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반포 한강공원에서 실종됐다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손정민씨에 대한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연합뉴스

이달 내내 서울 강남에 살던 의대생 손정민(22)씨의 사망 사건이 큰 화제였다. 여론을 의식한 정부가 수사에 총력을 기울였고, 이른바 ‘방구석 코난’으로 불리는 네티즌들까지 총출동했지만, 사건의 진실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그 과정에서 아들을 잃은 아버지, 의심 받는 친구와 그 가족,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건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 모두가 조금씩 상처 받고 있다.

한 번쯤 이런 사건이 벌어지기 전 과거로 돌아가 볼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안타까운 건 손씨 사건뿐만이 아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2년 넘게 풀리지 않은 미제 사건이 2020년(8월) 1333건에 달한다. 사건 직전 상황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사건 자체를 없던 일로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허무맹랑한 이런 상상을, 탄탄한 설정과 개연성 있는 스토리로 훌륭하게 구현해 낸 애니메이션이 있다. 바로 일본에서 2017년 완결돼 430만부 넘게 발행된 인기 원작을 바탕으로 한 ‘나만이 없는 거리’다.

/넷플릭스 '나만이 없는 거리'

◇'타임루프' 통해 연쇄살인 사건을 막아라

생계를 위해 피자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29살 청년 후지누마 사토루에게는 특별한 초능력이 있다. ‘리바이벌’이라고 불리는 이 능력은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 발동된다. 능력이 발동되면 주인공은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건이 실제로 벌어지기 전에 막아낼 시간을 벌어주는 ‘타임 루프’ 능력인 것이다. 사토루는 이 능력으로 교통사고를 당할 뻔한 아이를 구해내는 등 위기에 처한 이들을 도와준다.

하지만 사토루에게 불의의 사고가 닥친다. 리바이벌을 통해 유괴될 뻔한 아이를 구해내지만, 그 범인과 얽히게 되면서 정작 사토루의 어머니가 살해 당하고 만다. 급기야 어머니를 살해한 용의자로 오해 받게 되는 사토루에게 또다시 리바이벌이 발동한다. 다만 보통 때 1~5분 정도 짧은 시간을 되돌아가던 리바이벌이, 이번에는 무려 18년 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고 만다.

리바이벌이 발동하는 모습. /넷플릭스 '나만이 없는 거리'

29살 사토루의 정신은 초등학교 5학년의 몸으로 들어간다. 리바이벌된 시점은 과거 동네 아이 3명이 유괴돼 살해 당했던 연쇄살인사건 직전이었다. 사토루는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이 연쇄살인사건의 범인과 동일 인물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깨닫는다. 특히 당시 사건 피해자였던, 이혼한 엄마에게 학대 당하는 같은 반 친구 하나즈키 카요에게 연민을 느낀다. 도도하면서도 서정적인 눈빛이 매력적인 카요는 일상이 된 가정폭력 때문에 마음이 굳게 닫힌 상태였다. 혼자서만 상처를 참아내다 끝내 누군가에게 유괴돼 살해 당할 운명이었다. 그녀가 남긴 글에서 그녀의 심정이 절절하게 전해진다.

초등학생이 된 사토루는 18년 전 과거에서 그 모든 범죄의 고리를 끊어내기로 결심한다. 일단은 카야를 지켜내는 게 첫 미션이다. 그는 범죄를 막아내고, 진범을 찾아낼 수 있을까. 진범을 찾아내면, 현실에서 살해 당한 어머니의 운명도 바꿀 수 있을까.

◇다른 시대 형사들이 공조하는 국내 작품 ‘시그널’도

나만이 없는 거리는 탄탄한 스토리가 최대 강점이다. 타임 루프라는 자칫 유치해질 수 있는 SF 요소를 가미했으면서도, 치밀한 구성과 적재적소에 배치된 복선 덕분에 스토리 내내 흡입력이 뛰어나다. 중간 중간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소소한 개그 요소들도 재미 포인트다. 특히 아동 연쇄유괴 및 살인이라는 소재뿐 아니라 교내 외톨이, 아동학대 등 소재를 다루면서 현대 가정의 문제를 잘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토리가 워낙 매력적이다 보니, 애니메이션에 이어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됐다. 다만 애니메이션보다는 다소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다.

/tvN '시그널'

국내 작품 중에는 서로 다른 시대의 형사들이 공조해 미제사건을 풀어내는 tvN 드라마 ‘시그널’이 있다.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은 유괴사건의 목격자였던 초등학생이 15년 뒤 성장해 경찰이 된다. 그는 경찰서에서 우연히 발견한 무전기로 한 경찰과 교신을 하게 되는데, 놀랍게도 그 경찰은 15년 전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미제로 남았던 유괴사건을 담당한 형사라고 말이다. 드라마는 이들이 무전기를 통해 시간을 뛰어넘는 공조로 미제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스토리를 다룬다.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 사건,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한 범죄의 기억은 우리에게 왠지 모를 불편함을 심어준다. 한때는 화제가 됐을지라도, 결국엔 모두가 잊고 넘어갔다는 찝찝함을 되살리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 미제로 남고 나면 끝내 해결될 가능성이 작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타임 루프’까지 동원해 끝내 해피엔딩을 그려내려는 작품들이 나오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작품 속에서라도 통쾌함을 느끼면서, 현실의 씁쓸함을 잠시 잊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개요 애니메이션 l 일본 l 15세 l 12부작

특징 ‘타임루프’ 능력으로 과거 범죄 막을 수 있을까

평점 IMDB 8.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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