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김에 쓴 글을 출판사가 바로 책으로 내줬다. 그렇게 베스트셀러 작가, 유명 방송인이 됐다. 지구를 26바퀴 돌며 여행과 요리를 소개했다. 오바마와는 하노이에서 쌀국수를 먹고, 서울에서 회사원들과 폭탄주도 마셨다. 그런 그가 2018년 6월 프랑스 알사스 지방 르 샹바르(Le Chambard) 호텔 욕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56~2018, 62세였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을 가졌다고 자랑하던 앤서니 보데인(Bourdain)의 죽음은 전세계에 의문을 던졌다. 그런 사람은 대체 뭐가 부족해 죽을까? 다큐멘터리 ‘로드 러너: 앤서니 보데인에 대하여’는 그의 죽음의 비밀을 푸는 단서가 된다.
“책이 너무 잘 팔려서 요리사를 채용했어요. 나는 이제 변절자에요”
불량청소년이자 요리 명문 CIA출신인 보데인은 주류와 아웃사이더를 오갔다. 몇 년 간 마약에 쩔었다 단번에 끊어냈고, 지루한 걸 혐오하면서도 화목한 중산층 가족을 꿈꿨다. 미국 고급 레스토랑의 치부를 까발린 책 ‘키친 콘피덴셜’(2000)은 일종의 내부고발서다. 저급 고기를 다져 향신료를 때려넣어 전채요리로 만들고, 앞 손님이 남긴 빵을 뒷손님에게 내주고, 뒷일을 본 요리사들이 손도 씻지 않고 주방으로 직행한다는 식이었다.
주변인들은 그를 수줍은 성격이라지만, TV에서 말빨로 일어섰다. 친구들은 그가 일종의 ‘페르소나’를 창조했다고 말한다. ‘유쾌하고 소탈한 반항아’가 펄떡이는 코브라 심장을 카메라 앞에서 꿀떡 삼키면, 시청자들이 환호했다. 2002년 ‘쿡스 투어 (A Cook’s Tour)’를 시작으로 ‘파츠 언노운’(Parts Unknown)까지, 그의 페르소나는 세상을 느끼는 것을 넘어 세상을 움직이고 싶어했다.
“토니는 부활한 거죠. 완전히 새 삶을 얻었어요”
마흔을 훌쩍 넘겨 세상으로 나간 그는 그 생활 2년 만에 30년 결혼생활을 끝냈다. 그는 촬영장에서 두번째 부인이 될 이탈리아 여배우 오타비아를 만났다. 화면에 나오는 그는 누가 봐도 들뜬 표가 났다. 세번째 애인을 만나고 나서는 “주차를 너무 잘하지 않냐”며 애인 자랑하는 바람에 듣는 그녀조차 민망해할 정도였다. 그에게는 새 사람이나 스릴 넘치는 도전이 아니면, 모두 지루했다. 유명인이 되자 그는 자극을 선택했다.
“뭐든 할 거에요. 잃을 게 없으니까.”
그는 감각, 감성으로 세상을 느꼈다. 미군 폭격으로 다리를 잃은 라오스 주민에게 미군의 전쟁 범죄를 미안해하고, 베이루트 호텔 수영장에서 앉아 민간인 폭격기를 바라만 보는 한가한 요리 프로그램을 자책했다. 방송인, 전달자, 관찰자가 아니라 주연, 플레이어가 되고 싶어했다.
아이티의 포르토프랭스에서의 촬영 현장은 그의 욕망과 한계를 증명한다. 제작진을 위해 만든 음식이 남자, 보데인은 굶주리는 현지인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라 한다. 프로듀서는 ‘우리는 관찰자로 남길 원했다’고 한다. 무지한 선의는 아수라장을 창조했다. 새치기와 싸움과 폭력까지, 자선이 갈등을 더 키운 것이다.
이쯤 되어도 여행하며, 먹고, 웃어온 그가 왜 생을 스스로 마감했는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토니는 거칠고 위험한 대상을 찾아다녔어요”
2016년 ‘파츠 언노운’ 촬영 현장. 로마의 세티미오 레스토랑에서 스무살 연하 여배우를 만나는 장면, 그의 죽음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그는 동료들에게 ‘특이한 이탈리아 여배우’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친구들은 당시 보데인을 두고 “총각딱지를 뗀 고교생처럼 들떴다”고 했다.
이탈리아 감독 다리오 아르젠토의 딸인 아시아 아르젠토는 2017년 10월 뉴욕타임스가 미국 영화거물 하비 와인스틴 성폭행 사건을 보도한 후, 실명으로 그의 추가 범죄를 고발한 여배우 중 하나. 그녀는 1997년, 21세때 와인스틴에게 성폭행당했다고 증언했다. 대부분 고발자들은 영화계에서 낙오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었다. 보데인은 이런 시기, 방송제작진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TV에 나가 ‘미투’를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과거 발언이 ‘미투’ 정신에 어긋나면, 가차없이 오랜 친구마저 끊어냈다고 보데인의 지인은 말한다.
‘파츠 언노운’은 보데인 경력의 정점에 있는 시리즈였다. 베트남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이 일정을 빼서 하노이 쌀국수 집에서 촬영했을 정도다. 홍콩 편에는 왕가위 감독과 오래 작업한 크리스토퍼 도일이 촬영감독으로 합류했다. 하지만 보데인의 그녀, 아시아 아르젠토가 연출자로, 출연자로 합류하면서 불협화음이 커졌다. 오랜 스태프도 하루 아침에 잘렸다. 아시아와 갈등을 빚은 탓이었다.
보데인의 친구들은 프랑스 알사스에서 촬영 4일째,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고 전한다. 아시아가 연하의 프랑스 사진가와 안고 있는 사진과 함께 ‘날마다 사랑’이라는 말풍선이 달린 타블로이드 신문이 발행된 날이었다.
다큐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시아 아르젠토는 과거 영화에서 아들로 출연했던 배우 지미 베넷으로부터 고소 당했다. “17살 때 아르젠토로부터 성폭행 당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보데인은 28만달러 합의금을 대신 내주겠다고 나섰고, 아시아는 보데인 사망 후 나머지 합의금 중 잔금을 동결해버렸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보데인의 마지막 사랑이며, 성폭행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아르젠토는 다큐에는 직접 출연하지는 않는다.
“어쩌다 인생이 이렇게 됐을까 생각해봐요. 사실 늘 불안해요.”
보데인의 동료는 그를 두고 “타원형의 인생을 반복했다. 중간지대에서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늘 극단에서 뭔가를 느꼈다”고 말했다. 방송인이 된 2000년대 중반, 그는 요리를 그만뒀다. 이렇게 말했다. “셰프로서는 끝냈어요. 인생에서 유일하게 나를 지켜주는 방패였는데.”
방패 속에서 지루하게 살 건가, 방패를 걷고 화살을 맞을 건가. 그의 인생에는 늘 두가지 옵션만 있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공개됐고, 우리나라 OTT에도 공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