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시인을 꿈꾸다가 기자가 됐습니다. 국문과 나왔습니다. 으레 문화부를 상상하는데, 20년째 테크놀로지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시인이나 소설가를 떠올린 건, 어쩌면 사춘기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항상 말합니다. “테크놀로지의 곁에서도 언제나 사람을 취재합니다”라고. 시인이든, 기자든, 우리는 삶의 무언가를 고민하는, 같은 업(業)일지 모릅니다.
2. 테크놀로지 취재를 오래하면 뭔가 재미있을 듯요?
기계치입니다. 10대 때 과학상자라는 녀석를 잠시 좋아했지만, 언감생심 고장난 라디오를 뜯어보겠다는 생각은 떠올리지도 못했던 1인입니다. 수학을 좋아했지만, 미분은 정말 마음에 안 들더군요. 기호와 기호가 만나, 저희들끼리 쑥덕거리는 모습이 싫었는지도요. 그래서 첨단 테크놀로지로 만들어진 기계를 오래 들여다봐도, 감흥이 막 솟진 않습니다. 해외의 유명 테크 전시회도 여러번 가다보면 심드렁합니다. 직업병일지도요. 3~4년 전쯤 트위터의 잭 도시 창업가를 호주에서 인터뷰한 일은 다소 흥미롭긴 했습니다. 트위터를 만들고 상종가를 치다가 패션모델한다고 했다가, 결국 회사에서 쫓겨나고, 그리고 트위터가 망했을 때 다시 등판한 잭 도시. 흥미로웠습니다. 딱 대면하기 전까지요. 만나보니, 그도 사람이었습니다. 다소 신경질적인, 다소 천재끼가 번뜩이는, 시간 강박증을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트위터 아버지 잭 도시 인터뷰 “트럼프는 왜 트위터를 할까요? 더 빨리, 더 많은 소통 위해서죠”]
3. 요즘 꽂혀 있는 가장 신박한 IT 제품이 있다면?
신박한 건, 페이스북의 VR(가상현실) 오큘러스2입니다. 고글처럼 두 눈에 끼면 또다른 3차원 현실이 펼쳐지죠. 사실 5~7년 전에 가상현실이 세상을 집어삼킬 것처럼, 저를 포함해 많은 기자들이 기사를 썼지만, 그런 일은 안 생겼죠. 왜냐구요. 당시 제품은 신기하긴 했지만, 컨셉트 수준이었고 30분만 쓰면 현기증이 났거든요. 오큘러스2는 달랐습니다. 텍스트론 설명이 어렵습니다. 잠시 생각합니다.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 리뷰를 쓴다고 처음 아이폰을 손에 잡았을때의 느낌. 오큘러스2는 아이폰처럼 시대를 바꿀까요?
4. MBTI 성향이 뭐에요?
ENTJ-T요. 딸과 똑같습니다. 그녀 왈(曰) “아빠랑은 은근 안 맞는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맞는 것 같은데, 막상 따져보면 안 맞는다는 뜻?
5. OTT에 돈을 지불하고 계시나요?
넷플릭스는 동료들과 N분의 1로 봅니다. 웨이브는 3개월 무료 쿠폰으로 적응 중입니다. 쿠팡 플레이는 로켓 배송 고객이기 때문에 무료로 이용합니다. 예전에 티빙도 봤었구요. 참, 전 코드커팅입니다. OTT 시작하고 나서 아예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같은 기존 방송 채널을 끊는걸, 코드 커팅이라고 하더군요. 벌써 2년 넘었습니다. 좋은 점요? 아무생각없이 TV 켜놓고 채널을 돌리면서 킥킥 거리던 무의미한 시간이 확 줄었습니다. 안 좋은 점요? 가끔, 아무생각없이 TV 소음 속에서 평온함을 느끼고 싶은데, 그 추억을 되살릴 길이 없네요.
6. ‘아 이건 영화나 드라마 찍을 감이야’라고 느꼈던 테크 취재기가 있다면?
네이버 이해진 창업가는 왜 쯔케맨을 좋아하는가, 수십억~수백억을 투자할만큼? 아니면, 카카오 김범수 창업가는 새벽마다 정말로 30분씩 샤워하면서 사업 구상을 할까?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의외로 다들 평범한 삶을 사니까요. 참, 이건 있네요. 1조원 가까운 자산을 가진 창업가의 이야기인데요. 한번은 본인 건물에서 열린 보석 판매 행사에 들어갔대요. 그냥 와이프가 관심있다고 해서요. 진짜로 영화같은 장면이었다네요. 반짝반짝 수천만원~수억원짜리 보석을 들고와서 참석자에게 보도록 하는 식요. 맘에 들면 구매하고요. 근데 얼마 있다가 시큐리티가 와서, “초대받지 않으셨으니 나가주세요” 했대요. 세상에 주님(건물주님)에게.
7.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개발자들, 현실과 비교하면 어때요?
한동안 생각했습니다. 천재는 있다. 내가 만나는 지금 이 사람, 비범하다. 지금은 생각합니다. 천재는 없다. 내가 만나는 지금 이 사람, 비범하다. 하지만 사람의 범주다. 실수도 한다. 대체 천재의 기준이 뭘까요? 모르겠습니다.
8. 곧 일본 특파원으로 나갈텐데, ‘덕력’이 상당하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오타쿠를 흥미롭게 다룬 콘텐츠가 있을까요?
오타쿠 아닙니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평이합니다. 재패니메이션은 꽤 좋아하긴 합니다. 생각나는대로, 진격의 거인, 4월의 거짓말, 귀멸의 칼날,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 바케모노가타리, B: 더 비기닝, 기동전사 건담 철혈의 오펀스, 강철의 연금술사, 킬라킬, 갑철성의 카바네리, 슈타인즈 게이트, 문호 스트레이독스, 방패용사 성공담, 코드기아스, 월간순정 노자키군, 사이코패스, 괴물사변, 리: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 소드 아트 온라인...... 아, 너무 많네요. 스톱!
9. 현재 보고 있거나 푹 빠져 있는 작품들이 있으세요?
어제 정주행한 드라마는 바이킹스 : 발할라입니다. 바이킹스의 후속시리즈입니다. 지금은 코타로는 1인가구(동명의 드라마가 아닌, 애니메이션)를 보는 중입니다. 너무 양극단이네요.
10.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중 추천하고픈 IT 관련 작품 3편만 꼽아주세요.
꼭 IT여야하나요? 프린지. 고등학교 때 과학 좀 좋아했거나 대학교 때 상대성이론 같은 과학 교양 수업을 즐긴 분들은 좋아할 겁니다. 평행이론과 같은 공상과학에 나올법한 과학 총망라입니다. 올리비아 더넘(여주인공)을 맡은 안나 토브는 여러 드라마에 등장했지만, 프린지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봅니다.
시간여행자도 상상력 자극의 끝판입니다. 참, 개인적으론 국내 드라마 스타트업도 재밌긴 한데, 실제 스타트업 현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 일단 수지는 없고요. 다들 일에만 파묻힌 게 현실 스타트업에 가깝습니다. 종종 드라마 스타트업보고 스타트업 취업 희망하는 분들이 계셔서, 쓸데없는 염려 한마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