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미군기지는 지난 6·25 전쟁 당시 국군이 잠시 육군본부 지하벙커로 사용한 것을 제외하면 우리 국민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됐던 곳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군이 방공 벙커로 사용했고, 이후에는 미군이 사용했습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용산공원의 해설을 맡은 문화해설사는 시범개방을 앞둔 공원 입구에 위치한 붉고 큰 건물을 가리켰다. 그간 주한미군의 병원으로 사용됐던 이 건물은 이제 용산공원을 방문하는 우리 국민을 위한 안내센터로 활용될 계획이다.

용산공원 내 남겨진 장군숙소. 1959년대 미국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모습 그대로 남겨져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장련성 기자

120년 동안 금단의 땅으로 여겨졌던 용산공원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때로는 일제의 손에, 때로는 미군의 손에 맡겨졌던 이 공간이 드디어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대통령 집무실 인근의 용산공원 부지를 이달 10~19일 열흘간 일반 국민에게 시범 개방한다. 신용산역에서 시작해 장군숙소와 대통령실 남측 구역을 지나 스포츠필드(국립중앙박물관 북측)에 이르는 직선거리 약 1.1km의 공간이다.

용산공원 시범개방 구간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공원 시범 개방 행사를 앞두고 취재진들이 국토부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미7사단 사령부가 사용하던 숙소 일대를 걷고 있다./장련성 기자

◇1950년대 미국 건축 양식 그대로, 장군숙소 구역

시범개방 부지의 시작을 알리는 14번 게이트 인근의 장군숙소 구역은 1950년대의 시간을 그대로 담고 있는 곳이다. 1959년에 지어진 장군 숙소들은 그때 당시 미국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단층의 붉은색 지붕 건물들이 길을 따라 늘어선 모습은 당시의 미국 마을이 이런 모습이었으리라 상상하게 만든다. 건물 하나에도 4~5개씩 솟아나온 굴뚝은 한국땅을 찾아서도 벽난로 양식의 문화를 즐겼을 미군들의 생활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문을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병원 건물 역시 장군숙소 구역의 볼거리다. 미군들의 종합병원으로 쓰였던 이 건물에 가장 가까이 있는 문이었던 덕에 14번 게이트는 미군들 사이에서 호스피털(hospital) 게이트라고 불렸다고 한다. 병원건물과 불과 5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사우스포스트(southpost) 벙커는 1940년대에 일본군이 방공작전 벙커로 쓰이던 건물을 이후 미군들이 그대로 이어받아 사용했다고 한다. 병원과 벙커라는 이질적인 공간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7일 언론에 미리 공개된 용산공원의 장군 숙소 일대./연합뉴스

이곳에서는 길가를 따라 늘어서있는 전신주 역시 평범하지 않다. 나무로 만들어진 전신주와 콘크리트 전신주가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전신주 사이에 늘어선 전선들은 110v 전자기기와 220v 전자기기를 함께 썼던 흔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국민들이 자신의 소원을 적은 바람개비를 꽂을 수 있도록 한 바람정원 뒤로 대통령 집무실 건물이 보인다./장련성 기자

◇대통령실 건물이 한눈에, 바람정원

장군숙소 구역을 지나 길섶으로 늘어선 플라타너스 나무들을 지나고 나면 이번 시범개방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실 남측 구역이 나타난다. 이곳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국토부는 대통령실을 볼 수 있는 이곳에 ‘바람정원’을 꾸몄다. 바람정원은 용산공원을 방문하는 국민들이 함께 꾸며나가는 공간이다. 방문객들에게 바람개비를 나눠주면 방문객들은 각자의 소원을 적어서 정원에 꽂게 된다. 바람개비에 적힌 소원이 바람을 타고 대통령실은 물론이고 대통령실 넘어 남산으로까지 전달될것만 같은 풍경이다.

이 구역에는 방문객이 쉬어갈 수 있는 ‘카페거리’도 꾸몄다. 전체 공개 구역의 중간지점에 해당되는 이곳에서 방문객들은 식음료를 즐기며 쉬어갈 수 있다.

대통령실 남측 구역 한켠에는 카페거리가 만들어져있다. 전체 공개공간 중간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방문객들이 식음료를 즐기면서 쉬어갈 수 있다./장련성 기자

◇스포츠필드, 공원 주변 마천루도 볼거리

개방공간의 막바지에 해당하는 스포츠필드는 탁 트인 공간과 함께 사진을 찍기 좋은 공간이다. 스포츠필드는 미군들이 체육시설로 사용했던 운동장과 건물들이 이어진 곳이다. 미군들이 야구장 또는 축구장으로 사용했던 푸른 잔디가 파란 하늘과 어우러질 뿐만 아니라 곳곳에 위치한 체육관들의 붉은 벽돌들은 사진에 새로운 색감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길가에 위치한 농구장은 우리나라 여자 농구 대표팀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1967년 한국 국가대표 여자 농구팀은 냉난방이 제대로 되는 연습실을 찾다가 이곳에서 훈련을 했고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용산공원의 특징은 도심내에 공원이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공원 주변으로 늘어선 마천루 역시 볼거리다. 드넓은 잔디 뒤로 보이는 높은 건물들은 용산공원이 서울의 센트럴파크로 불리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스포츠필드에는 특히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20m 초대형 그늘막이 설치될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시원한 그늘과 함께 인상적인 광경을 연출해 사진찍기 좋은 곳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봄·여름·가을·겨울이 모두 아름다울뿐 아니라 비오면 운치있고 눈오면 아름다운 용산공원을 많이 사랑해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