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 지난 27일 공개된 D.P.가 공개 나흘 만에 국내 순위 1위에 올랐다. 육군 헌병 보직 중 탈영병을 잡는 ‘군무 이탈 체포조(D.P.)’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지금껏 ‘용서받지 못한 자’ ‘창’ ‘푸른 거탑’ 등 군생활을 실감나게 다룬 콘텐츠들이 많았지만, DP를 본격적으로 다룬 드라마는 처음이다.
김보통 작가의 웹툰 ‘D.P. 개의 날’이 원작. 실제 군무 이탈 체포조로 복무했던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반영했다. 극의 배경은 2014년, 전 국민을 분노케 했던 ‘윤 일병 사건’이 일어났던 그 해 가을이다. 드라마는 군 내 폭력·성폭력, 폭언, 가혹행위 등 각종 부조리를 견디다 못해 탈영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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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배경이라 현재 군 상황에 대입하며 보기엔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윤 일병’ ‘임 병장’ 사건 이후 군 내 가혹 행위가 크게 줄었고, 특히 2019년부터 일과 시간 후 병사들의 영내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하면서 병영문화가 크게 개선됐다는 것이다. 실제 탈영 인원도 줄고 있다.
그러나 물리적 폭력만 폭력은 아니다. “수법이 달라졌지만 폭력적인 문화는 여전하다” “나도 최근 전역했지만 따돌림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곳곳에서 나온다. 올해 육군 훈련소 인권 침해 논란이 있었고, 성추행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폭력이 여전하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공군·해군·육군에서 연속적으로 드러난 여군 중사·부사관 성폭력 사건이 그 예다.
드라마를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는 폭력의 대물림과 ‘방관’이다. 드라마는 군에서의 폭력을 주로 다루지만 가정 폭력, 연인 관계에서의 폭력부터 사회 곳곳의 갑을 관계에서 벌어지는 언어폭력까지 폭넓게 다룬다. 피해자의 고통과 무력감, 대다수가 이를 방관하는 현실을 그린다. 군 복무 경험이 없어도 몰입하며 볼 수 있는 이유다.
◇폭력은 어디에나 있다
주인공 안준호 이병(정해인)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에게 무자비하게 쏟아내는 아버지의 폭력을 방관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동시에 오랫동안 폭력 환경을 견디며 자란 정서적 학대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때때로 아버지에게 얻어맞는 어머니의 모습이 유령처럼 나타나 묻는다. “준호야. 안 도와주고 왜 그러고 있어?”
입대 전 배달원 일을 하며 손님에게 갑질과 모욕을 당하고, 사장에겐 “가정교육 안 된 새끼”라는 폭언을 듣는 주인공은 군에 입대해서도 폭력과 마주한다. 그가 속한 헌병대엔 구시대적 가혹행위 등 부조리가 만연하다. 못 박힌 벽 쪽으로 후임병의 머리를 밀어내며 폭행하고, 어머니의 편지를 뜯어 읽으며 가난을 조롱한다.
드라마는 어떤 면에선 주인공의 성장기다. 더 이상 폭력 앞에서 웅크리지 않고 본래의 힘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부조리를 견디다 못해 목숨을 끊은 병사의 소식에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고, 남자친구에게 얻어맞고 돈을 뜯기던, 어머니를 닮은 여성을 진심으로 도우며 안준호는 함께 성장한다.
※여기서부터 드라마 ‘D.P’의 약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6·25 때 쓰던 수통도 안 바뀌는데…”
이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은 중반부 이후에 등장한다. 한때 유도 유망주였지만 남을 때리는 게 싫어서 그만뒀다는 여린 사람이다. 만화를 사랑하고, 학생들을 가르칠 때 보람을 느끼던 평범한 대학생이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고통스럽다.
그가 주변과 스스로를 파괴하는 괴물이 될 때까지 누구도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는다. 괴롭힘을 주도하던 이는 전역날 “좋은 추억도 X 같은 기억도 다 털자”고 인사를 건넨다. “좋은 추억 없다. 사과하라”는 조용한 절규에도 이들은 조롱으로 응수한다. 일이 터진 후에도 마찬가지다. “그게 왜 내 탓이야. 나보다 더 심한 새끼들 X나 많았잖아!”.
죽음의 공포 앞에 선 가해자의 변명은 구차하다. “그냥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 매일같이 후임병을 괴롭히고 학대했지만 대부분 용인하거나 동참했다. 눈치로 알고 있던 간부들도 그를 제지하거나 처벌하지 않았다. “6·25 때 쓰던 수통도 안 바뀌는데”란 피해자의 자조는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 다들 방관했으면서!”
피해자의 분노는 가해자를 넘어 방관자들에게로 향한다. 이들은 권위에 맞설 자신이 없어서, 대신 당할까 봐, 조용히 지내고 싶어서, 혹은 그냥 ‘그래도 될 것 같아서’ 모른 척한다. 함께 때리진 않아도 폭력적 분위기에 동참한 소극적 가해자들이다. “잘난 척하네. 다 알고 있었으면서. 다들 방관했으면서. 왜 내가 벌을 받아야 되는데!” 피해자의 절규가 안타깝다.
드라마는 피해자들이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연대와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맞던 어머니는 폭력 앞에 무력해졌고, 남자친구에게 돈을 뜯기던 여성도 도움의 손길을 받기 전까진 벗어나지 못한다. 영화 속 탈영병들은 대부분 도움 없이 방치되다 결국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다”는 절망감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 드라마에선 극단적인 상황의 대사로 쓰이지만,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물론 극 중 인물들처럼 폭력에 또 다른 폭력으로 보복하거나 총기 난사를 일으키는 사건을 정당화할 순 없다.
내무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던 황장수 병장(신승호)이 전역 후 사회에 나와 고용 최약체인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상징적이다. 점장의 부당한 트집과 폭언에도 “죄송합니다. 잘 하겠습니다”라며 고개를 숙이는 신세다. 한 세상을 지배하는 듯했던 악(惡)은 이토록 쉽게 무력해진다. 피해자가 이걸 스스로 깨닫기는 쉽지 않다.
◇구교환·신승호·조현철… 배우들의 발견
드라마의 폭력과 욕설 수위가 지금까지 국내 제작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중 손꼽히게 높다. 가혹행위가 적나라한 상상이 가능한 수준으로 묘사되고, 쉬지 않고 이어지는 욕설은 보는 사람마저 가해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가정폭력에 대한 묘사도 강해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폭력적으로 묘사됐다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생생한 현실 묘사가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배우들의 연기도 완성도에 한몫했다. DP 한호열 상병 역을 맡은 배우 구교환은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를 능청맞게 연기해 상대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주인공 정해인과 균형을 맞춘다. 조석봉 역을 맡은 배우 조현철의 광기 어린 연기, 황장수 역을 맡은 배우 신승호의 실감나는 연기도 현실감을 더한다. 후임을 소름돋도록 폭행하던 황 병장 역의 신승호는 놀랍게도 아직 미필이다.
개요 드라마 l 한국 l 2021년 l 시즌 1·6화
등급 18세 이상 관람가
특징 PTSD 오게 만드는 군대 드라마
평점 IMDb⭐8.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