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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5일 김수철은 트레이드마크인 야구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이태경 기자

대한민국에서 김수철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뮤지션은 드물다. 록밴드 리더에서 솔로 가수로 전향해 조용필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다가, 기타로 국악 산조를 연주하는 뮤지션으로 변신했다. 88올림픽, 2002년 월드컵,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도 기타 산조를 연주했다.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하는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 주제가를 작곡하고 부른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도 그 모든 캐릭터가 혼재돼 있는 예술가다.

만화 '날아라 슈퍼보드'

그의 최고 음반은 1983년 발매된 솔로 1집 ‘작은 거인 김수철’이 꼽히지만, 그 2년 전인 1981년 2인조 밴드 ‘작은 거인’의 두 번째 앨범도 빼놓을 수 없는 음반이다. 바로 올해 발표 40주년을 맞은 노래 ‘별리’가 이 음반에 실려있다. 김수철은 이 앨범에서 드럼을 제외한 모든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도 불렀다.

▼별리

이별 대신 별리(別離)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멋스럽고 문학적이지만, 이 2분18초짜리 소품은 훗날 김수철이 왜 국악쪽으로 방향을 트는지 미리 단초를 제공한 노래다.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하는 창법이며 가사가 옛 시조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8마디 멜로디를 조금씩 변형해가며 세번 반복하는 게 전부라고 할 만큼 단순한데, 발표 당시엔 기성 가수들이 부르던 민요풍 노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장르로 받아들여졌다.

▼일곱색깔 무지개

‘작은 거인’ 2집은 한국 헤비메탈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이 앨범에는 ‘일곱색깔 무지개’ ‘새야’ ‘알면서도’처럼 반복되는 기타 리프(riff)를 앞세운 헤비메탈 곡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일곱색깔 무지개’는 김수철이 대학 밴드 ‘작은 거인’ 시절 발표한 노래로 작은 거인 1집에도 실려있는데, 2집에서는 완전히 다른 노래처럼 편곡했다. 그러나 이후 김수철은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때 거의 예외없이 원곡 버전을 연주하고 있다.

▼일곱색깔 무지개 원곡 버전

‘작은 거인’ 2집이 나오던 시기에 한국 헤비메탈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미국에서 결성돼 한국에 들어온 밴드 ‘무당’이 그 현란한 연주를 선보였나 하면, 배철수·지덕엽·라원주 등의 록밴드 ‘송골매’가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었다. 훗날 기획 음악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판도를 완전히 바꾼 이수만도 당시엔 ‘이수만과 365일’이란 꽤 헤비한 음악을 하는 밴드 리더였다(다만 그의 보컬은 ‘헤비니스’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그런가 하면 카랑카랑한 고음 덕분에 ‘나이프 조’라는 별명으로 불린 조하문의 밴드 ‘마그마’가 ‘해야’라는 걸출한 하드록을 크게 히트시켰다.

▼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김수철의 원맨 밴드였던 ‘작은 거인’ 2집을 헤비메탈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 음반에 수록된 메탈 곡들의 완성도와 목소리를 찌그러뜨려 메탈 보컬을 시도한 김수철의 노래들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별리’는 김수철의 헤비메탈을 소개하기 위한 미끼 음악으로 쓰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이 앨범은 40년 전 국내에서 녹음됐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세련된 레코딩 수준을 자랑한다. 오아시스 레코드에서 녹음한 이 앨범은 그로부터 5년 뒤에 ‘헤비메탈’이란 제목을 달고 나온 시나위 데뷔 앨범보다도 녹음 수준이 뛰어나다.

▼알면서도

무엇보다 이 음반엔 ‘어둠의 세계’라는 괴작이 실려있다. 당시 국내 뮤지션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베이스가 이끌고 사이키델릭한 기타가 그 뒤를 따르는 이 연주곡은 영미권의 록 음악을 들으며 국내 밴드 음악을 얕잡아 보던 음악 팬들과 뮤지션들 모두를 충격에 빠뜨릴 만한 창작이었다. 이 곡의 베이스 라인을 듣다 보면 훗날 김수철이 기타를 가야금이나 거문고처럼 다루면서 산조를 연주한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어둠의 세계

40년 전 이 명작을 내놓은 2년 뒤 김수철은 솔로 가수로 다시 나타나 ‘못다핀 꽃 한송이’를 히트시키며 잠시나마 조용필의 인기를 능가하기도 했다. 이어 ‘젊은 그대’ ‘나도야 간다’ ‘내일’ 같은 메가 히트곡을 줄줄이 내놓던 그는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느닷없이 기타 산조를 연주하며 인기 가수의 안락한 삶을 냅다 차버렸다. 그 뒤로 지금껏 야구모자를 쓴 채 기타를 메고 무대에서 방방 뛰는 자유인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스밍 List!] ☞조선닷컴(chosun.com/watching)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이한철 ‘슈퍼스타’

🎧장덕 ‘예정된 시간을 위해’

🎧카더가든 ‘명동콜링’

🎧메탈리카 ‘Enter Sandman’

🎧패닉 ‘UFO’

🎧김현철 ‘City Breeze & Love Song’

🎧FUN ‘We Are Young’

🎧혁오 ‘Love Ya’

🎧김민기 ‘아침이슬’

🎧조용필 ‘사랑해요’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 ‘Rocky Trail’

🎧Ssing Ssing ‘NPR 콘서트’

🎧한예리 ‘Rain Song’

🎧한영애 ‘봄날은 간다’

🎧들국화 ‘사랑한 후에’

🎧롤러코스터 ‘어느 하루’

🎧소히 ‘산책’

🎧윤석철 트리오 ‘즐겁게,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