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셀름 그륀 신부가 묵상하는 모습. 그륀 신부는 “감정을 억누르려 하면 오히려 우리를 지배한다”며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관찰하고 친철하게 이해하면 축복이 된다”고 말했다. /©Julia Martin, Abtei Münsterschwarzach

긴 수염에 온화한 미소로 잘 알려진 안셀름 그륀(79) 신부는 ‘유럽인의 멘토’ ‘21세기의 영성가’로 불린다. 독일 성 베네딕토회 뮌스터 슈바르차흐 수도원에 소속된 그륀 신부는 한때 ‘한국 선교사’ 혹은 로마의 대학에서 강의하는 교수를 꿈꿨다고 한다. 그러나 수도원장은 그에게 경영학을 공부해 ‘재무담당’을 맡아 달라고 권유했다. 그는 순명(順命)했고, ‘기도하고 일하라’는 베네딕도회 수도 규칙을 지키며 하루 5차례 기도를 비롯한 수도생활과 재무담당 업무를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런 바쁜 일과 속에 일주일에 6시간 주어지는 집필 시간에 집중해 수백 권에 이르는 영성 서적을 썼다.

그륀 신부는 최근 국내 번역된 저서 ‘감정 학교’(배명자 옮김·나무의마음)에서 감정 사용법을 알려준다. ‘시기심’ ‘모욕감’ ‘실망’ ‘혐오’ ‘복수심’ ‘분노와 격분’ ‘괴로움’ ‘부끄러움’ ‘무관심’ ‘무력감’ ‘후회’ ‘걱정’ 등 48가지 감정에 이름을 붙인 그는 “감정에 휘둘리거나 억누르지 말고 관찰·대화·이해·화해하라”고 권한다. 독일에서 2013년 출간된 책이지만 명상가들도 중요하게 여기는 감정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최근 이메일로 그륀 신부를 만나 ‘감정과 친해지기’ 방법에 대해 들었다.

-신부님이 속한 베네딕토회는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라는 모토로 유명하지요. 신부님의 삶에서 기도와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기도와 일의 건강한 리듬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기도와 성찬식을 위해 하루 5번 모이는데, 기도는 일을 멈추고 나를 하느님께 여는 것입니다. 나에게 기도와 일의 목표는 같습니다. 하느님께 헌신하는 것이지요.”

-신부님은 35년간 수도회의 재무를 담당했습니다. 흔히 ‘돈’과 ‘영성’은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재무를 맡게 된 이유가 있나요?

“재무담당을 맡았을 때 수도자와 직원들 300명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저의 목표였습니다. 저는 돈과 영성을 이렇게 연결합니다. 첫째, 돈은 사람에게 봉사합니다. 돈이 있기에 우리는 교육·선교 사업 같은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돈에 대해 내적으로 자유로워야 합니다. 셋째, 돈 역시 창의적으로 다뤄야 합니다. 그러면 수도자와 직원들에게 일을 더 많이 하라고 계속해서 강요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대인들은 ‘명상을 하고 싶어도 너무 바빠 시간이 없어’라고 합니다. 신부님은 언제 영성을 가꾸시나요?

“베네딕토회의 일과 리듬 덕분에 저는 3시간 이상 함께 기도하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아침 합창이 끝난 후 그리스도 성상 앞에서 약 35분간 조용히 묵상합니다. 강의할 때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에고로부터 자유로워지며, 인정과 성공을 얻으려 애쓰지 않을 것을 명심합니다. 그렇게 생활 전체에 영성이 새겨집니다. 글을 쓰는 것은 하느님의 신비와 인간의 신비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올바른 표현을 찾기 위한 투쟁이기도 합니다.”

-1968년부터 1975년까지 불교 수행법 ‘선(禪) 묵상’을 배운 적도 있다고요?

“‘선 묵상’은 대학에서 공부할 때 신에 대한 여러 합리적 사고와 영성 사이의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그리고 선 명상을 통해 나와 몇몇 동료 수도자들은 그리스도교의 신비 전통을 재발견했습니다. 지금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최근 한국에 번역된 ‘감정 학교’에서 ‘감정을 적대시하지 말고 관찰·대화·이해·화해하라’고 하셨지요?

“감정을 다루는 저의 방식은 4세기 ‘사막의 교부들(Desert Fathers)’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우리 안에 생각과 감정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감정을 없앨 수 없습니다. 명상은 감정 문제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이지만, 유일한 방법은 아닙니다. 먼저 감정의 의미를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을 처리할 방법도 찾을 수 있습니다.”

-가령 ‘시기심’의 경우, 다른 사람에 대해 시기하고 질투하는 점을 나열해 보라고 하셨지요? 다 적어놓고 보면 그 욕구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또 모두 이뤄지면 ‘괴물’이 탄생할 것이라고요.

