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중 첫 번째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움직임이 감지된 참가자에겐 무자비하게 총을 쏘아 죽인다./넷플릭스

이 기사 중반부엔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공개 전부터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모으며 화제의 중심에 선 작품이다. 일본이 주도하던 ‘데스 게임’ 콘텐츠를 한국에서 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드라마에 기대를 걸 이유는 충분했지만, ‘신이 말하는 대로’ ‘도박 묵시록 카이지’ 등 앞선 작품들과의 ‘표절’논란도 따라붙었다.

일단 흥행 성적으론 대성공이다. 지금껏 한국에 없던 소재, 독특한 영상미와 기괴함을 극대화한 연출로 마지막 화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몰입했다는 호평이 많다. 공개와 동시에 한국 넷플릭스 시청 순위 1위는 물론이고 전 세계 넷플릭스 순위에서도 2위에 올랐다(플릭스패트롤 기준). 특히 미국 넷플릭스에선 세계적인 인기작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시즌3’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장르적 호불호를 떠나 ‘오락 콘텐츠’란 목적은 충실히 달성한 셈이다.

그러나 재생 순위와 별개로 작품의 완성도에 대해선 평이 갈린다. 기대가 컸던 만큼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찮다. 데스 게임 장르의 스릴을 결정짓는 극 중 게임 방식의 허술함이나 틀에 박힌 캐릭터 설정, 희미한 주제의식 등이 아쉬웠다는 평가도 나온다.

딸의 생일에 도박으로 가진 돈을 탕진해버린 기훈은 인형뽑기 기계에서 딸의 선물을 구하는 한심한 인물로 그려진다./넷플릭스

홀어머니가 뼈 빠지게 벌어 모은 돈을 훔쳐다 경마에 탕진하고, 빚에 쫓겨 신체포기각서까지 쓴 성기훈(이정재)은 한심한 인생의 전형이다. 자동차회사에서 해고된 후 치킨집·분식집을 차렸다 망했고, 아내와 딸이 있었지만 이혼했다. 딸 생일에 도박으로 돈을 탕진하고 인형뽑기 기계에서 라이터를 뽑아다 줄 만큼 분별력 없는 인물. 정상적인 돈벌이로는 사채 1억6000만 원, 은행 대출 2억5500만 원의 빚을 갚을 길이 없다.

그런 그의 앞에 멀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나타나 난데없이 ‘딱지치기’를 제안한다. “내 딱지를 뒤집으면 돈 10만원을 줄 테니, 뒤집지 못하면 나에게 10만원을 달라. 돈이 없으면 뺨 맞기로 때우면 된다”며 유혹한다. 고개가 휙 돌아갈 만큼 세게 뺨따귀를 맞으며 기훈의 얼굴은 엉망이 되지만, 그의 손엔 현금이 두둑이 쌓인다. 남성은 “이런 거 몇 번만 더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며 명함을 건넨다. ‘오징어 게임’ 참가권이다.

약속 장소에서 납치된 456명의 참가자들은 모두 똑같은 옷을 입은 채 낯선 곳에서 깨어난다./넷플릭스

뺨 수십대를 맞은 기훈처럼 존엄성 대신 돈을 택할 만큼 절실했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조직의 돈을 날려 먹은 조폭, 뇌종양에 걸린 노인, 부모를 북에 남겨둔 새터민, 밀린 월급을 못 받은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기훈과 어린 시절을 함께한, 서울대 경영대를 수석 입학한 쌍문동의 자랑 조상우(박해수)가 있다. 증권회사 근무 중 고객의 돈을 빼돌려 투자하다 60억의 빚을 졌다.

이렇게 모인 456명 참가자가 인당 목숨 값 1억, 총 456억원의 상금을 걸고 서바이벌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구슬치기’ ‘줄다리기’ ‘징검다리’ ‘오징어 게임’ 등 어린 시절 즐겨 하던 추억의 게임들이다. 여기에 벌칙을 추가한다. 게임에서 지면 울면서 엄마 손잡고 집에 가는 대신, 그 자리에서 가차없이 총 맞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는다.

