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완화된 14일 서울 시내의 한 PC방에서 이용자들이 일정 간격을 두고 게임을 하고 있다. PC방은 한 달만에 '고위험시설'에서 제외돼 영업을 재개할 수 있게 됐다. /김지호 기자

“PC방은 명분상 제재하기 좋은 업종이죠. 마녀사냥식 전시행정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달새 PC방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은 정부의 ‘오락가락 방역지침’에 생계가 뒤흔들렸다. 갑자기 고위험시설에 추가됐다가 해제됐고, 개인 칸막이가 있는데도 음식 섭취를 막았다가 열흘여만에 슬그머니 풀어줬다. 원칙없는 정부 방역의 전형적인 사례가 바로 PC방이었다. PC방 업주들은 “정부 방역지침은 철저히 따르겠지만, 표퓰리즘식 ‘정치 방역’은 근절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고위험시설 지정 한달만에 해제

정부가 PC방을 콕 찍어 고위험시설로 추가 지정한 것은 지난 8월15일.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을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정부는 “학생들의 감염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로부터 나흘만인 19일 ‘집합금지’ 명령을 받아 유흥주점·단란주점·헌팅포차·노래연습장 등 다른 고위험시설 11곳과 함께 곧바로 영업이 중단됐다.

PC방 업계는 ‘개인 칸막이가 쳐져있고, 환기구 설치·소독 등 방역을 철저히 해 온 PC방이 왜 고위험시설이냐’며 1인 시위, 정부·국회 항의 방문 등을 이어가며 강력히 반발했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지 6개월이나 지났는데 갑작스런 고위험시설 분류는 즉흥적인 전시행정이라는 것이다. PC방 업주 출신인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도 항의 성명을 내는 등 힘을 보태고 나섰다.

그러자 정부는 지정 한달만인 이달 14일 ‘2단계 완화’ 조치를 발표하며 PC방만 고위험시설에서 해제한다고 밝혔다. 한달 전과 마찬가지로 똑 같은 2단계 상황이었는데 판단이 달라진 것이다. 정부는 대신 미성년자 출입금지, 좌석 띄어앉기, 음식 섭취금지 등의 부대 조건을 달았다. 한 PC방 업주는 “처음부터 학생 보호가 목적이었으면, 미성년자 출입금지 같은 조치를 취했으면 될텐데 일단 영업중단부터 시킨 것은 ‘마구잡이식 방역’”이라고 했다.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PC방 단체 관계자들이 'PC방 운영조건 해제 및 피해 보상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있다. /연합뉴스

◇음식 섭취금지는 열흘여만에 번복

이번엔 ‘음식 섭취금지’가 문제가 됐다 . PC방은 매출의 절반 가량을 음식 판매에서 얻는다. PC방 업계를 대표하는 인터넷콘텐츠서비스협동조합의 최윤식 이사장은 “전체 손님의 60~70%인 청소년 출입을 막고, 매출 절반을 차지하는 음식 판매마저 막아버리면 영업 제한을 풀어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업주들은 정부의 애매한 지침을 성토했다. “마스크 벗고 마주앉아 밥 먹는 음식점은 되고, 개인 칸막이 치고 ‘혼밥’하는 PC방은 왜 안 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정부는 열흘여만인 지난 25일 추석 특별 방역지침을 발표하며, PC방의 음식 판매·섭취를 허용한다고 슬쩍 지침을 번복했다. “음식점 등 다른 시설과 형평성을 고려했을 때, PC방에 좌석 한칸 띄워앉기를 의무화한 상태에서 음식 섭취까지 금지한 것은 과도한 제한이란 지적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스스로 원칙없이 제재했음을 자인한 셈이다.

28일 서울 양천구의 한 PC방에서 손님이 음식물을 섭취하고 있다. 정부의 추석기간 특별방역 대책에 따라 PC방 내 미성년자 출입금지 등 방역수칙은 계속 준수하되 음식 판매 및 섭취는 가능해졌다. /연합뉴스

◇"학부모 표 때문에 쥐 잡듯이 잡나"

이는 소위 ‘울어야 산다’는 나쁜 선례(先例)를 만들고 있다. 정부가 원칙없이 자의적인 방역지침을 덜컥 내놓고, 이에 생계를 위협받게 된 소상공인들이 항의하면 다시 풀어주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다. 또 ‘누구는 풀어주고, 누구는 안 되냐’는 식의 악순환도 가져온다.

PC방 업주들은 지난 한 달간의 과정이 ‘포퓰리즘 방역’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학부모들이 안 좋아하는 대표 업종이라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 PC방 업주는 “표 주는 사람은 PC방을 쥐 잡듯이 잡으면 더 좋아하고, 표 받는 사람은 전국 PC방 사장들 다 합쳐봐야 잃어도 될만하니 이런 식이지 않느냐”고 했다. 전국 PC방은 8000여곳이다.

PC방은 정부의 새희망자금 1차 지급대상에서도 누락됐다. 최윤식 이사장은 “PC방 사업자코드가 행정 절차에서 확인이 안 됐다는데, 집합금지 명령은 그렇게 단호하게 내리는 정부가 지원은 왜 이렇게 소홀하게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PC방의 태생적인 이미지 한계 때문에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PC방 업주들은 폐업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최 이사장은 “한 달전 정부의 영업중단 조치 이후 관리 프로그램 계약을 해지한 업장, 즉 폐업한 매장 수가 500곳이 넘는다”면서 “200만원 지원금 안 받고 정부에 도로 돌려드릴테니, 제발 PC방이 차별없이 정상적으로 영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