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과 결별한 해리 왕손의 미국인 부인 메건 마클. 그녀는 지난달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영국 왕실을 떠난 이유를 밝히며 ‘아보카도’ 얘기를 꺼냈다. 영국 언론이 케이트가 아보카도를 먹을 땐 환호하다가, 그녀가 먹자 손가락질 했다는 것이다.
지난 2017년 영국 타블로이드 매체들은 윌리엄 왕세손이 입덧이 심한 케이트에게 아보카도를 선물했다는 가십 기사를 앞다퉈 보도했다. 하지만 2년 뒤, 메건이 인스타그램에 아보카도 토스트 사진을 올렸을 때에는 오히려 이를 트집 잡고 헐뜯었다. 메건은 졸지에 ‘인권 침해와 가뭄을 유발하는 아보카도’나 좋아하는 ‘무개념 환경 파괴범’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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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보카도 먹지 마!” 깨시민의 캔슬 컬처?
수퍼푸드로 각광 받아 온 과일 아보카도가 최근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 논쟁의 주요 소재로 떠올랐다. 아보카도가 멕시코 마약 카르텔(폭력 조직)의 돈줄 역할을 하는 데다, 칠레의 부실한 물 관리 정책과 맞물려 수자원 고갈을 일으킨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SNS)에서는 Z세대를 중심으로 아보카도 토스트에 열광하는 사람을 조롱하는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이 전파되고 있다. 특히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에 대한 SNS 구독과 팔로우를 중단하는 ‘캔슬 컬처(Cancel Culture·취소 문화)’와 맞물리며, ‘깨시민(Woke People)’의 외면을 받는 중이다. 공개적으로 아보카도 ‘손절’ 선언을 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숲 속의 버터’라는 별명 대신 ‘피의 다이아몬드’에 빗대 ‘블러드(blood·피) 아보카도’라고 부르는 이들도 생겨났다.
대체 아보카도가 뭐라고, 이런 논란거리가 된 걸까. 이유를 알고 싶다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부패의 맛(Rotten·2018)’의 시즌2 1화 ‘아보카도 전쟁’(56분)을 추천한다. 연둣빛 스타 과일의 그늘을 조명한 이 다큐는 미국 캘리포니아, 멕시코 미초아칸, 칠레 페토르카 산지를 돌며 아보카도의 생산·유통 실태를 파헤친다. ‘윤리적 소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화두인 요즘, 참고할 만한 프로그램이다.
[기사보기] “아보카도 먹지 않겠습니다” 선언하는 사람들
◇세상에 나쁜 아보카도는 없다, 그런데?
미국에서 아보카도는 1990년대까지만해도 캘리포니아에서 나는 ‘계절 별미’였지만 2000년대 들어 사시사철 즐기는 스타 과일로 급부상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멕시코가 1997년 미국에 아보카도를 수출한 영향이 컸다. 멕시코 농부들은 너도나도 아보카도를 심어 미국 시장을 공략했다. 물량이 늘자 가격도 저렴해졌다.
나초칩에 찍어먹는 과카몰리(으깬 아보카도로 만든 멕시코 음식)는 이제 미국 수퍼볼 파티의 대표 간식으로 통한다. 2010년대 이후 아보카도 맛에 눈을 뜬 아시아 시장도 앞다퉈 수입에 나섰다. 관세청 무역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아보카도 수입량은 2010년 457t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만3282t으로 10년 만에 29배 늘었다.
세계적 인기 덕에 아보카도 농부들은 돈 방석에 앉았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부패의 맛 제작진이 찾아간 멕시코 미초아칸은 위험천만한 ‘범죄 도시’로 전락해 있었다. 이곳은 전 세계 아보카도 3분의 1 이상을 공급하는 최대 생산 지역이다.
다큐에선 마약 밀매를 전담하던 카르텔이 아보카도 무역에 손을 뻗쳐 도시를 쥐락펴락하는 모습이 나온다. 카르텔은 시도 때도 없이 농부들을 납치하고, 과수원을 빼앗았으며, 금품을 갈취했다. 헌법 질서가 작동하지 않는 치안 공백 상태에서 범죄자와 일반인이 섞여있는 ‘자경단’까지 등장했다. 무능한 지역 정부는 ‘민간 병력’에 경찰 차량과 총기를 지급했다.
칠레 페토르카는 수자원 고갈로 신음하고 있다. 아보카도는 키우는데 물이 많이 필요한 3대 작물(아스파라거스·아보카도·감귤) 중 하나다. 칠레의 대형 농장주들은 비용을 내면 배타적으로 물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수리권(水利權) 제도를 활용해 아보카도 재배에 뛰어들었다. 정작 인근 지역 주민들은 생존에 필요한 물까지 부족한 지경이 됐다. 뒤늦게 주민과 시민단체가 물 권리 투쟁에 나섰지만, 강은 이미 말라버린 뒤였다.
◇Stream or Skip?…볼까 말까 고민 될 땐
영상을 보기 전부터 아보카도를 끊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한다면, 부담은 일단 내려놓고 보는 걸 추천한다. 어디까지나 문제의 ‘근본 원인’은 아보카도 산지의 미비한 사회·경제 시스템이지, 맛있는 아보카도를 선택한 소비자의 ‘탐욕’ 때문이 아니다. 다큐 역시 소비자들이 일선에서 보이콧 운동을 벌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시청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할 수 있다. ‘이걸 먹어야 해, 말아야 해’ 고민하다 보면, 소비자 불매 운동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곱씹게 될 것이다. 평소 ‘반일 불매’ 외치며 렉서스 타던 선동가들에게 찝찝한 감정을 느꼈던 이들에게 이 다큐를 추천한다.
일부 정치 세력이 기획·주도한 보이콧 운동으로 첨예한 사회 갈등을 수차례 겪었던 우리 입장에서 ‘아보카도 논쟁’은 ‘보이콧 리터러시(literacy·판독 능력)’를 가다듬을 수 있는 소재다. 만일 누군가 갑자기 다가와 ‘왜 아보카도를 먹느냐’고 저격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부화뇌동 하기 전에 △멕시코·칠레 상황이 아보카도 소비와 인과 관계에 놓여 있는지 △불매운동이 문제 해결책으로써 유효한지 △비슷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던 설탕이나 팜유·커피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부터 차근차근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카르텔 소탕이나 물 관리책 개정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아보카도 이슈를 최종 소비자의 윤리 문제로 치환, 개인의 시장 자유를 제한하려 들거나 공격 소재로 삼는 일이 온당한지도 따져 볼 일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과거 캔슬 컬처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가 젊은 세대로부터 ‘꼰대’라는 맹비난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그때 오바마가 했던 말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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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다큐멘터리 l 미국 l 56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특징 세상에 나쁜 아보카도는 없는데…
⭐평점 IMDb 7.2/10 🍅로튼토마토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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