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

3만명 인파가 한 남자의 강연을 듣기 위해 야외 경기장에 모였다.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고 일부는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러자 남자는 말했다. “진리를 찾으러 온 이들이 겨우 비 몇 방울도 못 참는가.” 잠깐 정적이 흘렀다. 남자는 강연을 이어갔고, 대부분이 비를 맞으며 그 강연을 들었다.

깊은 우물 같은 눈빛, 탁월한 언변, 대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소유한 이 남자의 이름은 오쇼 라즈니쉬. 그는 70~80년대에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친 종교 지도자다. 그는 모든 인종, 국적, 종교가 하나 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명상법을 전파하고, 대중들에게 강연을 다녔다. 그에게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의 가르침을 좇아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저서 ‘배꼽’ 등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추종자들은 그를 ‘살아있는 성자’로 추앙했다. 맹목적 지지에 힘입어 그는 실제로 자신이 주장하던 ‘유토피아’ 만들기에 나선다. 과연 그는 성공했을까? 그에 앞서, 그가 만들려 했던 것이 ‘유토피아’가 맞긴 했을까? 2018년에 나온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는 그 모든 과정을 다루고 있다.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

◇미국 황무지에서 시작된 ‘유토피아’ 도전기

다큐는 1981년 미국 오리건주 안티로프라는 인구 50여명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다. 보수적인 기독교 신자들이 모인 조용하던 마을에 갑자기 빨간 옷을 입은 무리의 사람들이 하나 둘 유입됐다. 스스로 ‘산야신’(수행자)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오쇼의 추종자들이다. 이들은 안티로프 인근 거대한 황무지에 농장을 만들기 시작한다. 발전소를 짓고, 상하수로를 만들고, 도로를 깔았다. 궁극적으로는 자신들만의 도시를 건설하겠다고 했다. 오쇼가 주장하던 이상적인 유토피아, ‘코뮌 라즈니쉬푸람’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오쇼는 왜 인도가 아닌 미국에서 유토피아 만들기에 나섰을까. 인도 정부가 기존 힌두교와 대립하는 가르침을 설파하던 오쇼를 위험 분자로 보고 견제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예 미국에 사람이 거의 없는 넓은 황무지를 사들여, 방해 받지 않고 자신들만의 낙원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지역 주민들도 반발했다. 전혀 다른 문화의 사람들이 대뜸 나타나 삶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

오쇼 집단 내부의 문란한 성생활이 알려지면서 주민들과 갈등은 극에 달했다. 오쇼 집단은 공개적으로 개방적인 성생활을 장려했지만, 실제로 이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는 철저히 비밀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내부자가 몰래 이들의 삶을 영상으로 담아 영화로 만들면서 그 민낯이 드러났다. 영화에선 나체 상태의 남녀 수십명이 집단 난교를 벌이며 뒹굴고 있었다. 주민들은 “자유분방한 난교를 즐기는 컬트 집단에게 침략 당했다”며 여론전을 펼쳤고, 미국 전역에서도 큰 사회적 이슈가 됐다.

그러자 오쇼의 추종자들도 반격에 나섰다. 이들은 기존 마을 주민들로부터 집과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이던 카페나 쇼핑몰을 붉은 옷을 입은 추종자들이 차지해 버렸다. 아예 시 행정권을 빼앗기 위해 안티로프로 추종자들을 전입시켰다.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노숙자들을 데려와 투표권자로 등록시키기까지 했다. 급기야 이들이 주민들을 괴롭히기 위해 마을에 식중독균을 뿌렸다는 논란까지 벌어진다. 양측의 대립은 갈수록 치열해져만 간다.

◇공허·무의미 위로해주면 범죄자라도 괜찮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쇼는 결국 유토피아 건설에 실패한다. 오쇼 집단은 온갖 술수를 동원해 미국 사회와 맞섰지만, 내분까지 생기면서 버텨낼 결속력을 잃고 만다. 오쇼는 살인 미수, 결혼이민 사기, 독극물 살포 등 혐의로 범죄자 명단에 오르기까지 한다. 그는 비행기를 타고 버뮤다로 탈출을 시도하지만, 미국 경찰에 붙잡힌다. 미국에서 추방돼 인도로 보내진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59세 이른 나이로 사망한다. 한때 성자로 추앙받던 인물 치고는 비루한 최후를 맞은 셈이다.

오쇼는 반짝이는 보석을 병적으로 좋아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억원을 호가하는 고급차 롤스로이스 수집광이기도 했다. 그를 추종하는 이들에게 걷은 돈으로 혼자 사치를 즐긴 것이다. 심지어 목적을 위해 온갖 범죄를 지시했거나 최소한 묵인한 정황이 알려졌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오쇼와 그의 가르침을 추종하는 집단이 존재한다. 그의 책은 전 세계에서 팔리고 있고, 그의 명상법을 배우기 위해 온라인 강연을 보는 사람들도 있다.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

이에 대해, 오쇼가 삶에 대한 무의미와 공허를 호소하는 이들의 결핍을 제대로 자극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는 냉전시대에 혐오 정서,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 빈부격차에서 오는 박탈감 등이 만연했던 시대였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은 이들에게, 오쇼가 희망과 위안을 줬다는 것이다. 지금 시대에도 그러한 공허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기에 오쇼에게 매료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혹자는 말한다. “오쇼에게 범죄 의혹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의 가르침에서 큰 위안을 얻고 있다”고. 하지만 “온종일 섹스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달콤한 사기에 사람들이 홀렸을 뿐”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오쇼는 진정한 영적인 지도자일까, 사회에 혼란만 초래한 문제적 인물일까. 6시간40분 남짓한 다큐를 정주행하면서 답을 찾아보면 어떨까.

개요 다큐멘터리 l 미국 l 18세 l 6부작

특징 현자인가 사회적 재앙인가

평점 IMDB 8.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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