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5호선 하남검단산역이 지난 3월 27일 새로 개통했다. 이제 검단산(黔丹山, 657m)도 관악산, 북한산, 인왕산처럼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는 수도권 산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이제 훨씬 더 많은 등산객을 실어 나를 수 있게 되면서 명실상부 ‘도시 속 명산’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린 셈이다.
직접 지하철을 타고 검단산으로 향했다. 지하철이 들어와서 산행이 더 편해졌는지, 역 주변에는 어떤 편의시설이 있는지, 지하철 개통 이후 얼마나 더 등산객이 많아졌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활기 넘치는 도심의 산
하남검단산역에 내리는 사람의 거의 대부분이 배낭을 멘 등산객이다. 그 무리 중에는 오늘 산행을 같이 할 한민혜(31)씨와 윤아리(20)씨도 있었다. 민혜씨는 과거 방태산에서 탈수 직전 계곡물을 퍼마시고, 교동도에서 북한 방송을 들으며 백패킹을 하는 등 수고를 마다않고 월간<山> 취재에 도움을 줬던 젊은 등산인이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제자 아리씨도 함께했다. 아리씨는 지난해 민혜씨에게 국어를 배워 이번에 체대에 입학한 앳된 스무 살 여대생이다.
안양이 집인 두 사람은 예전에는 검단산에 오려면 지하철을 타고 천호나 잠실까지 와서 다시 버스를 타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1호선에서 5호선으로 한 번만 환승해 검단산 아래까지 왔다.
“거리가 멀어 시간은 걸리지만 그래도 이렇게 편하게 올 수 있으니 참 좋네요. 역에서 산행 들머리까지 멀지도 않고요. 한결 가까워진 게 맞네요. 백패킹 배낭 메고 와도 되겠어요.”
민혜씨는 “예전엔 검단산까지 오는 데 진을 다 뺐었다”며 새로운 역이 생긴 걸 누구보다 환영했다.
하남검단산역 3번 출구에서 오늘 산행 들머리인 애니메이션고교까지는 불과 600m 남짓, 흩날리는 ‘벗꽃엔딩’을 바라보며 걷다 보니 벌써 산행이 시작된 기분이다. 배낭을 멘 등산객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을 보니 활기찬 분위기가 난다.
월남전참전기념탑이 있는 들머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유길준 묘까지는 넓은 산책로 느낌이라 여유롭다. 따뜻한 봄바람에 꽃향기가 실려 날아다녀 기분이 붕 뜬다. 도심의 산은 오지의 산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다. 마치 자연 속 백화점에 온 느낌이랄까, 비록 마스크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지나는 등산객의 표정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검단산은 검단지맥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남한산성 남쪽에도 검단산(523.9m)이 있지만 ‘검단지맥’에서 가리키는 ‘검단’은 하남 검단산이다. 아마도 높이에서 우위에 선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두 산 모두 임금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제단이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검단산에서 ‘검다’는 의미의 ‘검(黔)’자를 쓰지만 그 의미는 단군왕검(檀君王儉)에 쓰인 ‘검(儉)’과 통한다. 즉 우리 옛말에서 ‘검’은 ‘높다, 크다, 신성하다, 거룩하다’는 뜻으로, 후에 임금을 뜻하게 되었다. ‘단(丹)’은 단(壇)과 통해 제단을 뜻한다.
검단산은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웅거했을 당시 ‘백제의 진산(鎭山)’이라고 불렀을 만큼 풍수지리학적 명당으로 손꼽힌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 창업주의 묘소도 이 검단산 자락에 있다.
“그냥 흔한 산 이름인가 했더니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저도 이제 산 이름에 대한 공부를 해봐야겠어요.”
민혜씨는 국어 강사라 이런 이야기에 흥미를 보인다. 취재 오기 전 미리 공부해 둔 것이 통했다. 역시 부지런한 새가 한 번이라도 더 칭찬받는 법이다.
임금이 하늘에 제사 올리던 산
거창한 이름과 달리 검단산은 아담하다. 어느 곳에서 산행을 시작하든 2시간 이내에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산 좀 탄다 하는 사람은 절반 정도 시간이면 충분하다.
“아리씨, 같이 좀 가요.”
방년(芳年)의 나이인 체대생 아리씨가 멀찌감치 앞서 나가고 있다. 아리씨는 “어? 바로 뒤에 따라오시고 계신 줄 알았어요”라며 웃어 보인다. 심지어 그녀는 땀도 흘리지 않고 있다. 매일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을 가진 이 젊은 처자를 우리가 어찌 따라잡을 수 있으랴.
“아버지가 축구선수셨어요. 그래서 저도 덩달아 어릴 때부터 운동을 많이 했어요. 태권도로 대회에 나가서 메달도 따고 했어요.”
귀여운 외모를 한 그녀의 말투에서 ‘포스’가 느껴진다. 부사관이 되어 직업군인이 될 생각도 하고 있다니 ‘이쯤에서 말을 놓을까’ 했던 생각이 사라진다. 그래도 아리씨는 사진기자의 포즈 연출 요청을 잘 들어 준다.
“사실, 샘(선생님)이 오늘 그냥 같이 산에 가자고만 했었어요. 이렇게 사진 찍고 책에 나가는 줄 몰랐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신경 쓰고 나올 걸 그랬어요.”
