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浮彫)로 새겨진 푸른색 알파벳 가운데 ‘JESUS(예수)’가 도드라져 보인다. 화면 왼쪽 상단엔 16개의 칸마다 숫자가 적힌 사각형이 있다. 마방진 칸 속의 숫자는 어느 방향으로 더해도 ‘33′.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머문 기간을 뜻한다. 안토니 가우디 작품으로 유명한 스페인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청동문의 일부를 촬영한 사진이다.
가톨릭 언론인으로 30여년 활동해온 가톨릭평화신문 리길재(60) 선임기자가 세계 각국을 취재하며 촬영한 성당과 유적지 등 신앙의 흔적을 모은 사진전을 12일까지 서울 명동대성당 갤러리1898에서 열고 있다. 2월 정년 퇴직을 앞두고 그동안 취재 기자로서의 삶을 돌아보고 새 출발을 위한 준비를 모색하는 마음을 담은 전시다.
주제는 ‘그리스도인의 삶’. 전시작은 뷔르츠부르크 대성당 십자가, 살라망카 대성당의 피에타, 세비야 대성당의 성모자상, 수비아코 산 베네데토 수도원, 예루살렘 시온산 등의 모습을 담은 30점. 왜관 성당, 가실 성당, 동검도 채플 십자가 등 국내 풍경도 포함됐다. 성지 순례가 활발한 요즘이지만 일반적으로는 덜 알려진 풍경이 많다. 리씨는 “일반적으로 잘 찾지 않는 곳, 가더라도 지나치기 쉬운 풍경과 성상(聖像) 등을 소개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사진 작품이지만 회화적인 느낌이 난다. 이유는 ‘검 프린트(Gum Print)’라는 특수한 인화 기법 때문. 두꺼운 판화 용지에 검정, 노랑, 파랑, 빨강 등 수채화 물감과 감광물질을 이용해 프린트하는 기법이다.
세계의 성지를 화면으로 보면서 차분히 새해 맞이 마음가짐을 정리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