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구독경제로 더 빠르게 전환하고 있습니다. 한국 시각으로 16일 새벽, 애플의 신제품 발표 행사를 보고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번 행사에 나타난 구독경제의 흐름에, 자동차 등 다른 분야의 거대 제조업체들까지 연쇄적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애플의 구독경제 전환이 삼성전자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테슬라와는 어떤 유사점이 있는지, 또 이런 변화 때문에 세계 1등 자동차회사 폴크스바겐에선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노즈쿠리(일본식 물건만들기 철학)의 거인 도요타가 ‘소프트웨어 퍼스트(제일주의)’ 선언을 한 이유는 무엇인지, 이것이 현대차와 한국 자동차산업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지 등을 차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애플의 팀 쿡 CEO가 한국 시각으로 16일 새벽, 애플 신제품 출시 행사에서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구독경제로 가는 애플

애플의 변화가 심상치 않습니다. 제품 판매 중심에서 서비스 중심, 구독경제 중심으로의 대전환입니다. 이번 16일 새벽의 애플 행사에서 그것을 극명히 보여줬습니다.

새로운 애플 워치, 8세대 아이패드도 매력적이고, 4세대 아이패드 에어도 좋아보였지만, 이번에 느낀건 ‘애플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제품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애플이 넷플릭스처럼 자사 서비스를 통합해 자유 이용권처럼 만들어 파는 구독경제로 전환해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는 것은 애플이 아이폰 다음의 수익원을 키우는데 안간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선 눈길을 끈 것은 애플 워치 신형 발표와 함께 내놓은 원격 피트니스 서비스인 ‘피트니스 플러스’였습니다. 트레이너 출연 동영상을 보면서 요가와 춤, 근력운동 등을 함으로써 집이나 야외에서도 헬스클럽과 같은 체험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애플 설명입니다. 몸 상태도 체크해 주고, 애플뮤직과 연동해 적절한 음악도 추천해 줍니다.

애플에 따르면 애플 워치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은 달리기·수영 등의 활동량을 기록하는 워크아웃 앱입니다.

코로나 19 감염 우려로 헬스클럽 등에 다니지 못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죠. 애플이 이 분야의 잠재 소비층이 가장 많다고 보고 피트니스 플러스를 미는 것 같습니다. 미국 내 구독료는 월 9.99달러, 연간 79.99달러입니다. 워치 신규 구매자는 3개월간 무료이지만, 월 4.99달러의 동영상 서비스인 ‘애플 TV 플러스’나,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아케이드’ 등 다른 자사 서비스와 비교할 때 만만치 않은 가격입니다만, 만약 이 서비스 사용자가 구독료 대비 더 큰 만족을 느낀다면 애플의 구독경제 전환이 급진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근 애플의 구독서비스가 많아지고 있지요. 소비자 부담이 늘어나 추가 구독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함인지, 각종 서비스를 하나로 묶은 ‘애플 원’이라는 구독서비스 통합 요금제도 이번에 발표했습니다. 동영상과 음악·게임에 더해 클라우드 상의 데이터 보관 서비스도 포함한 기본 플랜은 월 14.95달러로, 각 서비스를 따로 구독하는 것보다 30% 가량 저렴해집니다.

이게 가리키는 방향은 명확합니다. 애플이 단말기 판매에만 의존하지 않는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는 겁니다. 구독서비스 수익을 늘리겠다는 것이지요. 이미 애플은 2019년 동영상·게임 등의 구독서비스를 시작했는데요. 애플의 2020년 2분기 서비스 부문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15% 늘어난 131억5600만달러(약 15조4400억원)에 달합니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이미 20%대로 높아졌습니다. 주력인 아이폰의 연간 판매가 2015년의 2억 3000만대를 피크로 한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구독서비스에 거는 기대가 큰 것이지요.

애플의 서비스 매출 비중이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제조 비즈니스에 비해 고정비 부담이 적으니, 서비스 매출이 늘수록 이익률은 더 높아지겠지요. 이익률을 높이기 위해선 사용자를 더 많이 늘리는게 중요해질 텐데요. 그러기 위해 더 좋은 성능의 제품을 더 저렴하게 내놓게 될겁니다. 이미 서비스로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제품은 사용자를 늘리기 위한 창구 역할만 하게 되는 것이지요. 프리미엄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 애플 제품이 가격까지 저렴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더 많은 소비자가 애플 제품을 찾게 되고, 그만큼 서비스 매출·이익이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겁니다.

