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리조나주의 쇼트크릭에 집단거주지가 하나 있었다. 사람들은 근면하고, 절제했으며 세속적 사고도 일으키지 않았다. 모범적 시민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가 깊었고, 아이들은 ‘논다’는 개념을 모른다. 종교가 인생을 과도하게 지배한 것이다. ‘남자가 천국에 가기 위해선 최소 3명의 부인이 있어야 한다’는 교리를 절대시했다. 12세 소녀가 어느 날 갑자기 80세 노인의 19번째 부인이 됐다.
다큐멘터리 ‘착한 신도: 기도하고 복종하라(Keep Sweet:Pray and Obey)는 논란의 종교집단 FLDS를 이끈 제프스(Jeffs) 부자(父子)의 여성 착취와 가정 파괴를 다룬다. 이미 이 집단의 살인 암매장사건, 일부다처제를 주제로 여러 다큐가 나왔지만,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사회심리적 분석은 이 다큐의 특장점이다. 피해자들의 정신 상태, 사법처리에 미지근했던 미국 경찰과 정치인, 언론인의 면면까지 풍성하게 다뤘다.
◇신의 대리인이 결혼을 점지해준다
FLDS신도들에게 회장 루론 제프스(1909~2002)는 하나님의 뜻을 예언하는 ‘선지자’였다. 선지자는 혼전순결, 금욕을 명령했고, 결혼 상대도 점지해줬다. 남성 신도들은 자기 딸이 ‘루론의 부인’이 되는 걸 영광으로 생각했다. 루론의 장인이 되면, 자신에게도 ‘부인 한 명’이 더 배당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극도로 노쇠해진 순간에도 결혼에 대한 루론의 집착은 계속됐다. 10대에 83세 루론과 결혼했던 여성은 “그가 잠들게 하려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이 집단에서 여성은 이 계좌에서 저 계좌로 이체되는 ‘현금’이었다. 어릴수록, 천진난만할수록 값이 더 나갔다.
◇여성은 남성의 요구에 응하라, 늘 상냥하게
2002년 루론 제프스가 사망하자, 위기가 닥친다. 신의 대리인이 죽는다는 사실에 신도들이 충격을 받은 것이다. 당연한 의심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때 루론의 아들, 워런 제프스가 혼란을 수습했다. 교단 학교를 운영하던 워런은 조용한 학자 타입의 인물이었지만 권력을 쥐면서 악마적 본성을 드러냈다. 10대 소녀 여럿을 포함, 죽은 아버지의 부인들과 차례로 재혼하면서 ‘선지자의 적자’라고 과시했다.
여성들에게는 흔한 꽃무늬 옷도 입지 못하게 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여성은 분홍, 연보라 같은 파스텔톤 원피스만 입고, 머리는 일정한 형식으로 따거나 올렸다. 나이를 불문, 남자의 성적 요구에 응하는 것이 여성의 의무라고 세뇌 당했다. ‘늘 상냥하라(Keep Sweet)’는 여성들에게 내리는 명령이었다. 늘 상냥하게 남성에게 복종하라, 성적 요구에 응하라. 소녀들은 이런 말을 노래로 불렀다.
외부에서 발행되는 신문이나 TV는 금지됐고, 과학책도 검열했다. 감시 카메라를 사방에 달고, 교리를 의심하는 사람을 고발하게 했다. 워런은 자기 형제도 그런 걸 빌미로 처벌했다.
◇여성착취하는 일부다처제, 힘없는 남성도 피해자
공포 정치가 필요했던 건, ‘산수’ 때문이었다. 교단 내에서 성 불균형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성들이 자식을 5~6명 이상 낳아도, 절반은 남자 아이였다. ‘신부’ 공급이 달리는 것이다. 교주 한 명이 70명, 우량 신도가 3~5명씩 부인을 거느렸기 때문이다. 일부다처제는 필연적으로 ‘남성 도태’를 유발했다. 주로 불복종을 핑계로 남성을 집단거주지에서 내쫓았다. 결혼한 남성이 불복종하면, 부인을 빼앗아 ‘우량 신도’와 결혼시키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집단 시설을 탈출하는 여성도 있었지만, 대부분 되돌아왔다. 일반 사회 상식과 경제력이 없는 여성들에게 자유 사회는 그 자체로 공포였다. 그래도 소녀들의 탈출은 이어졌고, 결국 미국 사회에 그들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한다.
◇미성년 성폭행과 결혼강요로 ‘종신형+20년’
FLDS의 반인륜적 행태를 알린 것도 언론이었고, 법 집행을 늦춘 것도 언론이었다. 지역 1인 매체가 집단을 파헤치기 시작했고, 이어 탐사보도 기자가 가세했다. 워런은 언론의 표적이 되자 텍사스로 도망가 다시 ‘시온 목장’을 건립해 신도를 이주시키고 감시 체계를 강화했다. 하지만 2005년 여성 신도가 ‘미성년일 때 강제로 결혼했다’고 신고 전화를 하면서, 법이 파고들 구실이 생긴다.
사법 처리까지는 십년이 넘게 걸렸다. 신도들은 “미성년자 결혼은 없었다”고 거짓말하고, 워런은 ‘언론 플레이’를 했다. 미국의 공권력이 ‘종교의 자유’를 박탈하고, 화목한 가정을 깨뜨리는 것처럼 포장한 것이다. 미국의 유명 TV 시사 프로 진행자들이 ‘인권주의’ 코스프레를 하고, 정치인들은 ‘종교 문제’에 얽히지 않으려고 거리를 두면서 정의는 유예됐다.
그럼에도, 워런은 소녀 2명에 대한 강간 및 강제 결혼 혐의가 입증돼 2011년 ‘종신형+20년형’을 선고받았다. 현재 텍사스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워런에게는 70여 명의 부인이 있었고, 이 중 20명 이상이 미성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수사로 입증하지는 못했다.
FLDS에는 지금도 워런이 거짓 음모로 희생됐으며 여전히 그를 선지자라 믿는 사람이 수천 명 이상이라고 한다. ‘늘 상냥하라’는 주문은 아직 폐기되지 않은 것이다. 드라마가 모든 의문을 해소해주지는 못한다. 시대착오적 가치관을 가진 이들 집단이 그토록 오래, 경제적으로도 번성한 이유, 존재할 게 분명한 정치적 배후까지 추적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충격적 스토리가 이어져 4편, 총 3시간 30분의 러닝 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FLDS는 ‘모르몬교’가 아니다
유타주, 애리조나주, 텍사스 등에서 집단 생활을 하는 FLDS(The Fundamentalist Church of Latter Day Saints). 흔히 ‘모르몬교’라 알려진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 약칭 LDS)와는 다른 집단이다. 1830년 출발한 신흥종교 ‘모르몬교’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는 1890년 ‘일부다처제’를 폐기했고, 그를 고집하는 신도를 처벌하고 퇴출 시켰다. FLDS는 당시 극렬교도들이 새로 만든 종파다. LDS는 ‘FLDS는 모르몬교 분파라고 불려서도 안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