘서북 기독교계의 독립운동 고찰’ ‘상해거류 한인 기독교도들의 민족운동’ 등 주로 근현대 기독교 계열 독립운동과 관련된 논문을 썼다.
김 관장에 대한 비판에는 독립유공자 유족이 독립기념관장을 맡아 왔던 관례가 연속으로 깨진 것에 대한 반발도 작용했으리라는 시각도 있다. 1986년 안중근 의사의 종질인 안춘생 관장이 처음 취임한 이후 지금까지 11명의 관장 중 8명이 독립운동가의 유족이었다. 그러나 2004년 언론인 출신의 김삼웅 관장이 이 관례를 깨 광복회 등으로부터 반발을 샀다. 이후 2021년 학자 출신인 한시준 관장이 임명된 데 이어 현 정부에서 또 비(非)유족 인사가 임명됐다는 것이다.
☞뉴라이트
한국에서 200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새로운 보수주의자’를 지칭하는 말. 반공을 우선한 기존 보수 대신 시장경제 이념을 표방했으며, 좌파에서 전향한 학자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일제 시기 경제발전이 이뤄졌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은 ‘일제 미화’라는 비판을 받았다. 때로는 보수를 폄훼하는 용어로 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