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보쌈’ ‘야쿠르트’ ‘마스크팩’.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외국인들은 “새롭다” 말하는 이 물건들이 등장하는 횟수가 많을수록 환호받는 ‘미국’ 영화가 있다.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All the Boys I’ve Loved Before)’. 일명 ‘내사모남’ 3부작으로 불리며 뉴욕타임스 40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열여섯 살 한국계 미국 고등학생 소녀 ‘라라 진 송 코비’의 유쾌한 연애담과 성장기를 그렸다. 2018년 8월 넷플릭스에서 첫 영화화 된 1편이 공개되자마자 그해 최고 시청 프로그램이 됐고, 2020년 2월 공개된 후속작 내사모남 ‘P.S. 여전히 널 사랑해’ 편 역시 흥행에 성공했다. 그리고 올해 2월, 3부작 시리즈에 종점을 찍는 최종화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편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1편과 2편이 ‘혼자 간직하려고 어릴 때부터 써뒀던 다섯 통의 연애편지가 실제로 우표가 붙어 발송됐다’는 발칙한 상상을 뼈대로 한 줄거리를 계속 이어갔다면, 3편은 드디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 주인공 라라 진과 피터 카빈스키 커플의 이야기에만 오롯이 집중한다. 연애편지 속 명문장으로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을 만큼 글쓰는데 소질이 있던 라라 진이 유명 영문과가 있는 뉴욕대로의 진학을 고민하게 되면서, 고향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스탠퍼드대에 입학하게 된 피터와 커플 간 장거리 연애의 위기를 겪는 과정을 담았다. 사랑에도 물리적 거리가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담은 것.
여기에 졸업 파티 프롬(Prom), 둘 만의 러브송과 미트큐트(MeetCute·첫사랑과 처음 만난 순간의 기억) 찾기 등.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미국 청소년들의 최대 관심사들을 총출동시킨 에피소드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한가득 담겼다. 마치 라라진과 피터가 졸업해버린 뒤에는 더 이상 이 영화가 그릴 수 없는 하이틴 로맨스를 남김 없이 보여주겠다는 것처럼 말이다.
◇한류 열풍과 함께 더욱 짙어진 영화 속 ‘K 키워드’
내사모남은 특히 모범생 반장 혹은 너드(천재형 괴짜)형 조연이나 주인공 친구 역할에 그쳤던 동양계 배우를 주연 삼아 화제가 됐던 영화이기도 하다. 단순히 편견을 깨는 수준이 아니라 ‘라라 진 신드롬’으로 불릴 정도로 극 중 한국계 주인공의 생활 양식 하나하나를 동경의 대상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실제 배우는 한국계가 아닌 베트남계 미국인이지만, 그가 영화 속 먹고 마신 장면 하나하나는 공개될 때마다 미국 패션 잡지들에 앞다퉈 ‘핫’한 한식으로 소개되고 있다.
영화의 후속작이 나온 시기와 BTS, 블랙핑크 등 K팝 가수들의 흥행, 비비고 만두 등 K푸드 열풍이 겹친 것도 이 영화 속 한국식 문화가 더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이 덕분인지 1편에선 마스크와 야쿠르트 정도로 선보였던 라라 진 가족과 친구들의 한국 문화 체험이 2편에선 설날과 한복, 송편으로 대거 늘어나더니, 3편에선 아예 주인공 가족이 한국 여행을 가게 된다. 극 중 곳곳의 주요 OST에 블랙핑크 등 한국 가수들의 노래가 심심찮게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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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워싱의 흥행 공식을 날려버린 내사모남
이 같은 반향의 주역은 단연 원작 소설을 쓴 한국계 소설가 ‘제니 한’이다. 버지니아에서 태어난 이민 2세인 그는 ‘내사모남’ 시리즈 소설이 성공한 후 찾아온 헐리우드 제작사들이 “백인 주인공(whitewash)”을 외칠 때, 끝까지 “라라 진은 한국인, 적어도 동양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물론 일부 아시아계 팬들 사이에선 “영화 속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주인공 라라 진이 오히려 동양인보다도 더 까만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지닌 게 어색하게 느껴진다”는 반응도 있다. 작가의 노력에도 한국계 주인공을 바라보는 헐리우드의 고정관념을 영화 속에서 완전히 몰아내진 못한 것처럼 보인단 뜻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변두리 역에 머물던 동양인들이 주역으로 활약할 수 있음을 제대로 보여줬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영화 속 스토리가 한국계 주인공에게 특화해 맞춰 수정된 것이 아닌, 전형적인 헐리우드판 하이틴 로맨스의 정석을 그대로 따른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영화 곳곳에 한국식 문화가 감초처럼 자주 등장하긴 하지만, 대부분 극 중 흥미를 더하는 문화적 특성일 뿐 줄거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오히려 ‘졸업식 무도회 준비’ ‘서로 다른 대학에 입학하면 장거리 연애로 이별’ 등 라라 진이 영화 속에서 고민하는 주제와 사고방식은 누가봐도 한국이 아닌 미국 고등학생의 것. ‘공부는 잘 못 하지만 운동은 잘하는 근육질 미남이 남친’ ‘그런 남친을 놓고 학교 제일의 퀸카와 경쟁’ ‘연애 상담과 조언을 도맡는 단짝은 아웃사이더 혹은 동성애자 친구’라는 등의 설정도 미국 하이틴 로맨스 장르의 ‘클리셰(고정관념)’처럼 그간 백인 청소년인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게 당연한 흥행공식처럼 여겨져 왔었다. 그런데 이 자리를 한국계이면서도 누구보다 미국적인 ‘라라 진’이 차지해 익숙한 줄거리임에도 흔하진 않은 ‘내사모남’만의 색깔을 완성했고, 오히려 더 큰 호응을 불러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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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매력적인 한국계 주인공 덕분인지 ‘내사모남’은 ‘해피엔딩’이란 결말이 뻔히 보이는데도 계속 호기심을 갖고 각 장면을 들여다 보게 된다. 한국식 ‘정(情)’을 말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라라 진과, 어릴 적 가정불화의 기억을 감싸주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씨에 푹 빠진 미국 미남의 선한 사랑이야기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무엇보다 한국식이든, 미국식이든 문화적 차이를 떠나 ‘순수한 학창시절의 첫사랑’은 누구나 가슴 설렐 만국 공통의 공감 주제일 것이다.
개요 하이틴 로맨스 l 미국 l 1시간55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특징 결말이 뻔히 보이지만, 응원하면서 보게 되는.
⭐평점 IMDb 6.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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