왼쪽부터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조상우(박해수), 성기훈(이정재), 강새벽(정호연)./넷플릭스

2000년 개봉해 전 세계적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배틀로얄’ 이후 데스 게임 콘텐츠는 하나의 장르로 발전했다. 이들은 대개 비슷한 흐름을 따른다. 자의 혹은 타의로 모인 참가자들이 제한된 환경에서 거액의 상금이나 생존을 걸고 최후의 승자를 가린다. 폭력과 살인이 허용되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통해 현실 사회를 극단적으로 과장해 보여준다. 계략·배신 등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까발린다.

‘오징어 게임’에서 ‘도박묵시록 카이지’ ‘배틀로얄’ ‘아리스 인 보더랜드’ ‘신이 말하는 대로’ 등 기존 데스 게임 작품들이 연상된다는 지적이 계속되는 이유다. 이들과 구별되는 오징어 게임만의 특성을 꼽자면 ‘참가자는 게임을 중단할 수 없다’ ‘게임을 거부하면 탈락으로 간주한다’는 조항에 이은 게임의 세 번째 규칙, ‘참가자 과반수가 동의하면 게임을 멈출 수 있다’는 조항이다. 뻔한 드라마에 예상치 못한 흐름을 부여하는 요소가 된다.

첫 번째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차별 총격에 패닉에 빠져 도망친 사람들은 전부 죽고, 재빠르게 게임의 룰을 파악해 정해진 시간 내에 선에 들어온 참가자들은 살았다./넷플릭스

첫 번째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무자비한 총격으로 절반 넘는 참가자가 죽자, 패닉에 빠진 이들은 과반수 조항을 이용해 게임 진행 여부를 두고 찬반 투표를 벌인다. 201명 중 101명이 반대표를 던지며 게임은 중단된다. 그러나 당장 목숨을 부지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집에 돌아가 현실을 마주한 이들은 거액의 빚, 나이 들고 아픈 부양가족, 그리고 당장 이를 해결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을 마주하고 다시 게임장으로 돌아온다.

여기서부턴 인정사정없다. 죽느냐, 아니면 로또를 맞느냐. 드라마는 “우리는 게임을 강요한 적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자발적으로 택했고, 책임은 본인이 진다. 감독은 이 드라마를 통해 무한 경쟁에 내몰린 현대인들을 묘사하고자 했다. 현실의 경쟁도 비슷하지 않은가. 누가 억지로 시키지 않았건만 우리는 무언가에 떠밀려 경쟁하고, 사회는 이를 ‘자발적’이라 한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속 게임 규칙은 극도로 단순하다. 익숙한 게임들을 변주 없이 그대로 가져왔다. 추가된 건 죽음이란 벌칙뿐이다. 이 때문에 게임 그 자체보단 인물들의 행동과 반응에 더 집중하게 된다. 세모·동그라미 등 기호가 새겨진 달고나를 바늘에 침을 묻혀가며 떼어내고, 실수로 잘못 건드려 깨지면 곧바로 총살당하는 식이다. 넷플릭스로 이 게임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에겐 신선함을, 한국인에겐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게임의 단순성은 양면적이다. 구슬을 뺏기면 총살, 줄다리기에서 지면 추락사,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에게 맞아 죽어도 그저 탈락일 뿐인 허무한 게임의 세상. 이런 환경에서 새터민 출신으로 환풍구에 몰래 들어가 기어다니며 게임을 알아내는 능동적인 캐릭터 새벽(정호연)의 행동력이나, 서울대 경영학과 수석 입학 출신이자 쌍문동의 자랑인 조상우(박해수)의 명석함은 충분히 빛나지 않는다. 데스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게임에 대한 몰입감, 승리에서 오는 희열이 부족한 점이 가장 큰 단점으로 꼽힌다. 심리전, 두뇌싸움 등 지략이 불필요하니 오로지 운과 힘의 논리만 남는다. 조폭 출신 장덕수(허성태)가 무리를 이뤄 모두를 제압한다.

