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안 든다고 며느리에게 물컵을 던져버리는 시어머니. 며느리를 왕따시키기 위해 외국어로 쑥덕거리는 시댁 식구들의 모습. 회사에 누구보다 일찍 나가겠다면서 꼭두새벽부터 아침 식사를 준비시키는 회장님.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원 더 우먼’에 등장하는 한 재벌가의 모습이다. 작정하고 재벌가를 욕보이려고 기획한 느낌마저 든다. 일부 국내 재벌가 관련 풍문들을 너무나 노골적으로 묘사해 모른 척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이 드라마는 고상한 척하지만, 속내는 저열한 재벌가 인물들을 ‘참교육’하면서 카타르시스를 자극하는 장면들을 대놓고 보여준다. 이 노골적인 전략이 대중들에게는 확실하게 먹혔다. 지난달 17일 첫 방송 된 ‘원 더 우먼’은 닐슨코리아 기준 시청률 9%를 기록하면서 제작비 150억원이 투입된 경쟁작 ‘검은 태양’을 제치고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기세를 몰아 순간 최고 시청률 20%를 돌파하는 등 3주 연속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면서 순항하고 있다. 뻔하다면 뻔한 주제인데도, 시청자들은 여전히 부자들이 쩔쩔매는 모습이 통쾌한 모양이다.
재벌가 참교육의 선봉장은 주인공인 배우 이하늬다. 이 드라마의 제목은 띄어쓰기를 신경 써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 ‘원더 우먼’(wonder woman)이 아니다. ‘바로 그녀’ 정도 의미로 해석되는 ‘원 더 우먼’(One the woman)이다. 그만큼 그녀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조폭들 패싸움에도 눈 하나 깜짝 않는 드센 여검사 ‘조연주’와 재벌가에서 구박받는 며느리 ‘강미나’ 1인 2역을 소화하면서 ‘원우먼쇼’를 선보인다.
드라마는 전형적인 ‘왕자와 거지’ 설정으로 시작된다. 1인 2역인 만큼 조연주와 강미나는 외모가 쌍둥이처럼 똑같다. 그런데 우연히 두 사람의 위치가 뒤바뀌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무슨 이유에선지 강미나의 목숨을 노리는 한 무리가 조연주를 강미나로 오해해 차로 들이받으면서다. 사고를 당한 조연주는 기억상실증에 걸리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모두가 자신을 강미나로 오해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설정이다. 기억상실증으로 모든 상황을 끼워 맞추는 것이 다소 억지스럽고 막장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드라마에선 제법 코믹하게 상황을 잘 연출한다.
강미나는 재벌가 식구들이 괴롭힘을 당하면 아무 말 못하고 참기만 했던 전형적인 샌드백이었다. 오만가지 이유를 갖다 붙이면서 괴롭히는 성격파탄 시어머니. 부인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바람 피우는 여자를 데리고 나타나는 남편. 겉으론 위해주는 척하지만, 속으론 어떻게든 깎아내리려는 차가운 큰시누이. 예의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이 막말을 일삼는 작은 시누이. 옆에서 이들을 편드는 얄미운 손윗동서까지. 이들의 조리돌림 시도는 기억을 잃은 조연주에게도 이어진다.
하지만 조연주는 고분고분했던 강미나로서 자아를 그대로 이어받기를 거부한다.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며 자신에게 귀싸대기를 날리려는 시어머니의 손목을 가볍게 잡아 비틀고는 “뭐야 이 아줌마, 이씨”를 외친다. 재벌가 가족 모두가 참석한 예배에서 어린 손자가 만만하게 보고 과자를 던지면서 장난을 치는 상황에서도 조연주는 참지 않는다. 대뜸 일어나 소리를 지르면서 “너 내가 우스워?”라고 몰아붙인다. 다른 재벌가 사람들이 말리려고 나서지만, 한마디도 지지 않고 맞받아친다. 말발에선 전혀 밀리지 않는 데다가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뻔뻔함으로 재벌가 사람들의 말문을 막히게 한다.
기억은 사라졌지만, 솔직하면서도 거친 성격, 싸움 실력은 남아 있는 덕분이다. 심지어 빠른 상황 판단 능력, 언어 능력, 법률 지식에 잔머리까지 갖췄다. 악덕 재벌가를 상대로 한 대반격의 서막이다. 이 비현실적인 상황이 유치한 줄 알면서도 묘한 카타르시스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런 그녀에게는 하필 땅콩 알레르기가 있다는 설정까지 따라붙는다. 왜 하필 땅콩일까.
스토리 자체는 전형적이다. 조연주는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강미나라는 자아가 어색하다. 결국 자신이 강미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기억을 잃기 전 진짜 자신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악덕 재벌가에도 늘 예외로 존재하는 이단아가 도와준다. 바로 매너 있고 따뜻하면서도 잘생긴 남자 주인공 한승욱(이상윤)인데, 이들의 로맨스도 관전 포인트다. 조연주는 검사인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정작 진짜 강미나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왠지 씁쓸하긴 하지만, 재벌가만큼이나 미움받는 게 검찰인가 보다. 검찰 조직은 공권력을 이용해 재벌가와 붙어먹어 사리사욕이나 채우는 조직처럼 묘사된다. 탈세 혐의를 받는 재벌 회장이 “내 혐의 빨리 해결하라”고 소리치면, 차장검사(부장검사보다 높은 자리다)가 쩔쩔매면서 노력 중이라고 달랜다. 조연주도 대놓고 폭력사범을 풀어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물론 그 와중에 자기 할 일 열심히 하는 검사들의 모습도 보여주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선 검찰보다 더 만만하면서도 미움받는 이미지로 전락한 게 기자가 아닌가 싶다. 작중에 아주 잠깐 등장하는데, 하이에나처럼 어그로 끄는 소설이나 쓰는 한량처럼 나온다. 주인공이 “떽”하고 혼내자 “깨갱”하고 바로 꼬리 내리는 역할로 나오는데 약간은 씁쓸했다. 어쨌든 부담 없이 웃고 즐기기에는 괜찮은 작품이다.
개요 드라마 l 한국 l 2021년 l 16부작(회당 약 70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특징 악덕 재벌가 본격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