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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8월 20일, 서울의 순환철도를 연결하는 의정부와 가능간 5.4km 철도공사가 착공 4개월만에 완성되어 서울 교외선 개통열차가 첫 기적을 울렸다. /조선일보 DB

벌써 4반세기도 더 지난 옛 일입니다. 언론사 입사 시험을 준비하며 여러 신문사에 응시하던 중, 한 경제신문의 논술 시험에 이런 문제가 나왔습니다. ‘교외선 기차를 타고 가던 중 옆자리에 한 젊은 여성(또는 남성)이 앉았다. 그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줄거리로 글을 쓰라.’ 저는 말을 걸어 봤더니 그녀가 젊은 이혼녀였고 최근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었다는 것으로 시작해 당시 사회적 이슈도 집어넣어 가며 작문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 그런데 나중에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하필 교외선이었을까?

교외선은 사실 일제 말 태평양전쟁의 총력전과 관련이 있는 철도입니다. 일제 입장에서 기존의 경부선은 서해안에 가까워 미군의 함포 사격에 피해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함포 사격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내륙에 ‘제2경부선’이라 할 경경선(京慶線·서울~경주)을 건설해 1942년 완공했습니다. 이 철도가 지금의 중앙선이죠. 올해 말 안동~의성 구간의 전철화가 완공되면, 빠르면 내년부터는 중앙선을 통한 서울 청량리역과 부산 부전역 사이에 KTX가 다닐 전망이니 명실상부한 ‘제2경부선’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북서쪽 경의선에서 오는 화물을 경경선 쪽으로 우회시켜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만들기 시작한 철도가 경의선에서 경원선 사이의 철도, 바로 지금의 교외선이었습니다. 고양 쪽에서 방향을 틀어 의정부로 간 뒤 경원선 철도를 통해 남하하다가 경경선으로 빠지는 방식이었죠. 이것이 바로 지금의 교외선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방이 되며 일본인들이 철수하자 이 철도 공사는 일시 중단됐습니다. 이 구간, 능곡~의정부 31.9㎞가 모두 개통된 것은 1963년의 일이었습니다.

교외선이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추억의~’라는 수식어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오래라 경의선 화물을 중앙선으로 돌리는 목적은 부차적인 것이 됐습니다. 이제 주 목적은 서울 근교로 관광객을 수송하는 것이었죠.

교외선의 역 이름을 하나씩 되새기면 추억이 몽글몽글 떠오르는 분이 많을 겁니다. 벽제, 일영, 장흥, 송추… 그곳에 유원지와 음식점과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었고 젊은 날 적어도 한두 번쯤 놀러간 기억이 있었겠죠. 교외선 열차 자체가 관광열차이기도 했습니다. 서울역에서 대곡과 의정부, 왕십리를 거쳐 서울역으로 돌아오는 순환열차가 그 대표적인 것이었어요.

최근 연재가 끝난 조선일보 문화면 기획 ‘나의 현대사 보물’에 얼마 전 독자 한 분이 투고해 주신 ‘보물’ 중에 ‘교외선 승차권’이 있었습니다. 독자 이형달씨는 IMF 무렵부터 기차 승차권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사실 이 시기는 종이 승차권의 마지막 전성기였고, 그 제도가 없어지며 승차권이 시장에 나오는 수집의 최적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춘선과 협궤 열차가 달리던 수인선, 간이역 같은 옛 기차표를 수집하면서도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역시 젊은 시절 종종 친구와 놀러 가던 교외선이었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독자 이형달씨가 수집한 교외선 승차권. /이형달씨 제공

그가 수집한 교외선 승차권을 보면 교외선으로 통일호와 무궁화호가 다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94년 8월에는 증기기관차가 특별 운행하기도 했고, 벽제에서 청량리를 거쳐 영천까지 군(軍) 전세 열차가 운행했던 흔적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 교외선을 타는 사람들은 부쩍 줄어들었습니다. 사실 서울 근처 장흥이나 송추에 놀러간다는 것은 지갑이 얇고 기껏 일주일에 일요일 한 번 쉬던 시절에나 어울리는 일이었죠.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주5일 시대가 열리며 멀리 가서 자고 오는 장거리 여행이 선호되자 교외선 운행 횟수는 점차 줄었습니다.

마침내 20년 전인 2004년, 교외선 정기 여객열차의 운행이 중단됐습니다. 한동안 ‘서울 야경 순환열차’라는 관광열차가 이 구간을 다녔으나 2008년 종료됐죠. 이후 교외선은 폐선 비슷하게 남아 있으면서 아주 가끔 군용 열차만 다녔습니다. 그런 열차가 한 번 다녔다는 소식이 들리면 철도 동호회가 들썩거릴 정도였습니다. 역사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던 일영역은 2017년 BTS ‘봄날’ 뮤직비디오의 촬영지가 돼 때아닌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교외선이 20년 만에 재개통을 앞두고 있습니다. 선로와 역사 개량 공사를 거쳐 다음달부터 대곡~의정부 구간이 다시 운행을 개시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정차역은 대곡, 원릉, 일영, 장흥, 송추, 의정부입니다. 옛 교외선 정차역 중 능곡, 온릉, 대정, 삼릉, 벽제역에는 정차하지 않습니다.

혹 수도권 전철이 다니는 것 아닌가 했습니다만 거기까지는 아니고, 무궁화호가 운행한다고 합니다. 노선의 목적 역시 크게 바뀐 셈인데, 이번엔 관광용이라기보다는 통근용에 가깝다고 봐야 합니다. 주변 유원지가 사라진 대신 주택 단지가 많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래 전부터 교통의 무게중심을 도로에 뒀던 우리나라에서는 철도 개통이 대단히 느립니다. 오죽하면 ‘포크레인 대신 찻숟가락으로 공사하는 것 아니냐’며 ‘티스푼 공정’이라 비아냥거리는 말도 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올해 말은 다릅니다. 아마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한데요. 올해 11~12월 전국에서 개통했거나 개통을 앞둔 철도는 10개 노선 486㎞에 이릅니다. 물론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공사가 이뤄진 것은 아니고, 그 동안 지연됐던 철도들까지 우연히 완공 시기가 같아졌다고 봐야 하겠죠. 어쨌든 철도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에겐 아주 반가운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글을 끝낸다면 안되겠죠. 그 ‘10개 노선’이 어딘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1)11월 2일 서해선(서화성~홍성): ITX-마음

(2)11월 2일 평택선(평택~안중): ITX-마음, 새마을호, 무궁화호

(3)11월 2일 장항선 복선전철화(신창~홍성): ITX-마음, 새마을호, 무궁화호

(4)11월 27일 중부내륙선(충주~문경): KTX-이음

(5)12월 14일 대경선(구미~대구~경산): 광역전철

(6)12월 28일 GTX-A(운정중앙~서울역)

(7)12월 대구 지하철 1호선 연장(안심~하양)

(8)12월 중앙선 복선전철화(안동~영천)

(9)12월 동해선(삼척~영덕): ITX마음, 누리로

(10)12월 교외선(대곡~의정부): 무궁화호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역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아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매주 금요일 새벽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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