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다섯 번 ‘나 자신이 행복하기를’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되뇌어 보세요. 나 스스로 행복해집니다.”
김재성(61) 능인대학원대학교 명상심리학과 교수는 1990년대부터 명상을 국내에 소개해 왔다. 1980년 고교 3학년 때 학력고사를 한 달 앞두고 송광사로 출가한 그는 승복을 입고 서울대 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도쿄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1년 일본 유학 직전 경험한 3개월의 미얀마 위파사나 수행은 그를 명상 수행과 지도자의 길로 이끌었다. ‘이렇게 좋고 행복한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국내에 초기 불교 수행법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1990년대 초부터 ‘지금 이 순간 그대는 깨어 있는가’ ‘위빠사나 입문’ ‘위빠사나 수행’ 등 15종의 번역서와 저서를 통해 명상 수행법을 안내했다. ‘mindfulness’를 우리말 ‘마음 챙김’으로 처음 번역한 것도 그의 책(’부처님, 그분’)을 통해서였다. 2000년 환속한 후 위파사나 명상센터 ‘천안호두마을’ 지도 법사(2002~2005)를 비롯해 기업과 학교 등에서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에게 명상을 지도했다. 2010년 ‘명상의 집 자애-자애통찰명상원’을 설립했으며 지난해부터 줌으로 매일 새벽 명상을 지도하며 스스로도 ‘재충전’하고 있다. 지난주 김 교수를 만나 ‘내가 행복해지는 명상’에 대해 들었다.
-고3 때 학력고사를 한 달 앞두고 출가하셨다고요?
“고교 1학년 때 3학년 선배들의 권유로 불교학생회에 들었습니다. 고2 때 불교학생회장을 맡았는데 여름에 월정사로 7박 8일 수련회를 다녀왔어요. 수련회에선 한 사람이 잘못하면 모두 108배를 했어요. 하루 대여섯 번씩 108배를 했어요. 그땐 그렇게 힘들었는데 수련회 후 두 달쯤 지나니 자꾸 생각이 나면서 ‘절에 가서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어요. 그런 생각을 1년 동안 가지고 있다가 학력고사 한 달 앞두고 어느 날 문득 ‘바로 지금이다’ 싶었어요. 그래서 편지 한 장 써놓고 출가했지요.”
-석사를 마치고 도쿄대 유학 가기 전에 미얀마에서 위파사나 수행을 하셨지요?
“유학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선방(禪房)에서 안거에 들어갈까 생각하며 송광사에 내려갔어요. 그런데 그때 미얀마에서 수행하고 막 돌아온 스님이 계셨어요. 그분 말씀이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를 좀 알게 됐다’고 하셨어요. 저는 대학원에서도 초기 불교에 관해 논문을 썼거든요. 관심이 생겨서 스님들 소개를 받아서 미얀마로 갔지요.”
-특별한 체험을 하셨나요?
“1991년 7월 20일, 도착해서 우 빤디따 큰스님께 인사 드리니 ‘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험을 알아차리라’고 하셨어요.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계속 수행하는 일정이었습니다. 보름쯤 지날 때였어요. 수행이 궤도에 올라간 느낌이 들더군요. 마음이 아주 고요해지고 명료해졌어요. 이완된 명료함이랄까요. 고요함과 명료함이 쭉 이어지니 ‘아, 수행을 하면 이렇게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상태가 되니 기쁨이 한 일주일 동안 막 솟구쳐요. 기쁨이 지나니 행복감이 열흘 정도 솟아나고요. 그 단계를 지나니 평정심으로 가더라고요.”
-이완된 명료함은 어떤 상태인가요?
“당시 한국에서 온 수행자를 위해 통역을 한 적이 있어요. 큰스님이 미얀마어로 말씀하시면 영어 통역을 듣고 제가 한국어로 다시 통역하는 과정이었는데요. 갑자기 연락받는 바람에 필기도구도 없이 갔어요. 그런데 길면 4~5분씩 말씀하시는 내용이 정확히 기억되고 번역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마치 서랍에 한 칸씩 기억을 넣었다가 차례대로 꺼내는 것처럼요. 3개월 만에 귀국해 예불 때 천수경을 염불하는데 하나도 틀리지 않고 할 수 있었습니다.”
-미얀마에서 수행할 때 출가 후 두 번째 눈물을 흘리셨다고요.
