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행 스님이 자재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능행 스님은 “환자들이 고귀하고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평소 죽음에 대해 명상하면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동환 기자

울산광역시 울주군 정토마을 자재병원 이사장 능행(64) 스님은 불교 호스피스의 선구자다. 1990년대 중반 충북 청주에서 봉사 단체 ‘자비회’를 만들어 말기 암 환자를 돌보던 스님은 2000년 ‘정토마을 호스피스’를 설립했고, 2013년엔 울산에 자재병원을 설립해 호스피스 활동을 해오고 있다. 호스피스 활동과 함께 그가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생·사의 장(이하 ‘생사장)’ 교육 프로그램. ‘정토마을’ 설립 이전인 1993년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현재는 병원 바로 옆 마하보디교육원에서 1년에 두 차례 5박 6일 과정으로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구체적으로 준비하도록 돕는 한편 타인의 죽음을 어떻게 돌볼 것인지 교육한다. 지금까지 56차에 걸쳐 2228명이 수료했고 내년 1월 57차 교육이 진행된다. 능행 스님의 오랜 호스피스 경험을 바탕으로 참가자들은 죽음에 대해 깊이 명상하면서 삶에 대한 자세를 리셋하고 있다. 지난주 자재병원에서 능행 스님을 만나 ‘죽음 명상’에 대해 들었다.

-지금까지 임종한 환자가 몇 분 정도 되나요?

“2013년 정토마을 자재병원 설립 후에만 1300여 명 되는 것 같습니다. ‘자비회’와 청주 정토마을 시절까지 합하면 4000명 정도 되지 않을까 싶고요. 지난 8월에만도 67명이 돌아가셨어요.”

-환자들의 임종을 보는 것이 힘들지 않나요.

“힘들지요. 암 환자들이 임종하면서 본인들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가족 공동체도 붕괴되는 과정을 너무 많이 봤어요. 가정이 무너지면 그 고통이 지역 사회와 국가에까지 영향을 미치잖아요. 그런 공멸을 막아보려고 ‘생사장’ 교육을 하게 됐지요. 임종 환자들을 보면서 너무 안타까워서 제가 환자들에게 정말 여러 가지를 여쭤봤어요. 혈액형까지요. 그렇게 오랫동안 지켜보니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병이 하나 있어요. 화병이죠. 마음 안에 분노나 슬픔, 두려움, 공포 같은 감정을 건강하게 해소할 줄 몰라서 병이 들죠. 화병은 주로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또 한 가지는 ‘뛰다가 죽는 경우’입니다.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를 향해 열심히 뛰다가 쓰러지는 거죠. 우리 옛말에 ‘살 만하니 죽는다’는 말이 딱 맞아요. 집착이죠. 그 밖에 환경 조건과 절제되지 않은 식이(식습관) 그리고 유전이지요. 다른 건 몰라도 관계, 집착, 식습관은 바꿀 수 있잖아요. 그런 점을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능행 스님이 지난 4월 펴낸 ‘우리 봄날에 다시 만나면’(김영사)에는 임종 환자 30여 명의 사연이 정리돼 있다. 대부분 환자는 준비 없이 죽음을 맞는다. 신체의 고통은 물론이고 가족을 비롯한 인간 관계가 정리되지 않아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을 겪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런 안타까움은 능행 스님이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생사장’ 프로그램을 시작한 배경이 됐다.

-스님은 ‘생사장’ 프로그램에 대해 ‘세탁기’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계시죠?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여러 상황을 겪게 됩니다. 마음의 상처도 받고 온갖 감정과 기억으로 오염이 됩니다. 그런 게 누적되면서 마음이 무거워지고 아파지고 힘겨워지고 결국 병이 됩니다. 정토마을을 만들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암에 걸리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세탁기에 빨래감을 넣고 세탁하듯이 오염된 감정 등을 정리하자는 취지로 ‘생사장’을 세탁기에 비유합니다.”

-’생사장’ 프로그램에선 죽음에 대해 어떤 명상을 하나요.

“사고사(事故死)와 자연사, 크게 두 가지 죽음을 상상하며 명상하도록 권합니다. 사고사를 명상할 때에는 마치 병상에 누운 것처럼 깊은 명상에 들게 합니다. 그 후에 한 사람씩 눈을 가리고 인지할 수 없는 공간으로 이동하게 합니다. 사고사 상황을 설정하는 것이지요. 대부분 참가자들은 엄청나게 놀라고, 당황합니다. 평소 내가 사고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시간 정도 이런 명상을 하고 깨어납니다. 그 후 화들짝 깨어나면서 ‘죽으면 이렇게 되겠구나’라며 모두가 놀라고 당황했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죽으면 안 되겠구나’를 이야기하지요.”

-자연사(병사)에 대해서는 어떤 명상을 하나요.

“자연사를 명상하는 날에는 점심 식사는 풍요롭게 제공하고 저녁은 단식합니다. 이 생의 마지막 오찬인 셈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가족 친지에 대한 작별 인사를 써보기도 하고, 자신의 일생을 글로 적어보기도 하고요. 고향, 생년, 부모, 이름은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하고 살았는지. 이렇게 적다 보면 사람들이 많이 웁니다. 대부분 못 했던 일에 대한 후회를 털어놓지요. 왜 사랑하지 못했나, 왜 우리 아들 손 한번 잡아주지 못했나, 아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못했나. 이런 것들이죠.”

-주로 ‘못 한 일’을 후회하는군요?

