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킹메이커 로저스톤'

“무명보단 악명이 낫다”, “(누군가를 당선·낙선시키기 위해서는) 허위정보가 가치 있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사람. ‘흑색선전과 돈만 있으면 미키마우스도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 ‘트럼프의 남자’로 불리는 정치 컨설턴트 로저 스톤(68) 얘기를 담은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킹 메이커 로저 스톤(Get Me Roger Stone·2017)’은 선거를 앞두고 한 번 볼 만한 작품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이끌어낸 선거 공학자 로저 스톤이 펼치는 희대의 선거 전략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다.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미국 선거에서도 얼마나 추잡한 네거티브 전술 마타도어가 횡행하는지, 자신의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자나깨나 오로지 선거만을 생각하는 집요함, 이기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처절함 등이 실감나게 드러난다.

넷플릭스 '킹메이커 로저스톤'

눈 앞에 닥친 선거에서 무슨 수를 쓰든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후보라면 ‘내겐 왜 이런 참모가 없을까’ 한탄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이 다큐에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소득이라면 ‘트럼프가 왜 저런 식으로 말하고, 저렇게 행동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해답의 단초 정도는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로저 스톤은 19세이던 1972년 공화당 소속인 리처드 닉슨 대통령 재선 운동 캠프에서 선거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탈리아와 헝가리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민주당 성향의 집안 환경에 영향을 받았지만 정치판 데뷔는 공화당에서 한 것이다.

넷플릭스 '킹메이커 로저스톤'

그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여덟살 때 학교 식당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에게 ‘리처드 닉슨은 토요일에도 학교에 나가는 걸 좋아한대. 닉슨이 당선되면 토요일에도 등교해야 돼’라고 말하고 다닌 기억이 있다. 그때가 내가 처음으로 정치 수완을 발휘했던 때”라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꼬마 선거 전략가'였던 셈이다. 그랬던 그는 보수 성향의 책을 읽고 자라며 오히려 닉슨에 빠져 들어 열렬한 ‘닉슨 팬'으로 변신한다. 등에 닉슨의 얼굴을 문신했고, 지금도 그의 플로리다 집에는 닉슨 기념품을 모아 전시해 놓고 있다. 닉슨이 워터게이트로 하야할 때 ‘워터게이트 사건 최연소 연루자’가 돼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끝까지 닉슨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있다.

넷플릭스 '킹메이커 로저스톤'

닉슨 재선 캠프에 뛰어든 19세 청년은 베트남 전쟁을 강력히 반대하는 단체의 기부금을 공화당 내 닉슨의 경쟁자에게 전달하고, 이를 언론에 흘려 경쟁자를 낙마케 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경쟁 후보가 반전(反戰) 사회주의자라는 인상을 갖게 해 공화당 후보로서는 큰 결격를 가진 것처럼 꾸미는 마타도어 작전을 쓴 것이다.

공화당 요원을 고용하여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조지 맥거번의 선거캠프를 감시하도록 하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전략을 지휘하기도 했다. ‘닉슨에 미친 악랄한 승부사’라는 닉네임은 이래서 얻은 것이다.

게티이미지

이 다큐에서는 로저 스톤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기까지의 과정도 자세히 그려진다. 로저 스톤은 1980년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대선 후보 캠프에서 일하고 있을 때 레이건의 고문이었던 로이 콘의 소개로 트럼프를 처음 만났다. 당시 30대의 젊은 사업가였던 트럼프는 스톤의 요청에 따라 레이건 캠프에 거금을 후원할 만큼 둘은 처음부터 궁합이 맞았다.

이후 스톤은 로비 업체를 차렸고, 트럼프는 카지노 사업 확장을 위해 스톤을 로비스트로 고용하면서 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스톤은 트럼프를 그냥 기업인으로서만이 아니라 매력적인 대선 후보감으로 점찍고 정계로 끌어들이기 위한 작업을 계속한다. 스톤은 “트럼프를 처음 봤을 때 기수(騎手)가 명마를 발견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넷플릭스 '킹메이커 로저스톤'

스톤은 1988년부터 끊임없이 트럼프에게 대선 출마를 권유했고, 10년 넘게 고민을 거듭하던 트럼프는 마침내 1999년, 스톤을 대선 출마 준비위원장으로 임명하며 개혁당 후보로 대선 도전에 나선다. 그러나 중도 사퇴하면서 둘의 동거는 다시 잠복기에 들어간다.

