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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재즈를 싫어하는 것은 재즈를 모르기 때문이다. 재즈를 모르는데 재즈를 알아야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것 같고 하이클래스인 것 같고 대학을 나온 것 같고 때론 시가를 피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재즈를 알고 싶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싫어하기로 한 것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을 혐오함으로써 사람들은 가지고 싶은 것에 대한 복수를 완성한다.
재즈는 제가 잘 몰라서, 라고 말하는 사람은 겸손하고 소박한 사람이다. 재즈 그런 거 안 들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은 클래식 그런 거 안 들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과 똑같다. 재즈도 음악이냐, 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떤 분야에서도 취향이 뚜렷하지 않은 낙오자다.
윤석철은 뛰어난 피아니스트이면서 재즈를 쉽게 전파하는 아티스트다. 그의 트리오가 연주한 ‘즐겁게, 음악’처럼 쉬우면서도 정확히 재즈의 본질을 알려주는 음악은 흔치 않다. 빌 에반스의 ‘Waltz for Debby’ 정도가 견주어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나 빌리 홀리데이가 부른 ‘I’m a Fool to Want You’를 대표적인 재즈로 알고 있다. 틀렸다. 두 노래는 훌륭한 재즈 뮤지션이 연주한 팝이다. 두 노래 어디서도 ‘즐겁게, 음악' 만큼 재즈의 묘미를 발견할 수 없다.
동요처럼 들리는 윤석철의 ‘즐겁게, 음악’은 처음 1분간 비슷한 멜로디를 반복한다. 피아노가 이끌고 드럼이 최소한으로 거든다. 드럼은 킥베이스를 거의 밟지 않고 스네어만 두드리다가 아주 가끔 심벌을 핥는다. 그러나 잘 들어보면 저 멀리서 콘트라베이스가 희미하게 음악에 소스를 끼얹고 있다. 이것은 백종원이 볶음밥을 만들 때 진간장 한 숟갈을 태워서 그 향만 밥에 입히는 것과 비슷하다. 음악에 간을 하는 게 아니라 향만 입힌다. 아, 음악 창작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작업인가.
그렇게 첫 1분간 반복되는 쉽고 간단한 멜로디가 재즈에서 말하는 이른바 ‘코러스’다. 1분 30초쯤에서부터 피아노는 슬슬 이 음악이 재즈라고 시동을 걸고 1분 50초쯤에서 악보에 없는 음을 전혀 다른 박자로 두들기며 곡을 확장해 나간다. 2분 30초쯤부터 본격적인 재즈가 시작된다. 처음 멜로디에서 들려준 화성을 바탕으로 전혀 다른 곡을 써나간다. 이것이 재즈이고 재즈의 매력이다. 재즈는 전혀 어렵지 않다. 무식한 사람들이 재즈를 어렵다고 소문냈을 뿐이다. 제가 명곡을 불러보겠습니다, 명곡아~ 하고 한때 술자리에서 노래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것과 재즈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3분 18초에서 음악은 처음의 동요풍으로 돌아온다. 관객들은 아, 이제 곡을 마무리하려는 모양이다 하고 생각한다. 악보에서 시작해 피아노 상판과 다리와 무대 마룻바닥을 훑던 음악이 다시 건반으로 돌아와 마무리하는 음악이 재즈다. 재즈에 관심있는 사람은 윤석철의 ‘여대 앞에 사는 남자’란 곡을 들어보시길 권한다. 여대 앞에 사는 남자를 음악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궁금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