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겁쟁이 페달'

중고 거래 애플리케이션 ‘당근마켓’에서 지난해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검색한 키워드는 뭘까. 가전 제품과 캠핑 용품, IT 기기를 제치고 2년 가까이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품목은 바로 ‘자전거’다. 자전거는 지난해 2722만건의 검색어 조회수를 기록했는데, 이는 2위 냉장고(1386만건)와 비교하면 2배 가까운 수치였다.

코로나 장기화로 자전거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국내 최대 자전거 기업 삼천리자전거 주가는 이달 들어 17% 올랐다. 성수기인 봄을 앞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2월 23일 서울 서대문구 삼천리자전거 가재울점 모습. /뉴스1

당근마켓에 따르면 자전거는 코로나가 본격 확산한 지난 2020년 2분기 ‘마스크’를 제치고 검색어 1위를 찍었고, 7분기 연속 최다 검색어를 지키는 중이다. 기자 역시 비슷한 시기에 7년 간 빨래 건조대로 방치했던 자전거를 다시 타기 시작했고, 여러 자전거 용품들을 ‘당근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녹슬어 버린 건 나였을 뿐, 먼지 뽀얗게 쌓인 자전거는 변함없이 멀쩡했다는 걸 말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겁쟁이 페달'

일본 애니메이션 ‘겁쟁이 페달’은 로드 사이클 경기를 주제로 한 전형적인 스포츠 애니메이션. 현재 넷플릭스·왓챠·티빙·쿠팡플레이 등 다양한 OTT 플랫폼에서 여러 버전으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줄거리: ‘힘숨찐’(힘을 숨긴 찐따)의 표본 같은 애니메이션 ‘오타쿠’ 오노다 사카미치가 지바현 소호쿠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그는 왕복 90km 거리인 오타쿠 성지(聖地) 아키하바라까지 바구니 달린 ‘아줌마 자전거’를 타고 다녔던 인물.
오노다는 고교 입학과 동시에 만화연구부 창설을 꿈꾸지만, 오타쿠 세력 확보에 실패하고 시름에 잠기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뒷문 언덕을 자전거로 오르던 오노다는 우연히 로드 레이서로서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고, 우여곡절 끝에 자전거부에 가입한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와 개성 넘치는 부원들은 오노다의 진심 어린 조력자들이다. 자전거를 무척이나 좋아하게 된 오노다는 전국 체전에 도전하며 잠재력을 조금씩 일깨워간다.
일본 애니메이션 '겁쟁이 페달'

어설픈 주인공이 좌충우돌하며 멋진 로드 레이서로 성장한다는 명쾌한 서사, (하는 일이라곤 물 심부름과 응원 뿐이지만) 상냥하고 예쁜 여자 매니저 같은 상투적 인물 설정, ‘어차피 주인공은 우승할 것’이라는 예측은 긴장감 없는 시청으로 이어진다.

일본 애니메이션 '겁쟁이 페달'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반가워 할 요소도 곳곳에 등장한다. 등장하는 장비부터 화려하다. 라이더가 선망하는 브랜드(스캇, 피나렐로, 콜나고, 스페셜라이즈드, 비앙키, 룩 등)를 연상시키는 자전거가 나열되고, 기어 변속이나 케이던스(페달링) 조절, 클라이머와 스프린터의 자질을 다루는 내용도 빼곡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겁쟁이 페달'

기자는 ‘그냥 자전거가 좋아서’ 재생 버튼을 눌렀다가, 직업병으로 인해 요즘 우리 사회 화두인 ‘이대남’들의 ‘공정한 경쟁’과 능력주의 담론까지 엿보는 의외의 관전 포인트를 발견하고 말았다.

공정한 경쟁은 모든 선수가 남학생 뿐인 소호쿠 고등학교 자전거부를 지배하는 주요 정서. 자전거 부원들은 서로 간의 능력 차이를 깔끔하게 인정하고, 각자 실력으로 획득한 티어(계급)를 존중한다. 치밀한 지략과 노력, 협업으로 천부적 재능을 가진 경쟁자를 제치기도 한다. 내가 지치면 동료가 밀어주고, 동료가 뒤쳐지면 내가 받쳐주는,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한 팀 워크도 감동적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겁쟁이 페달'

‘페달을 밟으면, 앞으로 나아간다’는 건 꽤 낭만적인 일이다. 하지만 세상은 애니메이션 속 경기 룰처럼 단순하지 않고, 발버둥쳐도 후퇴하는 이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공정’과 ‘능력주의’라는 키워드가 거의 매회마다 등장하는 이 애니메이션은 그래서 ‘다층적 세계’를 반영하지 못한다.

겁쟁이 페달은 전반적으로 남성 판타지의 실현에 큰 방점이 찍혀있는 듯 보인다. ‘남녀 공학’ 학교인데도 자전거부에는 여학생 회원이 등장하지 않는다. 유일한 여성 캐릭터는 애교 넘치는 여학생 매니저 뿐이다.

요즘은 자전거도 남녀 구분 없이 ‘젠더 리스’ 트렌드에 맞춘 상품이 대세.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성 역할 구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리겠다.

일본 애니메이션 '겁쟁이 페달'

넷플릭스에서는 모두 4시즌을 감상할 수 있다. 한 편당 23분 가량으로, 모두 112편에 달한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오는 날, 조금씩 주행하다보면 금세 하늘이 개어있을 것이다. ‘당근한’ 자전거를 타고 바깥으로 나갈 시간이다.

개요 일본 l 애니메이션 l 2018 l 4시즌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평점 ⭐IMDB 7.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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