“시기심은 모두에게 있고 근절할 수 없습니다. 시기심이 들 때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내가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을 다 갖게 되면, 나는 행복할까? 그러면서 시기심 뒤에 감춰진 욕구를 겸허히 인정하게 됩니다. ‘나는 인정받고 성공하고 싶다!’라는 욕구를요.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기보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내 삶을 바라보려 노력해야지요.”

-재무 담당으로 일하면서 실망하는 일이 많았다고요? 요즘은 어떤 감정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시나요?

“제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감정 중 하나는 조바심입니다. 일부 수도자들이 너무 느리거나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나는 금방 참을성을 잃습니다. 조바심은 확실히 나의 어두운 면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그들을 이해하는 법을 계속 배워야 합니다. 그들은 그저 나와 다를 뿐이니까요.”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화를 냅니다. 신부님은 책에서 ‘화를 낼지 말지는 나의 선택’이라고 하셨지요?

“저는 화가 날 때, 먼저 왜 화가 났는지, 정말 화를 낼 가치가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저에게 화는 때때로,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과 나 자신을 더 잘 분리하게 하는 초대와 같습니다. 그들과 나를 분리하면, 그들은 내게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습니다. 화는 때때로 뭔가 더 나은 일을 하고 싶은 충동이기도 합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유한성을 인식하도록 돕는다’고 하셨지요.

“저는 때때로 대화 중에 ‘이 대화가 어쩌면 나의 마지막 대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합니다. 그러면 대화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상대방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게 됩니다. 또한 저 자신을 온전히 인식하는 것에 도움이 됩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고 온전히 앉아 있고 온전히 서 있다! 그리고 나는 하느님 앞에 있고, 하느님의 축복이 나를 둘러싸고, 하느님의 사랑이 나를 감싸고 있다고 상상합니다. 그러면 더 의식적으로 현재를 살게 됩니다.”

-’무관심’에 대해 ‘오늘날 우리는 물질적 빈곤이 아니라 감정적 빈곤을 겪고 있다’고 했습니다. 무관심이 왜 무서운 것인가요?

“무관심한 사람은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삽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나설 열정이 없습니다. 그러면 결국 자신도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관심은 생명 없는 시체와 같습니다.”

-남편에 대해 증오를 가진 아내에게도 ‘증오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감정’이라고 하셨지요?

“감정에는 항상 힘도 같이 있습니다. 감정을 억누르면 마음이 병들고 불만이 쌓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감정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증오를 나에게도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알려주는 초대로 본다면, 증오의 대상에게 계속 집중하는 대신 나 자신을 돌보는 에너지로 증오의 힘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을 보더라도 더는 그렇게 괴롭지 않을 것입니다.”

-신부님께 명상 혹은 기도는 ‘마음을 비워 하느님의 공간을 마련하는 노력’인가요?

“기도를 시작하면, 내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끊임없이 떠오르는지를 깨닫게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생각을 버리고 비우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미 빈 잔의 이미지를 사용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채우려면, 먼저 잔이 비어 있어야 합니다.”

-’감정 학교’는 독일에서 2013년 출간됐습니다. 10년 사이 세계는 SNS가 확산하면서 폐해도 제기됩니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에 눈을 감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절제가 필요합니다. 소셜 미디어에는 어떤 식으로든 끊임없이 즐거움을 좇게 만드는 위험이 있습니다. 중독될 수도 있고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쓰는 것을 계속 지켜봐서는 안 됩니다. 대다수 사람은 소셜 미디어에서 자신을 실제보다 더 훌륭하고, 더 멋지고, 더 성공한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보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열등감을 갖게 됩니다. 남과 비교하기보다는 내 삶에 감사해야 합니다.”

-영성을 키우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마음의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선 평소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저에게는 미사가 영성을 강화하는 좋은 훈련입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을 미사로 정리하면, 나의 하루는 영적인 하루가 됩니다. 영성을 강화하는 것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의 ‘감정 학교’ 중에서]

”감정의 독일어 ‘Emotion’은 ‘휘저어서 솟구치게 만든다’는 뜻의 라틴어 ‘emovere’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감정은 종종 우리의 내면을 휘젓습니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거부하면 감정은 종종 우리에게 해로운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면 우리가 감정을 다스리는 게 아니라 감정이 우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오직 신중한 관찰과 이해를 통해서만 감정은 명료해지고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분노가 치솟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 경계를 확실히 하고, 상대방에게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명확히 알려주는 것입니다.“

”슬픔을 회피하는 사람은 영혼이 얼어붙게 됩니다. 애도는 놓친 기회와 부서진 꿈에 대한 아픔을 온전히 느끼며 마음 깊은 곳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는 삶의 새로운 가능성과 자신을 만납니다.“

”우리가 감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감정은 축복이 되고,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만나는 통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