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김하온씨가 머리 위에 싱잉볼을 올려놓고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했다. 그는 “명상은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다”며 “명상은 나와 독대하는 성스러운 장소 같은 의미”라고 말했다. /조인원 기자

“안녕, 나를 소개하지/이름은 김하온/직업은 트레블러/취미는 메디테이션….”

지난 2018년 힙합 경연 프로그램 ‘고등래퍼 2′는 ‘명상 래퍼’ 김하온(24)의 등장으로 화제가 됐다. 욕설을 비롯해 온갖 ‘센 가사’가 일반적인 힙합 경연에서 ‘착하고 철학적인 가사’로 파죽지세 올라가 우승까지 차지했기 때문.

게다가 앳된 표정으로 웃으며 수줍은 듯 내놓는 한마디 한마디는 일생을 달관한 사람의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경연 이후 6년, 그는 여전히 매일 명상을 하고 있다. 그는 명상에 대해 ‘언제든 나와 독대하는 성소(聖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김씨를 만나 명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고교 2학년 때 자퇴하고 출연한 ‘고등래퍼 2′에서 우승하면서 ‘취미가 명상’이라고 해서 화제가 됐지요. 랩이 일종의 탈출구였다고요?

“그때까지 저는 ‘한 반에 꼭 한 명씩 있는 키 작고 웃기는 아이, 잘 까부는 친구’ 정도였어요. ‘남들은 뭔가를 잘해서 인정받고 사랑받는데 나는 특출난 게 없다는 걸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외모가 빼어난 것도 아니고, 열등감이 많았지요. 나는 남들보다 뭘 잘할 수 있을까, 진심으로 찾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 랩 잘한다고 칭찬해 주고 해서 고1 때 ‘고등래퍼 1′과 ‘쇼미더머니’에 나갔는데 탈락했어요. 저는 ‘나는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뛰는 놈’이었던 거죠. 방송이라는 큰 무대에 가보니 ‘자기애(自己愛)’를 넘어서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뭔가 영감을 얻었죠. 그러면서 기왕 랩을 업으로 삼기로 했으니 한 단계 뛰어넘어야겠다는 생각에 자퇴를 결심하고 아빠한테 ‘자퇴 계획서’를 냈어요.”

-’자퇴 계획서’요?

“자퇴해도 영어와 수학은 계속 공부하겠다. 음악을 1주일에 몇 편을 만들겠다. 그 음악 만든 거로 기회가 있으면 계속 도전할 것이다. 그것을 통해 나는 이루어낼 것이다. 이런 내용을 A4지에 적어서 드렸어요. 며칠 후에 ‘OK’가 떨어졌어요. 그렇게 자유를 얻었어요.”

-불안하지는 않았나요?

“저는 트랙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탈출했다고 생각했어요. 제 인생 최고의 1년을 꼽으라면 그때예요. ‘나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때 책을 엄청나게 읽었고, 매일 일기를 썼고, 산책을 무척 많이 했어요. 그 무렵 ‘리얼리티 트랜서핑’이란 책을 읽으며 명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어요. 뭔가 나를 진화시키고 더 낫게 만드는 수단으로 보고 진중하게 대하기 시작했지요.”

-독학으로요?

“일단 부딪쳐 본 것 같아요. 처음엔 ‘사람들은 명상을 왜 하지?’ 명상이라는 행위가 신비롭고 어떤 거룩한 것으로 표현되고 하는데, 이게 뭐가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미디어에 비춰지는 명상을 따라 해 봤어요. 그때 침대에 제가 앉는 자리가 있었는데 거기 앉으면 맞은편에 공기청정기가 있었고 파란색 점 같은 작은 불빛이 있었어요. 걔(파란 빛)랑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게 제 명상 자리였어요. 그런데 해보니 너무 좋은 거예요. 뭔가 더 차분해지고 나와 독대(獨對)하는 느낌, 내 안에서 계속 일어나는 생각과 그것을 객관적으로 재인식할 수 있었고요. 내 존재의 감각들, 오감(五感), 숨이 들어왔다 나가는 것들, 이런 것이 느껴지면서 뭔가 나와 일대일로 있을 수 있었어요. 남과 비교하지 않고요.”

김하온씨가 2018년 ‘고등래퍼 2’에 출연했을 때 모습. /Mnet

-그런 생각과 경험을 담은 곡으로 ‘고등래퍼 2′에서 우승한 것이죠? 당시 영상을 보면 다른 참가자나 청중이 놀라기도 하지만 약간 비꼬는 분위기도 있던데요.

“실제로 그런 분위기가 있었어요. 저를 인정하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고요. ‘무슨 가사 그래?’ 하면서요. 보통 랩이라면 약간 사악(?)한 가사를 많이 생각하잖아요? 근데 저는 어둠이 있으면 밝음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작진이 자기 소개 랩을 부탁했을 때 ‘요즘 책을 읽고 이해한 내용과 어떤 풀리지 않는 의문, 이런 것을 일단 다 담아보자’고 했는데 ‘신선하다’고 해주셔서 저도 신기했어요. 또한 내가 이런 점이 좋았기 때문에 남들도 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이었죠.”