2011년 트럼프의 대선 도전설이 나돌 때 스톤은 한 정치전문 매체에 “트럼프가 다시 대선에 출마하려고 한다는 내부 정보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군불을 땠지만, 트럼프는 스톤이 자신의 대변인이 아니라고 일축해버렸다.

넷플릭스 '킹메이커 로저스톤'

그렇지만 결국 대선을 1년 앞둔 2015년 트럼프는 마침내 또 다시 대선 도전 뜻을 밝혔고, 스톤은 캠프의 배후에서 트럼프 대통령 만들기에 돌입한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로 안보 사항을 주고 받아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내용의 ‘개인 이메일 불법 사용' 논란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게 한 것이 바로 스톤의 작품이었다. 스톤은 이를 빌미로 힐러리를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캠페인을 주도했고, 이는 선거 기간 내내 힐러리를 괴롭힌 ‘히트 상품’이었다.

쇠락한 공업 지역인 ‘러스트벨트’ 지역의 백인을 집중 공략해야 한다는 것도 스톤이 입안한 전략이었다.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의 출생지가 미국이 아니라는 의혹을 또 끄집어 낸 것도 그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내에서 출생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증명했지만 그때는 특유의 ‘아니면 말고’ 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가 버렸다.

넷플릭스 '킹메이커 로저스톤'

선거 과정에서 트럼프를 가장 심각한 위기에 빠뜨렸던 ‘성추문 스캔들’에서 구해준 것도 스톤이었다. 성추문 스캔들이 터졌을 때 트럼프의 러닝 메이트였던 마이크 펜스 부통령마저 “이런 일은 가족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며 등을 돌리려 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그런데 스톤은 추문이 터진 후 열린 트럼프와 힐러리의 2차 TV 토론회에서 과거 빌 클린턴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던 여성들을 방청석 맨 앞줄에 앉도록 하는 기발한 전략을 펼쳤다. 당시 이 모습을 본 힐러리는 몹시 당황했고, 토론을 시청하던 유권자들의 머릿속에서 트럼프 성추문은 어느 정도 희석될 수 있었다.

넷플릭스 '킹메이커 로저스톤'

스톤은 거짓정보 흘리기 혹은 물타기 전략을 통해 ‘프레임’을 만들어 나가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는 것을 이 다큐는 속속들이 보여준다. 그리고 허위 정보를 흘린 후, 그게 부메랑이 돼 돌아오면 아니면 말고’ 식으로 덮고 넘어가거나, 명확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부인하고 또 부인하는 전략으로 버텨 나간다. 그렇게 버티는 동안 또 다른 전략과 허위 정보를 양산해 내면 프레임을 바꿀 수 있다는 게 그의 전략이다.

다큐에는 ‘가자 힐러리!(Go Go Hillary!)’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는 스톤의 모습이 나온다. ‘스톤이 힐러리의 선거운동을 한 적이 있나?’라는 의아함이 드는 순간, 그 문구 아래쪽에 적힌 다른 문구가 보인다. ‘감옥으로!(Go to Jail!)’ 놀라운 반전인 동시에 ‘자나 깨나 이길 방법만을 생각한다’는 스톤의 집요함을 실감케 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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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2019년 러시아 스캔들 관련 허위진술, 증인매수, 공무집행방해 등 7가지 혐의로 40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은 스톤을 사면권을 이용해 전격 감형했다. 명분 없는 측근 사면을 두고 온갖 비난이 쇄도했지만 트럼프에게 스톤이 얼마나 필요한 사람이었는지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다. 당시는 2020년 재선 도전을 앞두고 스톤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였다.

관련 기사를 읽고 다큐를 보면 두 사람의 관계가 더 잘 이해된다.

[기사보기] ①트럼프, 최측근 수감 직전 사면…“닉슨도 못했던 짓”

[기사보기] ②트럼프 40년 지기 “대선서 지면 계엄령 선포해야”

개요 다큐멘터리 l 미국 l 1시간41분

등급 18세 이상 관람가

특징 선거의 계절에 볼 만한 다큐

로튼토마토🍅 : 88%

IMDB⭐ : 7.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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