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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저녁, 어김없이 빈대떡집이 붐빈다. 비 오는 소리와 빈대떡 부치는 소리의 파장이 비슷하다고 했던가. 저기압이 강해지면 공기의 전파가 적어 음식 냄새가 훨씬 잘 퍼져서, 빈대떡 부치는 고소한 냄새가 사람들을 끈다고도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빈대떡을 떠올리는 사이, 뮤지션들은 악보 공책과 연필을 집어든다. 가을 장마가 시작된 요즘도 그들의 손이 음표를 그리느라 바쁠 것이다.
기타리스트 이병우의 ‘비’는 외로운 사람에게 내리는 비다. 이병우가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할 당시 작곡한 이 연주곡은 먼 나라에서 기약 없는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남자의 창 밖으로 내리는 비를 절묘하게 묘사했다. 이병우의 비는 퍼붓지 않고 안개처럼 흩뿌리지도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니 이미 비가 내리고 있었고 점심 때 문득 창 밖을 내다보니 여전히 내리고 있다. 한결 같은 리듬으로 작은 소음을 만들며 꾸준히 내린다. 곡 중반부에서 비는 잠시 그치는 것 같더니 곧바로 다시 똑 같은 리듬의 비가 내린다. 조금 굵어졌다가 다시 가늘어졌다 반복되지만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처럼 내린다. 이병우는 비처럼 반복되는 멜로디를 억지로 틀어 작은 파열음을 내면서 곡을 마친다. 비가 그친 게 아니라,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기로 한 것 같다.
▼이병우 - 비
클래지콰이 프로젝트의 ‘Gentle Rain’은 비 오는 날 즐거운 약속을 앞둔 사람의 노래처럼 들린다. 그러나 가사는 비를 맞으며 이별을 고하는 내용이다. 그 부조리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DJ클래지가 프로듀싱을 맡고 호란과 알렉스가 노래를 했던 이 팀은 2000년대 초 이 노래를 비롯해 매우 세련되고 도회적인 사운드를 선보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자미로콰이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한 음악이며, 당시 국내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었던 일본의 전자음악 ‘시부야케이’의 영향도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호란이란 걸출한 보컬리스트를 등장시킨 그룹이다. 이 노래 초반에 등장하는 호란의 노래는 ‘목소리를 악기처럼 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보여준다.
▼클래지콰이 - Gentle Rain
비가 오면 라디오에 신청이 쏟아지는 곡 중 하나가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 리 오스카의 ‘Before The Rain’이다. 곡 제목과는 달리 비가 한창 쏟아진 뒤 반짝하고 갠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어쩌면 비가 올 것처럼 꾸물꾸물한 날씨에 기분 전환용으로 듣기 좋은 곡을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이 연주곡의 메인 멜로디는 아주 잘 알려져 있지만, 8분이 넘는 이 곡 전체에 깔려있는 기타와 베이스, 드럼, 브라스와 바이올린까지 섬세하게 듣다 보면 편곡이 매우 뛰어난 곡임을 알 수 있다. 곡 중반부터 시작돼 장장 3분여 동안 계속되는 오스카의 솔로 연주는 하모니카로 재즈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모범적으로 보여준다. 마지막 20초를 채우는 빗소리를 들으면 비로소 ‘아, 이제 비가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리 오스카 - Before The Rain
피아니스트 신이경의 연주는 조지 윈스턴이나 유키 구라모토처럼 뻔하지 않다. 그녀의 건반은 류이치 사카모토처럼 멀리 돌고 돌아 결국 큰 원을 그린다. ‘비오는 숲’에서도 신이경은 예상하기 어려운 건반 사이를 옮겨다니며 독특한 감성을 만들어낸다. 앨범 재킷은 재즈 레이블 ECM을 연상케 하고, 클래식과 재즈 사이 어딘가를 지향하는 듯한 그녀의 연주를 듣다 보면 비 내리는 고요한 숲 속에 와있는 듯한 실감이 난다. 심지어 젖은 나무와 흙의 냄새가 느껴지는 연주다. 비오는 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무한 반복으로 들어도 좋은 곡이다.
▼신이경 - 비오는 숲
[지난 스밍 List!] ☞조선닷컴(chosun.com/watching)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