“했던 일은 하나도 기억 안 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서 ‘내가 다시 산다면 이렇게 살지 않는다’고 다짐하지요. 그럴 때 단호하게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자연사에 관한 명상은 5박 6일 교육 중 마지막 날에 하는데, 이날은 선배 졸업생들이 함께합니다. 자정, 혹은 새벽 1~2시까지도 진행하며 사연을 다 들어주고 상담을 하지요. 선배들 역시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기꺼이 자원봉사로 참여하고요.”

-죽음의 풍경도 많이 바뀌었지요?

“30년 전만 해도 자신이 살던 집에서 가족이 돌보는 가운데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죽음의 장소가 딱 여섯 곳입니다. 요양원, 요양병원, 병원 응급실, 병원 중환자실, 길바닥 그리고 호스피스병원입니다. 고귀하고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고 급작스럽게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과거엔 집 밖에서 죽는 것을 수치로 여겼는데, 이제는 집 밖의 죽음이 자연스럽게 됐어요. 우리의 삶도 존엄하고 고귀해야 하지만 죽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이 병원을 지은 이유도 고귀한 죽음을 위해서입니다. 집은 아니지만 가족과 함께 삶을 정리할 시간을 드리려고 하지요.”

-임종하는 분들에 대한 영적 돌봄 교육도 큰 역할이라고 들었습니다.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이 문제는 꼭 풀어드려야 겠다’ 싶은 경우엔 저희가 연락을 드려서 만나게 해드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미 관계가 너무 꼬인 경우가 많아서 실제로 성사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감사’와 ‘용서’를 이야기하는 분도 많아요. 자식들에게 ‘정말 고마웠다. 나 같은 아버지가 되지 말고 자식들에게 잘해라’처럼 축복하는 경우도 있고요.”

-죽음에 대한 준비는 어떤가요?

“최근에 느끼는 것은 마지막까지 이런저런 항암치료를 하다가 정말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돼서 자재병원을 찾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 같아요. 병원에 오신 지 불과 하루 이틀만에 임종하시는 경우도 많고요.”

-삶에 대한 의지는 중요하지 않나요?

“물론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지점이 있어요. 가령 암이 전신에 전이가 된다거나 해서 의사가 ‘힘들겠다’고 말할 때죠. 그때는 우리가 정말 마지막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그럴 때는 우리가 먼저 ‘인생을 정리할 시간 6개월은 확보해 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인생을 정리할 시간을 다 허비하고 준비 없이 죽음을 맞게 되지요. 병원에 오신 지 4~5일 만에 돌아가시면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능행 스님은 자재병원 로비에서 한 환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스님은 환자들과 자주 대화하면서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김동환 기자

-잘 정리하고 떠난 분 중 기억에 남는 분이 계시나요?

“두 달쯤 전에 떠난 60대 초반 남성이 기억납니다. 건강하게 사셨던 분인데, 참 억울한 마음이 들 정도로 암을 초기에 발견하지 못했답니다. 이분은 저희 병원에서 6개월 정도 계시면서 고향에도 다녀오시고, 친구들도 수시로 불러서 파티도 했어요. 음악을 좋아하셔서 자원봉사 하는 분들이 여러 번 오셔서 색소폰 연주해드리면 아내와 함께 춤도 추고요. 아내에게도 ‘우리 죽을 때까지 사랑하자. 다음 생에도 만나자. 나 죽고 나도 외롭게 살지 마라’면서요. 그렇게 지내다 3~4일 아프고 돌아가셨어요. 이렇게 정리를 잘하면 남은 가족들의 마음도 덜 무거워집니다. 물론 본인도 그렇고요.”

-임종 직전에도 명상이 가능한가요?

“평소에 수행을 했던 분들은 임종 전에도 가능합니다. 명상을 하셨던 분은 명상, 염불을 하신 분은 염불, 기도를 하셨던 분은 기도가 가능합니다. 이런 경우엔 죽음을 준비하시는 과정도 차분합니다.”

-삶이 6개월 정도 남았다면 무엇을 권하시겠습니까.

“우선 주변을 정리할 것을 권합니다. 특히 사람 사이의 관계, 죽음 이후의 삶, 그리고 명상.”

-3개월 남았다면.

“정리한 걸 계속 점검해야죠. 그리고 이제부터는 호흡에 집중할 것을 권합니다.”

-하루 남았다면.

“딱 숨에 집중할 것을 권합니다. 찰나 찰나가 한 숨 한 숨이 끊어져 간다는 것을 인지하고 새로운 마라톤 출발선상에 서있다는 마음을 가질 것을 권합니다.”

[능행 스님의 ‘우리 봄날에 다시 만나면’ 중에서]

”죽음은 그 죽음을 딛고 더 아름다운 삶으로 떠나는 여행과 같다.“

”임종을 맞은 보살님(여성 신자)의 모습에 거룩함이 깃들어서 얼굴을 덮을 수가 없었다. 잘 살아야 잘 죽는다는 걸 다시금 마음에 새겼다.“

”죽음 앞에서 무상보단 무기력함을 느낄 때가 더 많다. 환자들에게서 존엄보다는 버려짐, 돌봄보다는 방치를 자주 본다.“

”죽어가는 이들을 보살피고 도우며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과 돈이라는 것을 거듭거듭 확인했다.“

”죽음 앞에 서면 사람들은 대부분 이 좋은 세상에 무조건 더 살아야 한다고, 지금 죽는 건 억울하다고 울부짖는다. 맞다. 이생은 아깝다. 한데, 이 아까운 삶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현상에만 집착하느라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있지는 않은가.“

”죽음은 현생과 또 다른 생을 잇는 다리와도 같다. 두려움에 떨며 그 다리를 마주하게 된다면 강력한 저항과 방어가 육신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