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 정부가 2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방향을 잡은 가운데 2차 재난지원금을 포함한 4차 추경(추가경정예산)의 규모가 8조원대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여당은 6일 고위 당정청 협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4차 추경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5일 복수의 여당,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부는 2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해 총 8조원대 추경을 검토 중이다.
한 관계자는 “재난지원금을 어디까지 지급할 지를 놓고 막판 고심 중이지만 4차 추경 규모가 8조9000억원을 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마지노선을 8조9000억원 이하로 정한 것은 내년 예산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3차 추경을 포함한 올해 총 지출은 546조9000억원이고, 최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의 총지출은 555조8000억원이다. 4차 추경 규모가 8조9000억원을 넘게 되면 올해 지출이 내년 지출을 초과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이같은 ‘마이너스 예산‘이 되면 내년 경제 성장률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8조원대면 1차 재난지원금 당시(14조3000억원)의 60% 규모다.
◇매출 감소만 입증하면 현금 지급...PC방, 카페 업주에 100만원 휴업 보상
지급 대상은 1차 재난지원금 때 논의됐던 것처럼 ‘소득의 50% 또는 70%’ 식으로 정하는 게 아니라, 코로나로 실제 피해를 입은 계층에 집중 지원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용범 1차관도 3일 “코로나19 1차 확산 때와 다르게 현재는 피해가 특정 계층에 집중된 만큼 이들에게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게 맞다”며 “피해가 집중된 자영업자, 소상공인을 중점으로 선별 지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급 방식은 세금 혜택을 주거나 상품권을 지급하기보다 직접 현금을 지원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우선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현금을 지급한다. 한때 논의됐던 ‘매출 감소액에 따른 선별지원' 방안은 폐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이 시급한 상황에서 업체별로 매출 감소액을 계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권 관계자는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손해(매출 감소)만 입증하면 바로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말했다.
또 카페, PC방 등 집합금지 명령으로 피해를 본 10여개 업종에는 가게당 100만원 안팎의 휴업 보상을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어떤 업종에 얼마나 줄지 등을 놓고 막판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 휴직, 실업 상태에 놓인 취약계층과 특수고용직에 대한 생계 지원 방안도 마련 중이다.
4차 추경 편성 방침이 기왕 정해진 만큼 최대한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서둘러 추경안을 내고 추석 전에 집행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했다.
◇재난지원금이 이낙연 vs 이재명 차기 대선 전초전?
2차 재난지원금을 어디까지 지급할 것인지를 놓고 여권의 양대 대선 주자인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치열한 신경전을 벌여왔다. 처음 2차 재난지원금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이 대표는 ‘선별 지급’을 주장한 반면, 이 지사는 “재난지원금 100번 줘도 나라 망하지 않는다”며 끈질기게 100% 지급을 요구했다.
이 지사는 지난달 28일 MBC 라디오에 나와 “(전국민에게 1인당) 30만원 정도 지급하는 걸 50번, 100번 해도 서구 선진국의 국가채무 비율에 도달하지 않는다”고 했고, 4일 정부가 2차 재난지원금을 선별 지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자 페이스북에 ‘홍남기 부총리님께 드리는 마지막 호소’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이 지사는 “1인당 10만원씩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해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그래서 여당과 정부 안팎에선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 국민을 돕기 위한 재난지원금 논의가 이 대표와 이 지사간 기싸움의 구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결국 정부가 재난지원금을 선별 지급하기로 결정한 데는 이 지사에 대한 견제 심리도 작용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재명 지사가 자꾸 장외에서 작은 액수라도 전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자고 외치고 있는데 이게 오히려 여당과 정부의 선택지를 제한하고 있다”며 “이 대표 입장에선 이 지사를 따라가는 모양새를 취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정 악화의 책임은 이낙연이 지고 빛은 이재명이 보는 선택을 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당 안에서도 1차 때처럼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자는 의견이 많지만 당 대표가 꿈쩍도 안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여당에선 “당 대표가 자기 주관 없이 정치 상황에 따라 왔다 갔다 한다”는 불만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재명 지사도 이런 구도를 알텐데 자기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 지사가 진짜 국민을 위한다면 30만원이 어려우면 10만원이라도 주자는 식의 도발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이재명 지사간 신경전도 사실은 ‘이낙연-이재명 간 대리전‘ 성격을 띠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 부총리는 국무조정실장으로 일하며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를 보필한 인연이 있다. 홍 부총리가 2018년 말 부총리에 임명되는 과정에서도 이낙연 당시 총리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홍 부총리는 지난달 3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임이자 의원(국민의힘)이 “(50번, 100번 주자는 이 지사 말이) 아주 철없는 얘기죠?”라고 묻자 “그렇게 생각한다. 자칫 잘못하면 국민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다”고 해 이 지사와 여당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다음날 민주당 의원들이 사과를 요구하자 홍 부총리는 “제가 어떻게 경기지사에 대해 철이 있다, 없다를 논하겠냐”면서도 “(이 지사가) 조금 책임 없이 발언한 것이라고 강조해서 말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홍 부총리는 “2차 재난지원금은 정말 어려운 분들에게 선별해서 드리는 게 맞는다고 본다”며 이 지사의 전 국민 지급 주장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