이런 가운데 게임의 주최자는 시종일관 ‘평등’을 강조한다.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평등하게 게임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불공정을 저지른 이를 목매달아 본보기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런 설정엔 모순이 있다. 여성, 노인 등 물리적으로 힘이 약한 이들은 무리에서 꾸준히 배제된다. 줄다리기처럼 힘의 논리로 승부를 보는 게임에서도 여성 3명에 힘 못 쓰는 노인이 섞인 팀과 장정들로 구성된 팀이 동등하게 경쟁하도록 한다. 출발선은 무시한 채, 기회가 같다면 결과도 평등하게 나올 것이라 주장하는 사회의 모순을 비꼬는 듯하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넷플릭스

여기서부터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이 드라마의 메시지는 결국 결말에서 나온다. 게임의 우승자는 서울대 경영대를 수석 입학할 정도로 명석한 두뇌에 앞길을 가로막는 사람은 가차없이 처단하는 이성까지 갖춘 조상우도, 힘과 폭력으로 모두를 제압하는 장덕수(허성태)도, 겁 없고 절실한 강새벽(정호연)도 아니었다. 455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수백억 상금의 주인공이 된 건 별 볼일 없는 주인공 성기훈이다.

그의 승리는 자신의 능력으로 얻은 당연한 보상이 아니다. 앞선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자기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았던 기훈의 승리는 오로지 운과 주변인들의 희생으로 가능했다. 게임에 참가한 대부분의 사람이 인간의 도리를 잊고 괴물이 되어가는 동안 기훈만큼은 존엄성을 지켜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가 떳떳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주변에서 대신 피를 묻힌 덕분이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기훈은 우승한 후에도 마음 편히 돈을 쓰거나 행운을 누리지 못한다. 드라마가 말하고 싶었던 건 결국 사회의 공동선을 훼손하는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이 아니었을까.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으로 성공했다고 여기는 오만, 가진 자들이 기회의 불공평은 잊은 채 보상을 독차지하고 불평등을 강화하는 능력주의의 부작용을 꼬집는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넷플릭스

드라마엔 볼거리도 충분하다. 게임이 벌어지는 세트장과 이들이 갇혀 지내는 숙소 내부는 어린이들의 꿈속을 묘사한 듯 화려하게 제작됐다. 알록달록한 원색의 세계에서 어른들의 피튀기는 게임이 벌어질 때 그 심리적인 대비는 배가 된다. 제작진은 컴퓨터 그래픽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물리적인 요소로 게임을 구현해냈다. 배우들도 세트장에 들어선 순간 사실적인 느낌에 압도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입체적이고 생생한 세트장에 비해 극 중 캐릭터는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전형적이다. 주인공 기훈의 서사는 과하고 신파적인 반면 나머지 인물들의 서사는 완전히 삭제되거나 도구로 이용된다. 파키스탄 외국인 노동자 역의 알리(아누팜 트리파티)가 대표적. 그는 속이면 속고, 때리면 맞고, 빼앗으면 뺏기는, 시종일관 어수룩하고 착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가 수시로 외치는 ‘사장님!’ 대사는 2003년 “사장님 나빠요!”를 외치던 블랑카를 떠올리게 한다. 가장 악한 남성 캐릭터는 역시 조직폭력배, 여성 빌런은 살아남기 위해 적극적으로 몸을 파는 여자다. 가장 독하고 참을성이 좋은 여성 참가자는 북한 이탈주민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파키스탄 노동자 '알리' 역을 맡은 아누팜 트리파티./넷플릭스

불필요한 설정과 대사들이 불편함을 유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임 속 일꾼들의 장기밀매 설정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는 평이 많다. 신체를 훼손하고 피투성이가 된 채 장기를 들어내는 적나라함은 두려움보단 혐오감을 준다. “배를 갈랐는데 죽지도 않은 시체가 발버둥을 쳤다”거나 “우리가 여자 시체에 돌아가면서 ‘그 짓’을 했다”는 대사들은 맥락이 없고 불쾌감만 유발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드라마는 다음 시즌 진행을 암시하며 마무리 된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시즌 2가 기다려진다”는 반응이 많다. 새로운 시즌에선 시청자들의 기대치가 더 높아질 것 같다.

개요 l 한국 l 드라마 l 2021 l 시즌 1(9부작) l 회당 32~62분

등급 18세 이상 관람가

특징 추억의 게임이 무자비한 대학살극으로

평점 로튼토마토🍅100%, IMDb⭐8.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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