즉 하드웨어를 팔아 수익 내는 것에만 의존하지 않게 되면, 애플이 더 정교하게 수익확대 전략을 펼칠 수 있게 됩니다. 하드웨어 값을 얼마 내리면, 구독서비스 매출이 얼마나 더 오를 것이라든지 하는, 하드웨어 매출·수익과 구독료 매출·수익 사이의 상관관계 등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서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되겠지요.

또하나 중요한 것은 애플이 서비스 매출 확대로 축적된 소비자 데이터를 활용해 더 효과적이고 세밀한 하드웨어 제품군 구성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만약 어떤 구독서비스에 소비자들이 열광한다면, 그 서비스에 맞는 쪽으로 차기 하드웨어 제품을 최적화할 수도 있겠지요.

◇제품 중심의 삼성전자

애플의 이번 발표는 삼성전자가 지난 8월 5일 신제품 발표행사에서 ‘제품에 집중한다’는 전략을 내세운 것과 극명히 대비됩니다. 당시 발표는 삼성전자가 독자 OS 생태계를 접고, (미국이 제일 잘하는) 클라우드+IoT(사물인터넷) 플랫폼에 올라탄 뒤, 그 위에서 소비자가 어떤 삼성 디바이스를 사용하든 편하고 매끄럽게 즐길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아닌) 제품 생태계를 완비하겠다는 의미로 비쳐졌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이나 사무용 프로그램 등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제품군을 만들어, 소비자의 선택을 받겠다는 식이지요.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무엇이든, 삼성전자는 그에 최적화된 제품으로 살아남겠다는 얘기로 들렸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만약 애플이 자사의 폐쇄적 생태계에서 서비스만으로 충분한 돈을 벌게 된다면 말입니다. 애플은 자사 제품 가격 전략에서 지금보다 더 공격적으로 나올 수 있겠죠. 신제품을 더 저렴하게 팔 수도 있을 겁니다. 애플의 전략대로 간다면, 삼성전자는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까요? 이 부분이 궁금해집니다.

삼성전자는 연간 3억대 정도의 스마트폰을 파는 세계 판매 1등 회사였지만, 올 2분기(4~6월)에 처음으로 중국 화웨이에 스마트폰 출하량에서 세계 선두를 내줬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올 2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24% 축소됐는데요.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세계 판매는 전년 동기보다 29% 줄어든 5420만대에 그쳤습니다.

특히 수익성 높은 기함 모델의 판매가 많이 줄고 있다는 것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큽니다. 그동안 삼성은 강력한 디바이스 장악력을 무기로 구글·애플·아마존에 맞서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통합 생태계를 만들어보려고 무던히도 노력해 왔습니다. 바다나 타이젠 같은 독자 모바일 OS 보급이나 AI 빅스비, 게임을 통한 생태계 자립에도 무척 공을 들였습니다. 하지만 큰 성과가 보이지 않습니다. 사물인터넷(IoT) 만능 플랫폼인 아틱(ARTIK)도 오랫동안 개발해 왔지만 이 역시 중단된 상태입니다.

테슬라 모델3에 들어가는 전자제어유닛(ECU). /테슬라

◇애플보다 더한 구독경제 노리는 테슬라

테슬라를 전기차 회사로만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테슬라는 사실 애플보다 더 강력한 구독경제 모델을 노리고 있습니다. 테슬라 모델3의 경우, 운전보조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미국에선 8000달러, 한국에선 900만원에 팝니다. 이 옵션이 없어도 차는 잘 굴러가지만, 대부분의 모델3 구입자가 이 값비싼 서비스를 선택합니다. 만족감이 크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거죠.

어떻습니까. 천하의 애플도 100만원짜리 아이폰을 팔면서, 기능을 소프트웨어적으로 업데이트해주고 수십만원을 더 받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테슬라는 차값의 20%나 되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패키지를 이미 테슬라 차량 구입자들에게 팔고 있습니다. 테슬라가 앞으로 더 많은 서비스를 개발해 팔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차에 추가비용을 들여 물리적으로 무엇인가를 장착하지 않더라도, 테슬라가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서비스 이용료나 구독료를 받는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요.

