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 GM공장 자리에 2015년 문을 연 푸야오 글래스 아메리카 공장. /넷플릭스 '아메리칸 팩토리'
점심 시간 30분, 대기업인데도 시급은 고작 12달러(약 1만3500원), 생산 속도를 올리기 위해서라면 안전 사고 위험도 감수, 노조 결성을 막기 위해 반(反)노조 컨설팅 사에 100만 달러(약 11억3000만원) 넘게 지불.

이런 공장이 미국에 들어섰다. 그것도 GM 자동차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곳에, 그 공장을 인수한 중국인이 2억4000만 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세웠다. 오너는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로, 16세 때부터 갖은 막일부터 시작해 세계 2위의 자동차용 유리 제조업체를 만든 자수성가형 차오 회장. 목숨 걸고 일하려 하지 않는 직원을 보면 열불이 터지기 마련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미국인 근로자 2000여 명을 고용해 미국에서 사업을 벌인다.

넷플릭스 '아메리칸 팩토리'

이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시간 당 29달러(약 3만2800원) 고임금에 하루 8시간, 주 5일만 일하고 잔업은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던 미국인들. 강력한 전미자동차노조의 보호 아래에서 회사가 작업 효율을 올리기 위해 근무 조건을 악화시키는 요구를 하면 곧바로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던 노동자들이었다. 회사가 망해 실직자가 된 후 6년 만에 설립된 중국인 공장에서 일을 하게 돼 새로운 희망을 가졌지만,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실존적 질문까지 던지게 되는 상황에 처한다.

◇29달러 시급 받던 미국인들, 12달러 주는 중국 공장으로…

이런 대립의 설정이 치열한 경제·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의 단면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다. 넷플릭스 ‘아메리칸 팩토리(American Factory·2019)’는 실제 일어난 일을 촬영, 편집한 다큐멘터리여서 영화나 소설에나 쓰일 법한 ‘설정’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의도적으로 설정한 것보다 더 극적인 대립과 갈등이 생동감 있게 부각돼 치밀한 제작 능력이 돋보인다.

넷플릭스 '아메리칸 팩토리'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다큐를 찍기 위해 스티븐 보그나, 줄리아 레이처트 두 부부 감독은 3년 이상을 공장 가까이에 살면서 공장 안팎 사람들의 얘기를 찍고 또 찍었다. 감독들은 “그냥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려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판에 박힌 노사 대립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사업가와 근로자의 숙명, 고뇌가 진솔하게 드러난다. 이익을 내야 일자리가 유지되는 냉정한 자본주의 시스템, 회사가 망해 실직함으로써 냉엄한 자본주의의 현실을 실제로 체험한 노동자들이 ‘정말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아메리칸 팩토리'를 찍은 스티븐 보그나, 줄리아 레이처트 감독. /넷플릭스

이 다큐는 미국과 중국 기업의 운영 방식과 문화, 세계관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실제 현장을 통해 보여주고, 이들이 어떤 해결책을 찾아가는지, 불안하지만 어떤 모습으로 공존하는지 보여준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 미국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그 사이에 끼어 양쪽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우리 처지에서 꼭 한 번 봐야 할 작품이다.

◇오바마 부부가 제작 지원, 직접 출연한 다큐도 만들어

버락과 미셸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제작비를 댔고, ‘아메리칸 팩토리:오바마 부부와의 대화’(A conversation about American Factory)라는 10분짜리 짧은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해 두 감독과 이 다큐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110분짜리 본 다큐를 본 후에, 이 짧은 다큐까지 보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오바마 부부와의 대화에 나오는 스티븐 보그나, 줄리아 레이처트 두 감독의 아래와 같은 말을 들어보면 치열한 이해관계의 대립을 어떻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양쪽의 입장과 진의를 진솔하게 담아낼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넷플릭스 '아메리칸 팩토리'

“의견이 달라도 제작과 편집을 할 때 공정하고 있는 그대로, 모든 관점을 담으려고 했어요. 그곳에 살면서 25분거리 현장을 반복적으로 찾아 갔어요. 직접 가보고 동네 바에 가서 맥주 한 잔 하며 얘기하고, 가까워지면서 인간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남의 사생활을 들추는 필름은 찍지 않습니다. 중국 푸야오의 회장과 경영진은 이 작품이 회사 홍보용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맹신에 가까운 신뢰를 보여줬습니다. 우리는 신뢰를 받으면 배신하지 않습니다.”

넷플릭스 '아메리칸 팩토리'

◇러스트벨트를 살린 중국 공장

쇠락한 공업지역을 뜻하는 미국 ‘러스트벨트’인 오하이오 주 데이턴에 있던 GM 자동차 공장은 2008년 12월 23일 높은 생산비를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공장에서 마지막 차를 만들고 마지막 기도를 하는 장면으로 다큐는 시작한다. 2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데이턴은 황폐해진다.

2008년 12월 23일,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GM 공장이 문을 닫았다. /넷플릭스 '아메리칸 팩토리'

2010년 중국회사들은 미국 제조업에 대한 투자를 늘려 문 닫은 공장을 다시 열기 시작했다. GM에 유리를 납품하던 푸야오(福耀·Fuyao)가 2014년 데이턴 옛 GM 공장 자리에 새 공장을 열었다.

