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황제 건륭제가 6번이나 찾아가 맛봤다는 중국 강남(江南)의 음식은 어떤 맛일까. 홍콩은 어떻게 중식 파인다이닝의 대표가 됐을까. 쓰촨요리는 단지 맵고 얼얼하기만 한걸까. 유네스코가 ‘세계 최초의 퓨전 요리’로 공인한 마카오 매캐니즈(Macanese)는 무엇일까. 지난 8월 본지가 주관한 ‘김성윤 음식전문기자와 함께 하는 홍콩·마카오 미식기행’은 이러한 미식가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여행이었다.
◇중화요리의 최첨단, 홍콩&마카오
중국 식문화의 중심은 전통적으로 강남이었다. 하지만 1920년대 국공내전(國共內戰), 1950년대 중국 공산화, 1960년대 문화혁명 등 혼란기를 연이어 겪으면서 거대한 인구와 자본이 각각 영국과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홍콩과 마카오로 이주했다. 이들을 따라 요리사들도 옮겨왔다. 특히 홍콩은 봉인된 중국 본토와 세계를 연결하는 관문으로 번성했다. 홍콩에서 광둥요리는 프랑스·일본 등 다양한 요리를 받아들이면서 꾸준히 진화했고, 고급 중식의 대표로 자리매김했다.
홍콩 더들스(Duddell’s)는 ‘모던 차이니즈 파인다이닝’이 뭔지 보여준다. 테이블에 접시가 놓이면 ‘이게 중식이야’를 넘어 ‘음식이야 예술 작품이야’ 의심하게 된다. 푸른 접시에 담겨 나오는 딤섬 만두는 마치 어항 속에서 헤엄치는 금붕어 같다. 광둥요리 정통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한 단계 도약한 맛과 모양. 서비스와 인테리어도 두말할 나위 없이 빼어난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이다. 3F, 1 Duddell Street, Central, Hong Kong
마카오 ‘윙레이(Wing Lei)’는 미쉐린 2스타를 15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 전통의 맛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대적 재료와 조리법으로 업그레이드한 첨단 광둥요리는 입에서 맛보기 전 눈부터 즐겁게 한다.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용 모양 샹들리에 등 웅장하고 화려한 인테리어가 식당에 들어서는 손님을 압도한다. Wynn Macau, Rua Cidade de Sintra, NAPE, Macau
홍콩은 동양뿐 아니라 서양요리의 정점도 맛볼 수 있는 국제 미식도시. 헐리우드 거리 ‘네이버후드(Neighborhood)’는 오너셰프 데이비드 라이(David Lai)의 창조적 재해석이 더해진 서양 음식을 낸다. 라이 오너셰프는 미국 서부에서 요리를 배우고 일하다 프랑스 알랭 뒤카스 셰프의 ‘스푼’의 홍콩점 오픈을 맡으며 고향에 돌아왔다가 독립해 네이버후드를 차렸다. 와인, 위스키, 고량주 등 어떤 술이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내는 비스트로(bistro)에 가까운 식당이다. 미쉐린 1스타에 이어 지난해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9위에 올랐다. 소금을 두껍게 발라 구운 닭의 살과 내장, 프랑스 모렐 버섯을 듬뿍 올린 ‘솔트-베이크 라이스 치킨’은 배가 터질 지경인데도 계속 먹게 된다. 61-63 Hollywood Road, Central, Hong Kong
평범한 음식일수록 탁월하기 힘들다. ‘정두(正斗·Tasty Congee & Noodle Wantun Shop)’는 홍콩 사람들이 매일 먹는 일상식의 정점을 보여준다. 광둥성 광저우 출신 창업자가 1946년 홍콩 완차이에 노점상으로 출발해 오늘날 홍콩과 마카오, 중국 본토, 태국 등 아시아 전역에 지점을 둔 ‘완탕면 제국’을 건설했다. 꼬들꼬들한 에그누들과 탱글탱글한 새우가 들어간 완탕면은 홍콩 최고로 꼽힌다. 담백하면서 감칠맛 가득한 쌀죽, 하들하들한 쌀국수와 소고기를 간장에 볶은 소고기 쌀국수 볶음, 돼지고기에 꿀을 발라 훈여한 홍콩식 바비큐 차시우 등 어떤 메뉴를 골라도 실패가 없다. 미쉐린 가이드로부터 가성비 맛집을 뜻하는 ‘빕 구르망(Bib Gourmand)’을 10년째 놓치지 않고 있다.