-그런데 우승 후에 힘들었다고요?

“이름과 얼굴이 많이 알려지고 나니 매체 출연도 많아졌죠. 그런데 매체에서는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이 있어요. 그것이 제 본모습과는 좀 안 맞는 부분들이 있었죠.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너는 그냥 이런 애야’라고 대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냥 원래 바보같이 착하고 웃기만 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사람들 만나기가 많이 힘들었어요. TV 안의 인물로서만 환영받는 느낌. 제 삶의 어떤 부분이 빼앗긴 느낌이 자꾸 들었어요. 그래서 지하철 같은 데서 숨이 안 쉬어지고, 그런 일을 겪었죠.”

-명상을 하고 있고, 명상 때문에 유명해졌는데도 그런 일을 겪었다고요?

“어렸잖아요, 지금도 어리지만. 막상 삶에 대한 경험은 아무래도 적었잖아요. 저는 제 삶에 있는 모든 것을 긍정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주먹이 날아오니까 그걸 맞고 약간 그로기 상태에 들어간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힘든 상황이 되니 머리도 작동하지 않고요. 사람들은 제가 무슨 달관한 사람처럼 생각하고 ‘쟤는 위로 같은 것도 필요 없을 거야. 혼자 잘할 거야’ 이런 시각도 있으니까 더 외로워진 거죠.”

-어떻게 극복했나요?

“그럴 때에도 항상 명상은 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나와는 독대가 계속된 거 같아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에 대한 나의 감정과 생각 그런 것을 재인식해 보고, 그거에 대한 답도 스스로 내려보고. 그러면서 발견한 것이 웨이트 트레이닝이에요.”

-머리에서 몸으로?

“운동을 하면서 근육을 타기팅(targeting)한다고 표현해요. 가슴 운동을 할 땐 가슴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가슴 근육에 피가 모이는 것을 시각화해 보면서 나의 감각을 재인식하는 것이죠. 그런 경험을 통해 ‘웨이트 트레이닝은 격한 명상이구나’ 하고 깨닫고 더 빠지게 된 것 같아요. 한 4년 됐는데 지금도 명상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같이하고 있어요. 마음의 근력과 물리적 체력도 함께 키우기 시작한 거죠.”

-요즘은 어떻게 명상 수행을 하나요?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혹은 자기 전에 20분 정도 합니다. 저도 생활이 불규칙합니다. 언제 영감이 꽂힐지 모르기 때문에요. 그렇지만 저는 깨어있는 동안은 제 삶에 최대한 충실하고 집중하려고 노력합니다. 명상은 제 삶의 일종의 ‘성소(聖所)’입니다. 제가 저와 독대할 수 있는 곳, 성소입니다.

-명상을 간단히 정의한다면?

“나와 단둘이 있는 것. 그리고 내가 있음을 재인식하는 것. 만약 우리 하나 하나가 미술 작품이라면 어떤 사람은 ‘모나리자’이고, 어떤 사람은 ‘별이 빛나는 밤’(고흐 작품)이 될 수 있겠죠. 다양한 색깔의 붓놀림으로 칠해져 있지만 그 밑에는 순수한 하얀색 캔버스가 있잖아요. 그걸 재인식하는 거죠. 제가 좋아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고백록’에서 이 구절을 좋아해요. ‘우리는 한 국가, 로마라는 국가를 넘어서 우주라는 국가의 국민이다.’ 너무 공감이 됐어요.”

-힘들어하는 또래들에게 명상을 권하다면?

“‘새로 고침’ 한번 해봐라. 지금 머리에, 마음에 뭔가 너무 많은 것이 쌓였으니 새로 고침 한번 해보라.”

[래퍼 김하온이 감명 깊게 읽은 구절들]

”누가 너에게 강요하는 대로, 또는 누가 네게 원하는 대로 어떤 것을 보지 말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라.“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은 내게 불운이다’라고 말하지 말고 도리어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나는 현재 일어난 일 때문에 망가지지도 않고, 미래에 일어날 일도 두렵지 않으며, 이렇게 아무런 해악도 입지 않고 멀쩡한 것은 내게 행운이다’라고 말하라.” (이상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중)

”세상사 온갖 고통의 뿌리는 이 몸과 마음이 진짜 나이고, 이 세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잘못된 믿음에 대한 집착이다.“

”’무아=연기’의 깨달음은 몸과 마음을 열심히 갈고 닦아서 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것이 본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이상 ‘금강경: 꿈속에서 꿈을 깨다’ 중)

”아이디어가 나를 통해 표현되도록 하는 능력, 그것이 재능이다.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