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연합뉴스

‘최고금리 10% 제한’을 주장해 금융권의 비판을 받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또 한 번 금융에 목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기본대출권’이라는 개념을 들고나왔다. 저신용자를 포함해 누구나 저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는 ‘권리’를 주자는 얘기다.

현실적으로는 정부의 서민금융상품 확대를 대폭 늘리자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정부의 재원 마련이 부담스럽다는 점과 ‘도덕적 해이’를 양산할 수 있다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이재명 “누구나 저리·장기 대출받는 ‘기본대출권’ 도입해야”

이 지사는 지난 12일 페이스북에 <기본대출권..수탈적 서민금융을 인간적 공정금융으로 바꿔야>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이자율(최고금리) 10% 제한, 불법 사채 무효화에 더해 장기저리대출 보장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썼다.

그는 “한국은행이 화폐를 현재 연 0.5%로 시중은행에 공급하면 대기업이나 고소득자 고자산가들은 연 1~2%대에 돈을 빌려 발권이익을 누리지만, 담보할 자산도 소득도 적은 서민들은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에서 최대 24% 초고금리로 돈을 빌려야 한다”면서 “수입이 적고, 담보가 없다 하여 초고금리를 내는 것이 당연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2금융권·대부업 금리가 높은 까닭에 대해 “대부업체는 회수율이 낮으니 미회수위험을 다른 대출자들에게 연 24% 고리를 받아 전가한다”면서 “어디선가 많이 본 그림 아닌가요? 바로 족징, 인징, 황구첨정, 백골징포”라고 했다.

백골징포란 조선 후기에 죽은 사람의 이름을 군적과 세금 대장에 올려놓고 군포를 받던 일을 말한다. 한마디로 저신용자들이 부당한 부담을 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지사는 “우리나라에는 전액 무상인 복지와 전액 환수하는 대출제도만 있고 그 중간이 없다”면서 “중간 형태로 일부 미상환에 따른 손실(최대 10%)은 국가가 부담하여 누구나 저리장기대출을 받는 복지적 대출제도(기본대출권)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서민금융 확대 취지는 좋지만, 도덕적 해이 우려

이 같은 제안은 서민금융상품을 대폭 강화하자는 것으로 풀이된다. 예컨대 대표적인 서민금융상품인 ‘햇살론’은 정부가 보증을 서 중저신용자도 중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다. 햇살론 대출이 부실이 나면 정부·공공기관이 90%를 대신 갚아준다.

이 지사 제안은 아예 정부·공공기관이 100%를 대신 갚아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국가가 100% 보증을 서면, 금융회사들이 최소한의 대출 심사도 게을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예 대출 신청자와 금융회사가 짜고 부실 대출을 일으키는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정부 재원이 꾸준히 들어가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민간 금융의 기능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시장에서도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이 시장금리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금리로 서민금융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면, 정부 지원에 계속 기댈 수 있다는 것이다.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 등 2금융권이 자체 서민상품을 개발할 유인이 없어지는 셈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18년 ‘서민금융지원체계 개편 방안’ 보고서에서 현행 서민금융 제도에 대해 “다수의 이용자들이 낮은 금리의 정책금융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어 서민층 신용도 개선 등 정책효과가 반감된다”면서 “과도하게 낮은 금리의 정책금융상품은 과다 차입을 야기하고 성실 상환을 통해 제도권 금융으로 복귀하려는 유인을 제한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이 지사의 주장은 ‘금융 포퓰리즘’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앞서 이 지사는 최고금리를 현행 24%에서 10%로 낮추자고 제안한 바 있다. 민간 금융권은 물론, 은성수 금융위원장조차 “그렇게 급격히 낮추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최고금리 제한(24%)을 넘겨 대출해준 채권 등을 전면 무효화하자고도 주장했다.

◇다음은 이재명 지사의 페이스북 글 전문

<기본대출권..수탈적 서민금융을 인간적 공정금융으로 바꿔야..>

이자율 10% 제한, 불법사채무효화에 더해 장기저리대출보장제도(기본대출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국가는 국민이 함께 살려고 만든 공동체이지, 소수 강자의 다수약자에 대한 지배도구가 아닙니다. 모든 국민이 주권자로 평등한 민주공화국에서는 국가권력 행사로 생긴 이익은 국민 모두가 고루 누려야 합니다.

화폐발행(발권)이익도 함께 누려야 할 뿐 아니라 오히려 소수 고액자산가나 고소득자보다 다수 저소득자가 더 많이 혜택을 받아야 실질적 정의에 부합합니다.

한국은행이 화폐를 현재 연 0.5%로 시중은행에 공급하면 대기업이나 고소득자 고자산가들은 연 1~2%대에 돈을 빌려 발권이익을 누리지만, 담보할 자산도 소득도 적은 서민들은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에서 최대 24% 초고금리로 돈을 빌려야 합니다.

수입이 적고, 담보가 없다 하여 초고금리를 내는 것이 당연한 건 아닙니다.

대부업체는 회수율이 낮으니 미회수위험을 다른 대출자들에게 연 24% 고리를 받아 전가합니다. 90% 이상은 연체없이 고금리 원리금을 상환하면서 다른 이의 미상환책임을 대신 집니다.

어디선가 많이 본 그림 아닌가요?

바로 족징, 인징, 황구첨정, 백골징포입니다.

기막히게도 국가의 서민대출금리도 17.9%입니다. 복지국가라면 서민의 금융위험을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데, 국가마저 고금리로 미상환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전액 무상인 복지와 전액 환수하는 대출제도만 있고 그 중간이 없습니다. 중간 형태로 일부 미상환에 따른 손실(최대 10%)은 국가가 부담하여 누구나 저리장기대출을 받는 복지적 대출제도가(기본대출권) 있어야 합니다.

대부업체 대출이 약 200만명에 약 17조원이니 연체되는 최대 9%를 전액 국가가 부담해도(이자가 24% 아닌 1%라면 연체도 거의 없을 겁니다만) 적은 예산으로 수백만명이 우량대기업과 같은 조건으로 돈을 빌릴 수 있어 재기도 쉽고 복지대상 전락도 줄어들 것입니다.

1% 성장 시대에 24% 이자 지급하면서 성공할 사업도 사람도 없습니다. 24% 고리대출은 복지대상자가 되기 직전 마지막 몸부림이고, 이를 방치하면 결국 국가는 복지대상전락자들에게 막대한 복지지출을 해야 합니다.

저리장기대출로 이들에게 자활과 역량개발 기회를 주는 것이 개인도 행복하고 국가도 발전하며 복지지출도 줄이는 길입니다.

서민금융을 서민끼리 상호수탈하는 동물의 세계로 방치하지 않고 함께 사는 공동체로 만드는 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능합니다.

우리는 세계 최저수준의 이전소득(정부가 개인에 지급하는 소득)과 그로 인한 최저 국채비율과 최고 가계부채비율을 자랑합니다.

타인의 신용위험을 대신 떠안고 수탈당하다 복지대상자로 추락하지 않도록, 큰 예산 들지않는 저리장기대출제도(기본대출)를 시작할 때입니다.

금융 관련 고위공무원이든, 경제전문가든, 경제기자든 토론과 논쟁은 언제 어디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