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며느라기’ vs 중국 ‘친애적자기’ vs 일본 ‘부인은, 취급주의’

◇아, 가깝고도 먼 당신, 시댁이여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초혼 연령은 2015년 남녀 모두 30세를 처음으로 넘긴 후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특히 미혼남녀들 중 갈수록 결혼을 미루는 사유로 ‘시월드(시댁)’와 고부갈등 걱정을 꼽는 이들이 많다. “딸 같은 며느리는 현실에 없는 유니콘”이라는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적지 않은 남자들도 “고부갈등 중재로 새우등 터지는 건 남편”이라고 호소한다.

해외는 어떨까? 한때 “시월드를 피하려면 국제 결혼을 하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다. 자녀가 일찍부터 자립해 시댁과 친정과의 교류가 적은 문화권은 상대적으로 고부갈등 부담이 적을 거란 뜻이다. 슬프게도 한·중·일 간에는 통하지 않을 전략 같다. 가부장제 문화, 가족 간 결합으로 여겨온 결혼 인식, 시댁의 원조 정도에 따라 출발선이 달라져 버리는 청년층 경제사정 등. 같은 유교 문화권으로 묶여서인지, 고부갈등 원인도 많이 닮았다는 점이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현실이다. 삼국의 드라마 속 시월드를 비교해봤다.

◇한국 며느리 직업=시어머니 아들 아침밥 전담? ‘며느라기’

드라마 며느라기 제목의 뜻./카카오M

“네가 출장 가면, 네 남편 아침밥은 누가 챙겨주니?”

한국 드라마 ‘며느라기’ 속 여주인공 ‘민사린’이 회사일로 출장을 가게 됐다고 말하자, 시어머니 ‘박기동'으로부터 돌아온 말이다. 사린의 남편 ‘무구영’은 30대 동갑내기로 밥 못 챙길 나이도 아닌데 시어머니는 사린이 출장보다 ‘남편의 밥상’을 우선 챙겨야 한다고 말한다.

인기 동명 웹툰을 드라마화한 ‘며느라기’는 ‘사춘기, 갱년기처럼 시댁 식구한테 예쁨 받고 싶은 시기로 사람에 따라 10년 넘게 지속되는 증상’이란 뜻을 제목에 담았다. 시청자들 사이에서 한국 며느리의 심정을 제대로 재현한 ‘하이퍼 리얼리즘 드라마’로도 불린다. 그만큼 곳곳에 한국 시월드에 대한 며느리들의 분노 지점이 잘 담겨 있다.

대표적인 게 시어머니 기동이 며느리 사린을 ‘시댁 가족의 가사 일을 우선하는 사람’으로 여기는 장면들이다. 기동은 사린에게 줄 첫 선물로 앞치마를 고르고, 시댁 가족들에겐 따끈한 밥에 통통한 갈치조림 토막을 주면서 사린에겐 찬밥에 갈치 대신 무만 골라준다. 모두 “딸 같은 며느리”라고 여겨서 하는 행동이라 말하지만 정작 자신의 친딸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남편 기동은 이런 시어머니를 말려달라고 부탁하는 사린에게 “우리 부모님을 나쁘게만 말한다”며 서운하게 받아들인다. 모두 한국 시월드의 전형적인 모습들이다.

며느라기

개요 드라마 l 한국 l 시즌1·12회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특징 명절 때마다 들려오는 기혼 여성들의 하소연을 영상으로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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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 있으면 내 아들 집에서 나가!” 진격의 중국 시어머니, ‘친애적자기’

매번 "왜 아들을 낳으려고 노력하지 않느냐"며 시어머니에게 구박받는 며느리 장즈즈./드라마 친애적자기

“네 남편은 내 아들이니 내 말을 들어야지. 그리고 여기는 내 아들 집이야!”

‘일과 사랑 모두 놓칠 수 없는 30대 세 여자의 리얼 도시 로맨스’를 주제로 한 드라마 ‘친애적자기’는 지난해 중국 후난위성TV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이 드라마 속 시어머니가 가장 많이 하는 대사가 이렇다. ‘어머니의 날(중국판 어버이날. 5월 둘째 주)’에 맞춰 항저우 등 중국 지역 부녀연합회들이 발표하는 고부갈등 설문조사를 보면 특별히 현실 대비 과장된 대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조사에서 중국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경제 관념’, ‘아들(남편) 쟁탈전’, ‘손자녀 교육’, ‘며느리의 직장과 가사 병행’ 등이 고부갈등을 일으킨다고 답했다고 한다.

중국 금일조보 등 현지 매체들은 ‘한 자녀 낳기 1세대’인 ‘바링허우(1980년대 출생)’와 이들의 부모세대인 우링허우(1950년대 출생) 간의 고부갈등이 특히 심화됐다고도 분석한다. 과거 중국의 산아 제한 정책으로 “하나만 낳을 거면 아들”이란 남아선호사상이 강해진 부모 세대와 사회 진출이 활발한 바링허우 이후 세대 여성들의 충돌이 잦아졌다는 것이다.

