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있고, 같은 길을 가는 동료들이 인정하는 사람이 있다. 3년 전 입적한 고우(古愚·1937~2021) 스님은 선승(禪僧)들이 인정하는 당대 선지식(善知識)이었다.
고우 스님은 1969년 ‘제2 봉암사 결사’를 이끌어 오늘날 1년 중 부처님오신날 단 하루만 산문을 개방하고 나머지는 수행에 집중하는 봉암사의 가풍을 만들었고, 선승들의 뜻을 모아 ‘조계종 수행의 길-간화선’ 수행 지침서 간행을 주도했으며, 노년에는 손수 SM5 승용차를 운전해 전국을 다니며 부처님의 ‘중도(中道)’ 가르침을 널리 알렸다. 고우 스님을 20년간 시봉하며 수행한 박희승 한국명상지도자협회 사무총장이 최근 펴낸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자’(조계종출판사)는 일반인에게는 덜 알려진 고우 스님의 삶과 수행을 차분히 보여준다.
고우 스님의 삶에는 허례와 가식이 없다. 전설적 수행담도 없다. 출가 사연부터 대단한 뜻을 가지고 절을 찾은 것이 아니라 ‘군대에서 폐결핵에 걸려 자포자기 심정으로’ 김천 수도암을 찾았다고 했다. 그러나 죽을 각오로 출가한 만큼 수행은 더욱 치열했다. 경전 공부를 마치고 향곡·서옹·성철·서암 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을 찾아가 수행에 대해 묻고 가르침을 구하는 과정도 진솔하고 생생하다. 젊어서는 성철 스님에게 “(돈오돈수가 아니라) 돈오점수(頓悟漸修)가 맞지 않느냐”고 대들기도 했지만 훗날 정진 끝에 비로소 돈오돈수가 맞는다고 인정하는 모습도 보인다.
무엇보다 스님은 항상 친절, 겸손, 하심(下心)했다. 평생 “깨쳤다”고 말한 적이 없다. 일반 대중을 향한 법문은 쉬웠다. “무한 경쟁하지 말고 무한 향상(向上)하라”는 말씀이 대표적. 식당을 하는 신도에게는 “손님을 돈이 아니라 은인으로 보라”고 권했고, 그 말씀을 따른 식당은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선승들 사이에서는 수행의 경지에 대해 ‘몽중일여(夢中一如)’ ‘오매일여(寤寐一如)’ 등을 놓고 설왕설래가 오가곤 하지만 고우 스님은 ‘언행일치(言行一致)’를 강조했다. “깊은 법문을 하는 한국 스님들이 달라이 라마보다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언행일치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늘 안타까워했다. 또 “인생을 살아보니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스님이 70세가 되어 경북 봉화에 창건한 작은 암자 금봉암은 기도, 불공, 천도재 없이, 부처님오신날 연등도 달지 않고 법회와 참선 수련에만 집중했다. 그의 삶을 관통한 한마디는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자’였다.
고우 스님의 일생을 통해 한국 불교 현대사의 명장면을 볼 수 있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1960~70년대 ‘양식’ ‘장작’ 걱정을 하면서 수행하고, 누구라도 시주를 받으면 전체를 위해 내놓고, 큰 방이 없어 여러 전각에 흩어져 정진하던 봉암사 풍경이 맑은 수채화처럼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