민혜씨가 “나이가 깡패야”라고 말한다. 동감이다. 가장 화려하게 피어 있는 꽃에 잎사귀 하나둘 더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족일 뿐이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유길준(兪吉濬,1856~1914) 선생 묘소다. 유길준 선생은 조선 말기의 개화 사상가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비 유학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쓴 <서유견문(西遊見聞)>은 미국을 비롯해 유럽과 동남아 등을 돌아보고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한문 혼용의 서양견문록이다.
유길준 선생의 생애는 평탄치 못했다. 국민 계몽과 민족 산업의 발전에 힘썼지만 근대 격변기 격랑 속에 그 뜻을 펼치지 못했다. 그 자책이었는지 선생은 유언으로 ‘나의 묘지에 비를 세우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선생의 무덤엔 상석도 없이 묘비만 덩그러니 서 있으며, 그나마 묘비엔 선생에 대한 어떠한 기록도 없이 ’1950년 5월 손자가 세웠다'는 사실만 새겨져 있다.
첫 번째 바위전망대 ‘조망 맛집’
유길준 선생 묘소부터 길이 꼿꼿이 서기 시작한다. 작은 바위도 하나둘 발에 밝히며 제법 산행하는 맛이 난다. 나무 계단을 오르고 쉼터를 지난다. 운동기구가 있는 곳에선 아리씨가 숙련된 ‘거꾸리’ 시범을 보여 주었다. 체대생의 본능은 감출 수 없다.
긴 나무계단을 올라 전망바위에 선다. 첫 번째 조망터다.
“와, 대박, 대박!”
큰 기대 없이 갔던 전망바위에서 감탄이 터진다. 서쪽으로 쭉 뻗은 한강을 오른쪽에 두고 왼쪽으로 하남과 서울 도심의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시야도 좋아서 멀리 불갑산과 수락산 등 소위 ‘불수사도북’이 모조리 보인다. 북한산 인수봉도, 남산타워도 미니어처처럼 보인다.
“아리야, 선생님 사진 좀 찍어 줘.”
“저기 바위 위에 서세요. 대박 잘 나와! 샘 저도 찍어 주세요!”
산행 중 가장 밝은 표정을 지은 스승과 제자는 연신 “검단산 조망 맛집”이라며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곤 바로 인스타그램으로 업로드. 두 MZ세대의 산행은 실시간으로 전국에 퍼지고 있었다.
실컷 사진을 찍고 정상으로 향하는 도중 두 번째 전망대를 지난다. 이전 전망바위가 검단산 서쪽의 풍광이었다면 이곳은 동쪽을 향한다. 하지만 나무가 높이 자라 아랫부분이 가려 정상으로 곧장 오른다.
정상엔 등산객이 꽤 많다. 화려한 등산복을 입은 중년 등산객과 티셔츠 한 장에 레깅스를 입은 청년 등산객이 어우러진 모습이 이제는 제법 익숙하다. 부모뻘 되는 아저씨들 인증 사진을 찍어 주는 청년들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정상 조망데크에 서니 한강을 가운데 두고 예봉산과 예빈산이 마주하고 있다. 그 아래로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도 보인다. 사방으로 중미산, 유명산, 청계산, 관악산 등 수도권 명산의 능선이 펼쳐진다. 들인 수고에 비해 너무나 멋진 선물을 안겨준다.
“정상에서 막걸리 한잔하려고 물도 안 마시고 있었는데, 오늘은 노점 문 안 열었네요.”
공감한다. 기자도 그 ‘소확행’을 기대하며 이제까지 일부러 물을 마시지 않고 정상까지 올라왔던 터였다. 섭섭한 마음에 얼려온 오미자차로 하산주를 대신한다.
아리씨는 검단산 정상석을 연신 쓰다듬고 있다. 방탄소년단 멤버가 올라와 손을 얹었던 곳이란다. 어쩐지 포대화상 배처럼 반질반질하더라니 BTS 덕분에 정상석이 검단산 명물이 되었다.
사색하며 걷는 지맥 길
정상 아래에서 점심 도시락을 꺼내 먹고 종주 길에 나선다. 이제부터 검단지맥을 걷는 것이다. 대부분 등산객은 정상에서 현충탑으로 내려가거나 조금 더 길을 이어 산곡초교로 내려선다. 오롯이 취재진만이 걷는 ‘전세 산행’이 시작된다.
사람의 말소리가 사라진 능선엔 바람과 나뭇잎 소리가 가득하다. 이름 모를 새들도 한껏 목소리를 낸다. 검단산에서 들떴던 마음이 조금 차분해지고 이제는 오롯이 걷는 일에 집중한다. 민혜씨와 아리씨도 묵언 수행이라도 하는 듯 조용히 걷는다. 사색의 시간, 힐링의 시간이다.
작은 공터인 두리봉과 용마산을 지날 때까지 오르막에선 좌절하고 내리막에선 기뻐하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가늠한다.
“검단산까지 재미있게 걷고, 용마산까지는 조용히 생각하며 걸을 수 있으니 더 좋은 것 같아요. 밸런스가 딱 맞는데요?”
엄미1리 버스정류장으로 하산하는 길에 오늘 산행 소감을 물었더니 다행히 둘 다 ‘대만족’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에 지하철역 하나 더한 것뿐인데, 이렇게 좋은 산이 성큼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