친애적자기 속 남편 ‘류양’과 결혼해 딸 하나를 둔 30대 워킹맘 ‘장즈즈’도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시어머니로부터 매일같이 “아들 잘 낳는” 한약 마시기를 강요받는다. “여자한테 돈 들일 필요 없으니 낭비 말고 아들이나 낳아라”는 시어머니의 잔소리도 계속된다. 남편 류양은 “우리 형편에 둘째는 절대 무리”라며 즈즈에게 짜증만 내고, 정작 고부 간 싸움은 모른 척 한다.

참다 못한 즈즈가 “어머니도 같은 여자면서 왜 손녀를 무시하냐”며 항변해 보지만, 돌아오는 건 “네가 사는 그 집은 내 아들 집”이란 시어머니의 구박뿐. 결혼 시 남성이 3종 혼수품인 집·차·지참금(彩禮·차이리)을 전부 마련하는 중국 문화에 출처를 둔 구박이지만, 쪼들리는 생활비를 맞벌이로 채우는 즈즈의 입장에선 그런 시어머니가 서운하기만 하다.

그나마 중국 시월드의 장점이 있다면 ‘남편 아침밥’을 둘러싼 고부 갈등은 없다는 점. 중국인들은 아침으로 더우장(중국식 두유), 요우티아오(중국식 꽈배기) 등을 주로 사다 먹기 때문이다. 친애적자기 속 류양이 전날 시어머니와 싸운 즈즈의 기분을 풀어보겠다며 “가게를 바꿨나 봐. 아침이 훨씬 맛있어졌네”라고 말하는 이유다. 마치 한국 남편들이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겠다며 “오늘 아침이 유난히 맛있네”를 일부러 크게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친애적자기

개요 드라마 l 중국 l 시즌1·45회

등급 18세 이상 관람가

특징 고부갈등, 불륜, 복수극. 한국 아침드라마 단골 소재가 중국식으로 한데 모인 드라마

⭐평점 IMDb 6.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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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통 대신 조곤조곤 면박 주는 일본 시어머니, ‘부인은 취급주의’

일본은 한 해 가장 큰 명절이자 양력 새해를 기리는 ‘오쇼가츠(お正月)’날 온가족이 함께 모여 명절 음식을 먹는 게 전통이다. 그러나 일본 며느리들은 손목 고통을 호소하는 명절 증후군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이전부터 설날 음식 대부분을 사오거나, 가족끼리 여행을 겸해 외식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다만 이런 일본에도 ‘고부 갈등’을 넘어 아예 ‘고부전쟁(嫁姑戦争)’이란 단어가 있다. 당장 일본인들이 주로 쓰는 블로그일기 ‘아메바(ameba)’에서 위 단어를 검색하면 일본 며느리들의 각종 시댁 스트레스 호소 글이 줄줄이 나올 정도. 일본은 특히 오랜 가부장제 습성이 고부 갈등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결혼 후 여성 대부분이 남성의 성(姓)을 따라 이름을 바꾸고, 큰아들은 부모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거나 남아선호사상 등의 고정관념도 여전히 짙다. 왕가도 예외는 아니어서 현 나루히토 일왕의 부인 ‘마사코 왕비’는 왕세자비 시절 왕자를 낳지 못 해 시어머니 미치코 왕비와 극심한 고부 갈등을 겪은 것으로 유명하다.

매번 조곤조곤한 말투로 자신을 무시하는 시어머니가 서러운 며느리 사토 쿄코(맨 오른쪽)./드라마 '부인은 취급주의'

일본 현지에선 이런 고부전쟁을 주로 시어머니의 호통치기보다는 “여성은 이래야만 남편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며 조곤조곤 면박주는 모습으로 떠올린다. 일본 드라마 ‘부인은, 취급주의’ 속 며느리 쿄코와 시어머니 간의 자존심 싸움이 대표적인 예. 드라마 속 20대 젊은 부부로, 외아들인 남편의 시어머니를 한집에 모시고 사는 쿄코는 결혼 후 아이가 생기지 않아 초조하다. 불임의 원인은 잠자리를 피하는 남편이었지만, 시어머니는 계속 쿄코에게 “그런식으로 하면 남자가 도망가 버릴 것”이라거나 “조심하렴. 이혼이라도 하면 내 아들 집에서 나갈 사람은 너뿐이니깐”이라며 조곤조곤한 말투로 매일같이 눈치를 주며 괴롭힌다.

이에 맞서는 일본 며느리 쿄코의 방식도 시어머니 못지 않게 결코 직설적이지 않다. 참다 못한 쿄코가 복수를 꿈꾸며 찾아간 곳은 바로 문화센터의 꽃꽂이 강좌반. 자신을 매번 무시하는 시어머니가 매일같이 꽃꽂이를 즐겨하는데, 자신이 더 뛰어난 꽃꽂이 실력으로 꾸민 화병을 집에 갖다 놓아 시어머니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부인은, 취급주의

개요 드라마 l 일본 l 시즌1·10회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특징 일본 기혼 여성들이 타파하고 싶어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의 폐해를 엿볼 수 있음.

⭐평점 IMDb 6.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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