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리뷰 작품은 드라마 ‘오월의 청춘’이지만, 잠시 ‘빌리 엘리어트’라는 영화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2001년 개봉 당시 봤을 땐 그냥 유명한 남성 발레 무용수의 실화를 다룬 영화인 줄 알았다. “사내놈이 무슨 발레냐”하는 가부장적 분위기에 굴하지 않고, 기어코 발레를 욕심낸 소년의 성장 드라마 정도로 생각했다. 몇 년쯤 지나서야 알았다. 1980년대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총리가 밀어붙인 산업화 정책으로 탄광 산업 종사자들이 겪은 아픔을 다룬 영화였다는 것을.
영국 역사와 배경을 알아보고 다시 본 영화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었다. 영화 속 대부분 장면들에는 경찰이 서성이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의도적인 연출이다. 각본가 리 홀은 탄광촌 출신으로 영화 대처 때문에 마을 공동체가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그 한을 영화에 절절하게 담았던 것이다. 처음엔 주인공 빌리가 “(발레를 출 땐)마치 제가 나는 것 같아요. 새처럼요”라는 대사가 귀에 들어왔다. 두 번째 봤을 땐, 파업 전선에서 이탈해 배신자라고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일터로 나가는 빌리의 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동료들을 배신하면 어떡하냐”며 따지는 첫째 아들에게 “빌리에게도 기회는 줘야지”라며 울부짖는다.
◇시대에 삼켜진 청춘남녀의 기구한 사랑 이야기
‘오월의 청춘’을 보면서 빌리 엘리어트를 떠올렸다. 단순히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특정한 시대, 특정한 세대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 우리나라에도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자주 다뤄진 소재가 민주화 운동이다. ‘박하사탕’부터 ‘화려한 휴가’, ’1987′, ‘택시 운전사’, ‘보통 사람’ 등 이를 소재로 한 영화를 여럿 봤다. 대부분 민주화 운동과 이를 탄압한 군정부를 노골적으로 부각한다. 오월의 청춘은 그 시절 광주에서 인연을 맺은 청춘남녀의 기구한 사랑 얘기를 앞세운다. 평범한 시절에 만났더라면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았을 이들이, 시대의 소용돌이에 삼켜지는 모습을 통해 그 시절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내비친다. 마치 발레 소년 이야기를 하면서 탄광촌의 아픔을 드러냈던 빌리 엘리어트처럼.
드라마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두 남녀가 운명적으로 만나면서 시작된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어려운 광주 보안대 과장의 혼외자 황희태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아버지를 둔 탓에 ‘빨갱이’로 몰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딸 김명희. 하지만 동시에 잘생기고 센스있는 서울대 수석 의대생이자 불의를 참지 못하고 책임감 있으면서도 때로는 저돌적인 매력을 뽐내는 간호사인 두 남녀는 운명처럼 5월의 광주에서 만나게 된다. 우연히 스치던 둘은 선 자리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사업가 집안과 정략결혼시키려고 황희태를 내보낸 선 자리에, 정작 사업가 딸 대신 ‘대타’로 나온 김명희가 나온 것이다.
◇주연급 4인4색 매력에 웃다가도, 울게 되는
둘은 운명적으로 끌리지만, 첫단추부터 불안하게 시작한 인연은 주변 모두의 반대 속에서 갖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급기야 광주에 군부대가 투입되고 시민을 향해 총칼을 휘두르는 혼란 상황까지 닥친다. “다른 것 다 필요 없으니, 둘이서 행복하게만 해주세요”라는 듯한 이들의 절절한 사랑은 수시로 흔들리고, 시험받는다. 드라마는 그 과정에서 광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배경처럼 보여준다.
오월의 청춘은 ‘오월의 달리기’라는 동화책을 원작으로 했다. 게다가 젊은 남녀의 연애를 소재로 했다기에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보는 내내 먹먹할 수밖에 없었다. 제작진은 “허구의 이야기지만, 역사적 사실 관계에 왜곡이 없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 기자도 드라마를 보면서 중간 중간 “설마 저렇게까지 했을까” 생각에 역사 기록을 한 번씩 다시 찾아보기도 했다. 막연하게 잘못 알고 있던 사실을 몇 가지 찾아내기도 했으니, 간만에 문화 콘텐츠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됐다.
최근 본 드라마 중에는 단연 인상적인 수작이었다. 주연급으로 등장하는 배우 이도현, 고민시, 이상이, 금새록은 모두 신인상을 하나씩은 거머쥐었을 정도로 연기파로 4인 4색 매력을 발산한다. 특히 이도현의 능글맞은 표정 연기와 고민시의 구수한 사투리는 자칫 오글거릴 수 있는 분위기마저 자연스럽게 만들어준다. 탄탄한 연기력이 뒷받침됐기에, 때로는 익살스럽다가, 때로는 절절하게 슬픈 감정 밀당에 시종일관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로맨스 드라마다. 아무리 극적인 상황에서도, 사랑은 꽃피운다는 것이 드라마의 핵심 메시지다.
개요 드라마 l 한국 l 2021년 l 12부작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특징 현실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사랑은 꽃피운다
평점 없음(닐슨코리아 최고시청률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