◇황제가 사랑한 요리, 화이양
강남은 대운하 건설 이후 중국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 된 장강(양자강) 지역을 말한다. 항저우와 양저우, 쑤저우, 난징, 화이안 등 인구가 많고 부유한 도시를 중심으로 섬세하고 세련된 식문화가 꽃을 피웠다. 찌고, 삶는 요리법을 활용해 제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다. 만주족이지만 한족 문화를 선망했던 건륭제는 강남을 여섯 번이나 순행했다. 항저우에서 너무나 마음에드는 음식을 맛보고는, 그 음식을 만든 요리사 장동관(張東官)을 베이징으로 데려가 자금성 총주방장 자리를 맡겼다.
마카오 더 런더너 호텔에 있는 ‘더 화이양 가든(The Huaiyang Garden)’은 강남요리로 미쉐린 별 2개를 받은 세계 유일한 레스토랑이다. 화이양은 화이안(淮安)과 양저우(揚州) 두 도시의 앞 글자를 따 만든 명칭으로, 강남요리의 대명사로 쓰인다. 장쑤성에서 직송한 새우, 장어, 민물 생선을 오랜 경력에서 나오는 정교한 칼질로 다듬어 섬세한 맛을 완성한다. 중국 강남 문화의 정수로 꼽히는 정원(庭園)의 건축 요소들을 활용해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The Londoner Macau 2nd Floor, Macau
◇매운맛의 폭넓은 스펙트럼, 쓰촨
쓰촨(四川)은 매운 중식의 대명사로 알려졌지만 무식하게 맵지만 않다. 산초, 고추, 후추를 정교하게 사용해 매운맛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여기에 짜고, 시고, 달고, 쓴맛을 더해 깊고 진한 맛을 낸다. 중국 전역에서 가장 즐겨 먹는 가정식 메뉴 대부분이 쓰촨에서 나왔다. 마마를 앓아 얼굴이 곰보가 된 노파가 만든 마포더우푸(麻婆豆腐)가 대표적이다.
‘파이브 풋 로드(Five Foot Road)’는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영어 이름이다. 마방이라 불리는 상인들이 중국 차와 티벳 말을 교역하던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인 차마고도는 폭이 다섯 자에 불과해 붙여졌다. 쓰촨성 청두(成都)는 차마고도의 중국쪽 끝으로, 다양한 소수민족의 식문화가 청두를 통해 쓰촨 그리고 결국에는 중국 식문화에 융합됐다. 40년 경력의 쓰촨 출신 양덩촨 셰프가 맵고 얼얼한 마라만이 쓰촨의 맛이 아님을 세련되게 입증하는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산수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아름다운 인테리어도 더욱 만족스런 미식 경험에 기여한다. GF, MGM Cotai, Avenida da Nave Desportiva, Cotai, Macau
◇매캐니즈, 세계 최초 퓨전 요리
유네스코가 ‘세계 최초의 퓨전 요리’로 공인한 매캐니즈 요리(Macanese Cuisine·澳門土生葡菜)는 사실 퓨전 요리라는 말이 나오기 전부터 존재했다. 16세기 대항해 시대 마카오에 발디딘 포르투갈이 유럽·아프리카·인도·동남아시아에서 가져온 식재료·향신료·조리법이 중국 식문화와 400년 넘게 융화하며 탄생했다. 포르투갈 바칼라(염장 대구)와 인도 강황, 동남아 코코넛 밀크가 조화롭게 섞였다.
‘라 파밀리아(La Famiglia)’는 마카오 타이파 빌리지 골목에 숨은 유서 깊은 매캐니즈 레스토랑. ‘가족(파밀리아)’이라는 상호처럼, 오너셰프 플로레스 알베스(Alves)는 손님들이 식당이 아닌 매캐니즈 가정에서 먹는 맛과 분위기를 고스란히 살려낸다. ‘아프리칸 치킨’ ‘바칼라우 크로켓’ ‘해물밥’ 커리 크랩’ 세라두라’ 등 대표적 매캐니즈 음식을 두루 낸다. Rua dos Clerigos No.2830, Taipa , Mac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