“처음 송광사로 출가해 예불 드릴 때 눈물이 났습니다. 그때 눈물이 신심의 눈물이었다면, 미얀마에서 수행하면서 흘린 눈물은 부처님께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습니다. ‘이 길을 이렇게 다 말씀해 놓으셨다’는 데 대한 진정한 감사의 눈물이었습니다.”
-미얀마 수행 후 도쿄대 대학원으로 유학하셨는데요.
“유학 중에도 틈틈이 초기 불교 수행법에 관한 책을 번역하고, 귀국할 때마다 수행을 지도했습니다. 제가 경험한 행복감이 너무 좋아서 나누고 싶었지요. 1993년 ‘고요한 소리’의 대구 수련회를 비롯해 1997년 서울 길상사 여름 수련회 등 여름방학에 귀국할 때마다 명상을 지도했습니다.”
-흔히 명상을 통해 평정심을 체험했다가도 수행을 멈추면 원상태로 돌아가곤 한다고 하지요.
“저도 일본에서는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니까 삼매의 힘, 마음챙김의 힘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학교에서는 책 읽고, 집에 와서는 책은 덮고 명상을 했지요. 명상을 멈추었다가 다시 집중 수행을 하면 2박 3일 정도면 80~90%는 회복되는 것 같아요. 다만 이때는 기쁨과 행복감 단계는 건너뛰고 평정심으로 바로 들어가지요. 저에게 명상은 일종의 재충전 같은 것입니다.”
-선생님은 현재 ‘자애 명상’을 지도·보급하고 계시지요?
“2011년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존 카밧진 박사의 MBSR(마음 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완화) 7박 8일 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어요. 그 프로그램을 따라 수행하는데 사흘째쯤 위파사나 수행 때와 같은 평정심이 찾아왔어요. 그 경험을 통해 제가 그동안 수행해온 자애 통찰 명상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보급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자애 명상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요?
“간단합니다. 자기 전과 잠에서 깬 후 그리고 세 끼 식사 전에 호흡하면서 ‘나 자신이 행복하기를’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을 천천히 반복하는 것입니다. 하루 다섯 번. 중요한 것은 ‘위시(wish)’입니다. ‘내가 행복하다’고 하는 것보다 ‘내 자신이 행복하기를’이라고 하면 바라는 마음을 일으키는 데 훨씬 도움이 됩니다. 바라는 마음은 좋은 마음이잖아요! 나와 스승,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내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져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적대감을 느낄 때 내가 두려워지고 불안해지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를 지속적으로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점점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일종의 동심원 같은 것인가요?
“저는 우물에 비유합니다. 자애 명상이 잘되는 대상을 정하고 우물을 파 들어가는 거지요. 그래서 ‘물 맛’을 봐야 합니다. 대상을 생각하면서 ‘행복하기를’을 반복하면서 기쁨과 행복감이 올라오면 다른 대상도 가능하게 되지요. 결국에는 바위로 덮여 있는 우물도 뚫을 수 있지요. 바위로 덮인 우물은 ‘원한 맺힌 사람’이에요. ‘이 사람만 빼고 다 행복하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그 사람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하게 되지요.”
-자애 명상은 불면증에도 도움이 된다고요?
“한 주민센터에서 8주 과정 자애 명상을 지도한 적이 있어요. 두 주째 갔더니 한 할머니가 ‘수면제를 오랫동안 먹어왔는데 지난 1주일은 잘 잤다. 고맙다’고 하시더군요. 잠이 안 오는 메커니즘은 걱정하거나 분해서 억울하거나 이 둘 중 하나예요. 불안과 우울인데, 그것을 안정시켜 주는 것이죠.”
-HIV 보균자와도 명상을 하셨지요?
“지금은 HIV 보균자가 에이즈로 발병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요. 오히려 가족과 사회로부터 고립된 정신적 고립감이 더 문제입니다. 자애 명상과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고립감에서 조금씩 열려가는 모습도 봤습니다.”
-100일씩 100번, 1만일 명상을 하고 계시지요?
“예, 생활 속에서의 명상을 남은 인생 동안 하자는 의도로 시작한 재충전 수련입니다. 100일 명상을 시작한 지는 647일째(인터뷰 날짜 기준)이고, 작년 1월부터는 매일 아침 5시~6시 45분 줌을 통해 명상과 경전산책(’법구경’ 공부)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명상을 통해 평소에도 70~80% 정도의 명료함과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