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의 유언은 “저 매화에 물을 주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퇴계의 매화 사랑은 유명해 평소 매화를 ‘매형梅兄’, ‘매군梅君’이라 부르며 ‘혹애酷愛(지독한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엄동설한에도 홀로 고상하게 피는 꽃을 보면 퇴계의 마음을 이해할 것도 같다. 한평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매화의 품격을 사랑했던 것이다.

올해는 기나긴 추위 끝에 고개를 내민 매화가 당혹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매년 북적이며 맞이해주는 손들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이젠 북적이는 곳보다 한적한 곳이 더 가치 있는 시대다. 이에 맞춰 매화 꽃구경과 산행을 같이 즐길 수 있는 비교적 덜 유명한 4곳의 산행지와 매화 군락지를 소개한다. 참고로 코로나19로 인해 매화축제는 대부분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만 열릴 예정이다.

순천 문유산&향매실마을

순천 문유산&향매실마을 문유산 월간산 경치

순천지방의 매화 농장들은 대부분 내륙 깊숙한 산간지대에 자리해서 개화 시기가 광양이나 하동보다 2주가량 늦다. 이 중 순천의 향매실마을은 약 25만평 규모로 대한민국 최대다. 향매실마을은 호남정맥 순천지역 구간 중 송치와 노고치 사이 약 200m 남쪽으로 벗어나 솟은 해발 688m의 문유산(688m) 북동쪽 산기슭에 펼쳐진 월등면 계월리 이문·중촌·외동이란 동네로 이루어진 곳이다.

문유산 등산로는 단순하다. 군장마을 뒷산 배롱나무에서 산마루금 바로 아래에 난 임도가 들머리다. 약 1.5km를 임도 따라 걷다가 능선 등산로로 올라타서 1.8km 정도 전진하면 문유산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남쪽으로 200m 가면 문유산 정상이다. 되짚어 나와 점터봉을 지나 순천생태마을이 위치한 노고치로 하산하면 된다.

하동 구재봉&덕점마을

하동 구재봉&덕점마을

전국적으로 유명한 매화축제가 열리는 광양군 다압면. 이를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곳이 구재봉(768m)이 있는 경남 하동군 악양면이다. 구재봉의 남서쪽에 조성된 먹점마을은 산중턱 너른 터에 약 4만 그루 가량의 매화나무가 봄이면 만개해 그윽한 향기를 내뿜는다. 다압면의 위세에는 살짝 가려져 있어 더 한산하고 호젓하게 매화 구경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구재봉은 동서남북 어디로든 등산로가 잘 조성돼 있어 들날머리를 편의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먹점마을에서 구재봉으로 오르는 길은 서쪽과 남쪽 능선으로 이어지며, 둘다 능선까지 임도로 이어져 있다. 단 서릉은 매화가 피는 3월이면 산불방지통제구간에 속하기 때문에 남릉으로 구재봉에 오른 뒤, 구재봉 자연휴양림 방면으로 하산, 숙박하는 것이 좋다.

구례 화엄사 홍매화&노고단

구례 화엄사 홍매화&노고단. 화엄사에서 화엄계곡을 따라 노고단을 오르는 등산로는 지리산에 대표적인 등산로다.

봄이 되면 사진가들은 장비를 챙겨 구례 화엄사 각황전 처마 밑으로 몰려든다. 1703년 각황전과 원통전을 중건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계파 스님이 심은 홍매화를 렌즈에 담기 위해서다. 화엄사 홍매화는 겹꽃인 일반 홍매화와 달리 홑꽃으로 꽃잎이 다섯 장이다. 다른 홍매화보다 꽃 색깔이 검붉어서 흑매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화엄사에서 화엄계곡을 따라 노고단을 오르는 등산로는 지리산에 대표적인 등산로다. 울창한 원시림을 걷는 좋은 계곡길이지만, 훤칠한 조망을 기대하기 어렵고 줄곧 오르막이라 조금 더 쉬운 산행을 원하는 사람들은 해발고도 1070m의 성삼재에서 출발하는 편이다. 성삼재에서 출발해 무넹기~노고단 정상에 이른 뒤 되돌아와 화엄계곡으로 하산하면 된다.

양산 영축산&원동매화

양산 영축산&원동매화. 양산 원동은 우리나라 최초의 매실 재배지이자 그 역사가 100년에 달하는 고장이다.

양산 원동은 우리나라 최초의 매실 재배지이자 그 역사가 100년에 달하는 고장이다. 온화한 기후와 충분한 일조량 등 매실 재배에 좋은 지역적 특성 때문에 매실 고유의 효능이 타 지역 매실보다 높다. 특히 원동 매실은 토종으로 숙취 해소와 피부 미용 등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축산 산행은 대부분 교통이 편리한 통도사 방면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원동마을에서 통도사로 가려면 산을 돌아가야 하므로 배내골 신불산자연휴양림 기점에서 오르는 게 편리하다. 통도사 방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등산객 수가 적어 고즈넉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단 영축지맥이 매화가 피는 기간 동안 산불방지를 위해 통제되므로(2월 1일~5월 15일) 청수좌골 방면 등산로를 이용해 정상으로 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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