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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의 끝은 쓸쓸하다. 할리우드의 전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객은 그럼에도 주인공 가족들이 다시 꿈을 일궈냈을 것이라고 믿는다. 영화는 그런 내러티브를 생략함으로써 관객을 스토리에 동참시킨다. 관객은 비로소 주인공들의 고집과 갈등과 실수에 감정을 이입시킨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것은, 영화 끝에 나온 노래 ‘Rain Song’이었다.
이 영화 음악감독을 맡은 에밀 모세리가 작곡하고 대사를 번역한 홍여울이 노랫말을 쓰고 한예리가 부른 이 노래는 높낮이의 변화가 거의 없고 박자 빠르기도 일정하다. 노래는 도입부 8마디가 한번 더 반복될 것 같은 부분에서 처연하게 끝나버리고 만다.
한예리의 가사는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잘 전달되지 않으며 그는 마치 허밍하듯 노래한다. 다시 말해서 귀에 쏙 박히는 곡도 아닐 뿐더러 잘 부른 노래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 노래의 서정은 영화의 마무리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며 감성의 강력한 자장(磁場)을 형성한다. 관객은 극 후반 스토리가 주는 스트레스에서 빠르게 벗어나며 쓸쓸하고 먹먹한 심정이 된다.
모세리는 한예리에게 이 노래를 아이에게 자장가 불러주듯 부르라고 주문했다. 거기에 이 노래의 비밀이 있다. 한예리는 극중 딸과 아들에게, 고집불통이면서 삶을 함께 지고 갈 수밖에 없는 남편에게, 척박한 타국의 벌판에서 의지해야 할지 보살펴야 할지 모를 엄마에게 고요히 자장가를 불러준다. “늘 한결 같은 밤/ 속삭이는 마음/ 어우러지네/…/ 고개를 들고/ 떠나가는/ 계절을 배웅하네/…/ 온 세상과 숨을 쉬네/ 함께 맞이하는/ 새로운 밤의 품” 하는 가사는 끝내 관객의 울화를 잠재워 다스린다. 노래는 우리에게 말한다. 이제 그만 좀 쉬라고,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게 끝은 아니라고, 억울하고 화가 나고 답답할 때 먼 곳을 보며 깊게 숨을 내쉬라고.
그러므로 이 노래는 한예리가 부르든 윤여정이 부르든 별 상관이 없었다. 스티븐 연이 불렀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한예리는 음악 프로듀서의 주문을 잘 이해해 제대로 소화했고,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까지 올렸다. 아마도 음악영화 ‘소울’이 없었다면 분명히 ‘미나리’가 음악상을 받았을 것이다.
이 노래는 사운드트랙 중 ‘Big Country’를 편곡해 가사를 붙인 것이다. 거대한 나라, 끝없는 땅, 그래서 막막한 삶을 피아노와 신서사이저, 기타와 허밍으로 표현해 냈다. ‘미나리’가 우리 뿐 아니라 세계 관객들을 사로잡은 것은, 이 세계에서 인간으로 가족으로 조직의 구성원으로 국민으로 산다는 것의 외로움과 고단함과 어찌해 볼 수 없음을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노래 역시 그런 관객 각자의 마음 속 종을 땡그랑 하고 울린다.
에밀 모세리는 올해 서른여섯살로, 버클리 음대에서 영화음악을 공부했다. 유튜브에 공개된 비디오를 보면 ‘Rain Song’에서 그는 기타를 치고 전자장비를 만지며 휘파람도 분다. 그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인디밴드 ‘The Dig’의 멤버다. 그는 이 밴드에서 보컬과 베이스를 맡고 있다. 이 밴드의 노래 ‘Simple Love’를 들어보면 미나리의 음악과 끈이 닿아있음을 알 수 있다. 기타·베이스·키보드·드럼으로 구성된 이 밴드는 단순한 리듬에 튀지 않는 키보드 라인, 절창하지 않는 보컬이 특징이다. 모든 악기가 n분의 1만큼만 역할을 하고 있으며 보컬조차 악기의 하나처럼 다루고 있다.
‘미나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 한 명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영화이면서, 우리가 늘 느끼는 감정을 음악으로 풀어낸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비 오는 밤에 혼자 듣기 시작하면, 이 소품 같은 노래를 적어도 열 번 이상 반복해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스밍 List!] ☞조선닷컴(chosun.com/watching)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