애플의 서비스 매출이 더 늘어나면 제품은 박리다매로 깔아도 되는 것처럼, 테슬라 역시 소프트웨어 판매수익이 늘어날수록 제품은 저렴하게 파는게 가능해질 겁니다. 어쩌면 테슬라는 차를 팔아 수익을 내지 않더라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는 최초의 자동차회사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된다면 전기차를 팔려는 기존 자동차회사들도, 애플에 맞서는 삼성전자와 똑같은 고민을 하게 될겁니다. 테슬라는 소프트웨어 매출이 있으니 전기차에서 이익을 덜 남겨도 되지만, 그렇지 못한 자동차회사는 전기차에서 이익을 꼭 남겨야 하지요. 하지만 이익을 많이 남기자니 차가 안팔릴테고, 이익을 안남기자니 차 파는 의미가 없어지는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테슬라 모델 따라가는 폴크스바겐·도요타

그래서 폴크스바겐도 테슬라 모델을 따라가려고 조직 전체를 흔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원래 자동차회사는 서플라이어와 업무 분담이 확실했죠. 자동차회사는 차만 만들고 브랜드만 관리하면 됐습니다. 차 안에 들어가는 전자제어유닛(ECU)·운영체제(OS)·소프트웨어 등은 대부분 서플라이어가 만들어 자동차회사에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델로는 테슬라를 따라갈 수가 없지요. 테슬라처럼 소프트웨어를 팔아 돈 버는 모델을 만들려면, ECU·OS·소프트웨어 등을 전부 자동차회사가 스스로 장악해야 합니다. 테슬라를 그대로 따라 해야 하는거죠. 현재 폴크스바겐은 ID.3 같은 신형 전기차를 내놓고 테슬라 타도를 외치고 있는데요. 진짜 싸움은 폴크스바겐의 전기차 안에 들어가는 컴퓨터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에서부터 시작될지 모릅니다.

폴크스바겐과 함께 세계 자동차 업계의 양강인 도요타는 어떨까요? 일본의 전문지인 닛케이크로스테크가 15일 충격적인 내용을 전했습니다. 도요타가 2022년까지 회사 조직을 ‘소프트웨어 퍼스트’ 체제로 완전히 바꾼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자동차회사에서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 즉 자동차 자체를 만드는 것에 비하면 들러리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소프트웨어를 차량 개발의 주역으로 삼아, 테슬라나 IT기업 등 신흥 세력과의 경쟁에 대비하겠다는 겁니다.

테슬라가 자동차를 ‘움직이는 컴퓨터’로 만들어 서비스로 돈 버는 모델을 만들어나가면서, 자동차업계도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조직을 뜯어고치고 있는 겁니다. 애플 아이폰이 나온 뒤 무너졌던 노키아의 길은 절대 걷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최근 시판에 들어간 폴크스바겐의 신형 전기차 ID.3. /로이터 연합뉴스

◇현대차의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은?

그렇다면 현대자동차는 어떨까요? 현대차 역시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서플라이어에 맡겨 왔던 ECU, OS, 소프트웨어를 스스로 장악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 중이지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이, 이를 가능케 할 조직 체제, 그리고 소프트웨어 인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입니다. 테슬라에 들어가는 인공지능(AI)반도체 하나를 자체 개발하는 것도 기존 자동차회사로선 엄청난 도전과제입니다. 또 차량용 컴퓨터·소프트웨어를 새로 설계하려면, 스스로가 앞으로 어떤 서비스를 통해 어떻게 돈을 벌겠다는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구상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장기적 안목을 갖고, 당장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자원을 쏟아부을 수 있는 강력한 기술 리더십도 필요하죠. 이 과정에서 기존의 전통 서플라이체인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조정해 나갈 것인지도 문제입니다.

애플과 테슬라가 ‘(제품은 저렴하게 보급하고) 서비스로 돈 버는 모델’을 강화해 나감에 따라, 모바일디바이스·자동차 산업 양쪽에 폭풍을 일으키고 있는 형국입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이 변화를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나갈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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