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공간된 오징어할복장, 속초 아바이마을

전쟁이 끝났지만 돌아갈 곳은 없었다.

6·25는 전쟁을 피해 남하했던 피난민들의 고향을 빼앗았다. 휴전선이 지척이었지만 넘을 수 없었다. 실향민들은 통일이 되면 곧바로 고향에 갈 수 있게 석호 청초호와 바다 사이 모래밭에 움막집을 지었다.

나무판자와 종이박스 등을 모아 지은 허술한 집들이 자꾸만 늘었다. 동향 사람들끼리 모여살며 신포마을, 정평마을, 홍원마을, 단천마을, 앵고치마을, 짜고치마을, 신창마을, 이원마을 등을 형성했다. 사람들은 북한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이곳을 '아바이마을'이라고 불렀다.

◆"할복할 사람 찾습니다"…아바이마을 벽화골목

"오징어가 쏟아져 들어오면 마을에 '할복할 사람 찾습니다'라는 현수막이 붙곤 했어요. 오징어가 아니었다면 실향민들이 이 마을에 정착하기 어려웠을 거에요."

실향민들은 배를 타고 오징어를 잡았다. 마을공동오징어할복장에 모여 배를 가르고 손질해 말렸다. 내장으로는 젓갈을 담고, 오징어식혜와 오징어순대도 만들었다. 그렇게 살아내고, 자식을 키웠다.

모래밭에 정착한 실향민들은 시내로 가기 위해 폭 100m의 수로를 건너야 했다. 하지만 운행됐던 도선은 전쟁 중 소실됐고, '조막손'으로 불리던 김영학씨가 로프를 이용해 손으로 끄는 갯배 운행을 시작했다.

2000년 드라마 '가을동화'에 갯배가 등장하며 아바이마을과 갯배는 속초를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코스가 됐다. 마을 곳곳에 벽화가 그려졌다. 골목길을 걸으며 벽화를 살펴보고 글귀를 읽다보면 마음이 저려온다.

◆예술공간된 마을공동오징어할복장

70년의 세월은 아바이마을의 풍경을 변화시켰다. 늘 쏟아져들어오던 오징어와 명태의 어획량이 급격하게 줄고, 마을공동오징어할복장은 운영이 중단됐다.

속소시와 속소문화관광재단은 문 닫은 마을공동오징어할복장을 예술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이곳에서는 오는 17일까지 공존문화지대 프로젝트 '속 깊은 마을, 살펴보는 걸음'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김병재 예술감독이 전국에서 모인 11팀의 작가들과 함께 할복장을 아바이마을 주민들의 기억과 삶, 새 희망의 바람을 담은 예술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전시공간에는 아바이마을에 축원과 헌사를 바치는 '오즉(烏?)의 바람소리', 아마이(여성)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 '아마이 광장' 등 실향민들의 삶을 녹여낸 작품들이 설치됐다.

2층 옥상공간은 '아바이마을 오징어명상스튜디오'로 꾸며졌다. 2층 건물 외벽에 그려진 손과 오징어가 실향민들의 삶을 상징한다. 저녁무렵 루프탑에서 바라보는 석양이 환상적이다.

속초 수제맥주공장 몽트비어와 협업해 만든 맥주 '아바이마을 서머비치라거'와 3대를 이어가고 있는 '김송순 아마이젓갈' 등도 만날 수 있다.

아바이마을에는 지금도 아바이순대, 냉면, 젓갈과 식해 등 함경도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식당들이 가득하다. 식해는 생선에 좁쌀 또는 쌀을 넣어 삭힌 발효음식이다. 남쪽에 비해 추운 함경도 지방 고유의 저염 발효식품으로 명태·가자미·도루묵 등 싱싱한 생선으로 담근다.

◎공감언론 뉴시스 pjy@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