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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안나라수마나라’ 보러 가기

‘안나라수마나라’가 넷플릭스가 공식 집계하는 주간 시청시간 톱10 순위에서 18일 비영어 시리즈 세계 4위에 올랐다. ‘안나라수마나라’는 지난 6일 공개 뒤 첫 사흘간 합계 만으로 5월 첫 주(2~8일) 주간 톱10의 8위에 올랐다. 두번째 주(9~15일) 집계에선 세 계단 올라선 4위가 된 것이다. 넷플릭스의 자본력에 올라탄 한국 창작자들의 상상력이 좀비, 로맨스, 법정극으로 보폭을 넓혀온 한국 드라마의 지평을 뮤지컬 형식을 차용한 음악극을 향해 또 한 번 넓혀 놓았다.

‘삼봉 이발소’ ‘삼단합체 김창남’ 하일권 작가의 같은 제목 웹툰으로 2010년대 초 큰 인기를 누렸던 원작을 ‘구르믈 그린 달빛’ ‘이태원클라쓰’의 김성윤 감독이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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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싫어. 아무런 고민도 책임감도 없으면서. 산타니 마술이니 이딴 철없는 소리나 하면서 사는 아저씨 같은 사람, 우리 아빠 같은 사람!”

버려진 놀이공원에 사는 젊고 잘생긴 마술사. 절단 마술을 하면 정말 사람이 반으로 잘리고, 실종 마술을 하면 진짜 사람이 사라져 버린다는 소문이 흉흉했다. 시궁창 같은 하루 하루를 겨우 겨우 버티던 ‘윤아이(최성은)’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술사 ‘리을’(지창욱)이 말한다. “마술에는 두 종류가 있지. 진짜 같아 보이지만 가짜인 마술, 가짜 같아 보이지만 진짜인 마술. 나는, 진짜 같아 보이지만 진짜야!” ‘리을’이 “당신, 마술을 믿습니까?”라고 물으면 진짜 같은 마술이 펼쳐진다.

‘윤아이’의 엄마는 오래 전 어린 동생과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 아빠가 남긴 건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빚쟁이들 뿐이다. 학교에선 가난을 조롱거리 삼는 아이들과 편협한 교사들이 ‘아이’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집주인 월세 독촉 때문에 새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편의점, 주인 아저씨에게 월급 가불을 부탁했더니 인심쓰는 척 못된 짓을 하려 든다. 그 때 ‘리을’이 나타나 편의점 주인을 사라지게 만든다. 도대체 어떻게?

The Sound of Magic Choi Sungeun as Yoon Ah-yi in The Sound of Magic Cr. Lim Hyo Sun/Netflix © 2022

‘아이’의 친구 ‘나일등(황인엽)’은 수학 딱 한 과목만 ‘아이’에게 살짝 뒤처질 뿐 압도적 전교 1등. 검사장인 아버지와 극성 어머니가 기뻐하는 모습에 그저 달려왔을 뿐인데. 아버지는 ‘성공한 인생을 살려면 지금은 참고 견뎌야 할 때’라고 하는데. ‘리을’은 ‘일등’에게 어른들이 세운 기준에 맞추느라 차가운 아스팔트 같은 경쟁의 트랙 위를 뛰어가는 환상을 보여준다.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것 같은 절벽 끝에서 만난 마술사가 아이들의 맘을 흔든다.

‘리을’을 연기한 배우 지창욱은 최근 인터뷰에서 “처음 대본 봤을 때가 기억난다. 재작년 12월쯤이었다. 대본 보면서 하염없이 울었다”고 했다. “저는 ‘아이’와 ‘일등’이 모습이 제 모습 같았어요. ‘아, 이건 내 이야기다. 이 작품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을 했죠. 살다 보면 돈 걱정 하게 되고, 꿈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성적에 대한 압박으로 고민하게 되고.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살거나, 눈치 때문에 하고 싶은 걸 못하거나 표현하고 싶은 걸 못하기도 하죠. 저도 그래요.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아요. 그래서 마술사 ‘리을’의 이야기가 너무 따뜻했어요. 이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나라수마나라 스틸/넷플릭스 ⓒ 뉴스1

이 드라마 속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지겨운 가난이나 악의와 오해가 아니다. 형편없는 어른들이다. 자신을 옭아맸던 어른들처럼 되고 싶지 않아 아이로 남고 싶었던. 규격대로 맞춰 살지 않으려 했던 ‘리을’은 마술사가 됐다.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보기 드물었던 뮤지컬 형식을 차용한 음악극이라는 형식이 조금 나이브해 보일 수 있는 드라마의 이야기와 분위기를 설득력있게 만든다. 원작에서 ‘아이’가 처한 시궁창 같은 현실은 흑백 모노톤, 리을이 펼쳐 보이는 판타지는 컬러였다. 드라마는 색색 조명으로 만든 빛과 그림자 위에 도드라지는 색채를 더해 더 화려한 컬러로 마법의 세계를 그려낸다. 만화를 찢고 나온 것 같은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가 환상과 현실의 이음새를 매만져 연결시킨다.

‘라라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1화 오프닝 시퀀스에선 수십명의 배우들이 학교 벽에 직각으로 서서 춤추며 노래한다. 마술사가 지친 아이를 위로하며 유원지에 마법을 걸 땐 대관람차 앞으로 형형색색 불꽃이 터지고,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회전목마를 타면 목마들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부모의 강요로 원치 않는 경쟁에 내몰렸던 마음을 짚어주는 ‘아스팔트의 저주’ 시퀀스도 이전에 볼 수 없던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한다. 넷플릭스의 자본력과 한국 창작자들의 상상력이 좀비, 로맨스, 법정극까지 보폭을 넓혀온 한국 드라마의 지평을 또 한 번 넓혀 놓았다.

안나라수마나라 스틸/넷플릭스 ⓒ 뉴스1

학교에서부터 돈에 찌들고 휘둘리는 아이들의 현실, 실종과 살인사건의 와중에도 꿋꿋한 우정과 풋풋한 연애감정까지 대중적 요소도 영리하게 뿌려져 있다.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지겨운 가난도, 악의와 오해도 아닌 형편없는 어른들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라는 게 아니야. 니가 하기 싫은 걸 하는 만큼, 하고 싶은 일도 하라는 거야.”

마술사 ‘리을’을 연기한 지창욱은 ‘꿈만 좇으라’는 원작의 이상주의적 조언 대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 곁으로 좀 더 가까이 내려와 있다. 원작보다 조금 더 장난기있는 소년 같은 분위기지만 격렬한 감정을 표현할 때는 한층 더 어두워진다. 더 현실적인 ‘리을’이다.

주인공 ‘아이’를 연기한 최성은은 늘 큰 눈 속에 금세 굴러떨어질 듯한 눈물을 가득 담고 있다. 그가 빚어내는 처연하고 안쓰러운 정서가 지창욱의 리을과 보색 대비처럼 잘 어울려 극의 정서적 완성도를 높인다. 자칫 어색해질 뻔한 장면들조차 시청자의 몰입감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이 두 배우의 조화로운 연기 덕이 크다.

마지막 6화의 ‘커튼콜 엔딩’도 호평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