푸야오는 이곳에 지은 공장의 회사명이 ‘푸야오글래스아메리카’라는 점을 강조하며, 중국과 미국의 문화를 융합해서 결국 미국 회사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데이턴에는 ‘푸야오 애비뉴’라는 길까지 생긴다. 채용설명회에는 제조업 28년 경력자, 급여·인사·영업 관련 경력자, 기계공학 석사 학위 소지자까지 몰려든다. 새로운 희망이 싹트지만 ‘점심시간 30분, 15분씩 두 번 유급 휴식 시간 제공, 채용 후 노조 가입은 필수가 아님’ 등 사측 설명은 그간의 미국 회사들과 많이 다른 근로 조건임을 깨닫게 한다.

2016년 10월 27일 워싱턴포스트는 종합 1면 톱기사로 푸야오 공장 설립 스토리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기사 제목은 '중국 백만장자, 오하이오 공장에 수천개 일자리와 명운을 걸다'이다. /워싱턴포스트 캡처

◇자본주의의 현실과 미래를 고민케 하는 결말

중국 사측은 미국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미국 공장에 파견 온 중국인 직원들에게 미국에 관한 강의를 하기도 한다. “대통령에 관한 농담을 해도 될 만큼 개성을 자유롭게 발현할 수 있는 나라다. 미국인들 차는 아주 크다. 미국식 편안함이란 그런 것이다. 복장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여름에 유럽 여행 갔을 때 반바지에 민소매 운동화 신은 사람은 무조건 미국인이다. 자기 생각을 직설적으로 말한다. 알기 쉬운 사람들이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다. 일상생활에서 관념과 이론을 싫어한다.”

넷플릭스 '아메리칸 팩토리'

푸야오그룹 차오 회장이 등장하며 양국 경영문화의 극명한 차이가 드러난다. 차오 회장은 3만5000달러가 든다는데도 공장에 설치된 문을 바꾸라고 지시하고, 공장 준공식 날 비가 올지 모르니 차양을 치겠다고 하는 미국인 간부에게 “비는 안 올 것”이라고 일축한다.

중국인 감독자와 미국인 근로자, 2인 1조로 작업을 하며 서로 간의 신뢰를 쌓아가는 모습도 그려진다. 중국인들은 “미국인이 느리고 손가락이 두꺼워 정밀한 작업이 어렵다”고 푸념하기도 하지만, 몇 년 간 실업자 신세가 돼 빚에 쪼들리며 지하실에서 생활하던 미국인 노동자와, 가족과 떨어져 혼자 미국에 파견돼 외로워하는 중국인 노동자들이 인간적인 유대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넷플릭스 '아메리칸 팩토리'

그러나, 노조 가입을 말리고, 생산량과 품질을 둘 다 챙기라고 요구하는 회사와 미국인 근로자 사이에 갈등은 끊이지 않는다. 안전 사고로 3000명 이상이 해고 또는 퇴사하는 모습이 그려지며 미·중 문화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인 관리들을 중국 푸야오 본사로 초청해 중국 공장 시스템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군대처럼 점호를 하고, 장갑도 안 끼고 하루 종일 깨진 유리를 고르는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과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 시진핑 초상화가 걸려 있는 사무실을 보고 미국인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푸야오 그룹 송년회 장기자랑 모습. 현직 사우들이 춤을 추고 있다. 미국인 노동자들은 처음에는 이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해 한다. /넷플릭스 '아메리칸 팩토리'

회사는 수천억 투자에도 몇 년째 계속 적자가 이어지는 상황 때문에 노심초사한다. 미국인이었던 미국 법인 대표를 중국계 미국인으로 바꾸고, 점심 먹는 장소를 생산 라인으로 바꾸는 등 생산성 향상을 위해 몸부림친다. 직원들은 반발한다. 회사 측은 11건에 달하는 안전 규정 위반 조사를 받게 되고, “중국인이 부두 뒤로 화학물질을 버리는 걸 봤다. 중국인들에게는 규정이라는 게 없는 것 같다”, “데이턴 납세자와 오하이오 주는 수천만달러를 푸야오에 썼는데 지역사회가 받아야 할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받하지 못했다. 노동운동이 미국을 만들고 위대하게 만들었다. 푸야오에는 노조가 없다”는 비판도 쏟아진다.

푸야오 글래스 아메리카 공장 안팎에서 노동조합 홍보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넷플릭스 '아메리칸 팩토리'

회사 측은 노조 결성을 막기 위해 ‘LRI 노동관계연구소’에 100만달러 이상을 지급하고 노동자들을 설득한 끝에, 노조 결성 찬반 투표에서 반대를 이끌어낸다. 사측은 시급을 2달러씩 올려주고, 우수 직원의 중국 연수를 약속하는 등 ‘당근책’도 내놓는다. 반면, 자동화 로봇을 도입해 근로자 수를 줄이겠다는 계획도 세운다.

푸야오 그룹은 노동자를 대체할 자동화 로봇을 도입했다. /넷플릭스 '아메리칸 팩토리'

다큐는 다음과 같은 자막으로 끝난다.

자본주의의 현실과 미래를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하는 결말이다.

개요 다큐멘터리 l 미국 l 1시간50분

등급 전체 관람가

특징 오바마 부부가 제작비 태운 웰메이드 다큐

⭐평점 IMDb 7.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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