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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맘 때, 서울은 ‘편리왕’ 두 명을 열광적으로 맞이했다. 노르웨이에서 온 소년 같은 얼굴의 팝 듀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Kings of Convenience)’는 생각지도 못했던 한국 팬들의 반응에 놀라고 즐거워하다 못해 당황해했다. 팻 메시니에게 ‘팽만식’ 허비 행콕에게 ‘허병국’이란 이름을 지어줬던 한국 팬들은 이들을 ‘편리왕’이라고 부르며 환호했다.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공연 도중, 결국 관객들이 좌석을 박차고 무대 앞으로 밀려들었다. 메인 보컬을 맡은 얼랜드 오여는 노르웨이는 물론 주로 활동하던 미국에서도 보지 못했던 열광에 거의 얼어붙다시피 했다. 그는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뮤직비디오에서 간혹 보여주던 막춤을 추며 한국 공연을 만끽했다. 열살 때부터 친구인 두 사람의 당시 나이 서른 셋, 이들은 전성기를 한국에서 보냈다.
그리고 이듬해 새 음반을 낸 편리왕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얼랜드 오여만 솔로 앨범을 내고 공연을 하러 한국에 몇 번 더 왔을 뿐이다. 그렇게 이 노르웨이 출신 인디 팝밴드는 잊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이들이 최근 12년 만에 신곡 ‘Rocky Trail’을 발표했다. 새 앨범도 곧 내놓는다고 한다.
꺼벙한 이미지의 얼랜드 오여는 성공한 월스트리트 금융맨 또는 물리학 교수 같은 인상의 중년이 됐다. 아이릭 글람벡 뵈의 조각 같은 얼굴은 그대로이지만 둘 다 마흔 여섯살이란 나이를 속일 수 없는 모습이다. 변하지 않은 건, 어쿠스틱 기타 두 대를 기본으로 하는 이들의 음악, 피치를 높이지 않고 성량의 절반만 쓰며 속삭이는 노래, 박자 빠르기에 거의 변화가 없어 늘 소품처럼 느껴지는 작곡법이다.
이들이 한국에 알려지는 데엔 ‘I’d Rather Dance With You’라는 뮤직비디오가 큰 역할을 했다. 2004년 MTV의 유러피언 뮤직비디오 1위에 오른 이 영상은 편리왕 노래들 중 그나마 박자가 빠르고 음의 높낮이 폭도 큰 편이다. 얼랜드의 꺼벙한 이미지도, 아이릭의 잘생긴 얼굴도 이 비디오에서 널리 알려졌다.
당연히 여자 팬들이 남자 팬들보다 훨씬 많았고 연예인 중에서도 이들의 팬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얼랜드는 2014년 내놓은 솔로 앨범 수록곡 ‘Garota’ 뮤직비디오를 서울에서 찍었고, 배우 이하나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Garota’는 포르투갈어로 ‘소녀’라는 뜻이다.
편리왕의 노래들은 박하게 말하자면 비슷한 노래들의 끊임없는 연속이고, 후하게 쳐주자면 인공적인 맛이 전혀 없는 샐러드 같은 음악이다. 채소를 우물물에 깨끗이 씻어 아무런 드레싱 없이 채소 자체의 단맛으로 먹는 듯한 느낌이다. 너무 오래 들으면 질릴 수 있지만, 가끔 들으면 더 없이 반갑고 싱싱하다. 그러니 무려 12년만에 듣는 이들의 신곡이 악 쓰고 핏대 세우고 미간 찌푸리며 부르는 노래들 속에서 더없이 반갑게 들린다.
이들의 히트작 중 하나인 ‘Misread’도 그런 노래다. 집중해서 듣지 않아도 되는 노래, 그냥 곡의 전체 풍경만 봐도 좋은 음악, 시작하는 것 같더니 끝나는 연주다.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올려다 본 하늘, 아스팔트에 무작위로 떨어지며 얕은 웅덩이를 만드는 빗물, 지하철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다리 난간들 같은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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