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누군지 모르고 자란 고아가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까? 술집에서 성매매로 생계를 이어가는 미혼모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아동학과 대학생이 술집에서 일하는 미혼모의 베이비시터로 등장하는 영화 ‘아이’는 설정 자체로 자연스레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질문을 던지는 데 그치는 게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답에 초점을 맞춘다. 진부하지만, 각박한 세상살이에 지친 우리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돼준다.
‘아이’는 지난 2월 개봉했지만, 코로나 여파로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관객수 3만7000명에 그치면서 흥행에 실패했다. 하지만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와 깨알 디테일이 살아 있는 이 보석 같은 영화는 넷플릭스에 공개되자 한국에서 영화 1위에 오르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가정의 달인 5월, 훈훈한 가족애를 느끼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고아 베이비시터와 술집 미혼모의 만남
부모에게 버려졌지만, 억척같은 생활력을 발휘하며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하는 아동학과 대학생 아영(김향기). 술집에서 일하랴, 갓난 애기 키우랴 삶이 버겁기만 한 미혼모 영채(류현경). 한국 사회에서 가난한 고아와 술집 나가는 미혼모가 겪을 어려움이야 말해 무엇하랴. 영화는 이 상처 많은 두 사람이 만나면서 생기는 일을 그리고 있다.
둘은 첫 만남부터 상처를 자극한다. 영채는 아영에게 대놓고 고아냐고 물어 무안을 준다. “고아 아니에요. 부모님이 어디서 뭐 하는지는 모르지만, 부모님 있어요”라고 말하는 아영에게 “그러면 없는 거야”라면서 비수를 찌른다. 온종일 아기를 맡겨 놓고도 일당은 5만원만 주겠다면서 퉁 친다. 보통은 15만원 이상씩 드는 데 말이다. 시원하게 욕 한바탕 날려주고 때려치워도 될 것 같은데, 아영은 이를 묵묵히 받아들인다.
아영은 아동학과에서 배운 실력에 평소 따뜻한 마음씨가 어우러져 ‘육아 만렙’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영 역을 맡은 김향기는 영화 ‘증인'에서 자폐증 소녀 연기를 리얼하게 소화하는 등 이미 연기파로 이름을 알린 바 있다. 이번에도 아이를 돌보는 모습에서 깨알 디테일을 잘 살려냈다. 기저귀를 갈아줄 때 “아이고, 잘했네” 칭찬해주면서 갈아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기 기저귀 갈아줄 때 싫은 기색을 하면 아이가 눈치 채고 똥을 안 싸려 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잘했다고 칭찬해 주면서 갈아준다고 한다.
심지어 아기인 ‘혁이’의 연기력도 일품이다. 아영에게 안겼을 때는 마치 매미처럼 착 안기는데, 엄마지만 같이 보내는 시간이 덜한 영채에게 안길 때는 자꾸 밀어내려 하면서 어색해 하는 모습을 실감 나게 연기했다. 영화를 볼 땐 몰랐지만, 혁이를 연기한 아기 배우는 1명이 아니었다. 탁지안·지온 쌍둥이가 열연했다. 이런 디테일이 살아있어서 그런지, 보는 내내 거슬리지 않고 절로 몰입하게 된다.
◇아이 버리고, 자기 인생마저 포기할 뻔한 벼랑 끝에서 영채를 잡아준 손
영화는 끊임없는 갈등 상황을 연출한다. 엄마인 자신보다 아영을 따르는 모습에 질투를 느끼는 영채. 심지어 본인의 무심함 때문에 혁이가 크게 다치는 상황까지 벌어지는데, 이를 아영의 탓으로 몰아간다. 합의금 명목으로 돈까지 뜯어내려 하면서, 어떻게든 만나서 대화로 풀어보려는 아영을 끝까지 외면하는 모습에선 ‘정말 정 떨어지게' 연기를 잘한다.
밥을 먹이려 해도 먹질 않고, 아무리 달래봐도 울음을 멈추지 않는 혁이 앞에 영채는 지쳐간다. 급기야 혁이를 불법 입양 중개업자에게 넘기는 최악의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혁이가 ‘환장했던’ 노란색만 봐도 눈물이 쏟아지는 그녀. 죄책감과 후회로 넋이 나간 그녀는 한밤중에 라이트도 켜지 않고 차를 몰다가 교통사고까지 당한다. 그런 영채에게 룸살롱 사장이 한마디 날린다. “인생 원래 고다. 렛츠 고(Let’s go) 할 때 고 아니고 쓸 고(苦), 못 먹어도 고 할 때 고 아니고 빌어먹을 고!”
절망에 빠진 그녀 앞에 다시 나타난 사람은, 결국 다시 아영이었다. 혁이를 입양시키기로 했다는 말에, 부모에게 버려졌던 트라우마를 떠올리는 아영. 자기가 키워봤자 술집 여자 자식이라고 손가락질밖에 더 당하겠느냐고 말하는 영채. 끝내 서로 상처를 다시 들쑤시는 이들은, 과연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진부한 스토리인 듯 하지만, 지루할 틈 없이 빠져들어 볼 수 있는 영화다. 한 번씩 울컥 하는 장면들도 많다. 아마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과 살아있는 디테일이, 조건 없는 가족의 사랑을 바라는 마음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술집 미혼모, 고아 베이비시터, 그리고 아기도 평범한 가족처럼 살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이 세상에 부모나 가족의 자격 같은 것은 없다고. 딸을 버린 부모, 임신한 아내를 버린 남편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개요 가족 영화 l 한국 l 15세 l 113분
특징 가정의 달 맞춤 힐링 영화
평점 네이버 관람객 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