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일본 니치아와 소송을 마무리짓고 머리를 자르러 가기 전의 이정훈(왼쪽) 대표와 지난 14일 경기도 안산의 사무실에서 ‘두 번째 장발’을 한 이 대표의 모습(오른쪽).

LED(발광다이오드) 전문기업 서울반도체는 자사 특허를 침해한 필립스 LED 전구에 대해 3년간 판매품 전부 회수 및 파괴 판결을 이끌어냈다고 13일 밝혔다.

서울반도체에 따르면 독일 뒤셀도르프 지방법원은 최근 유럽 LED 조명 유통업체인 ‘로이취스타크 베트립스’가 판매한 필립스 LED 전구에 대해 즉각 판매금지는 물론 2017년 10월부터 판매된 제품을 모두 회수해 파괴하라는 이례적인 판결을 내렸다.

해당 특허 침해 제품은 필립스 브랜드 조명 회사의 자회사인 ‘케이라이트(Klite)’가 제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필립스는 작년과 올해도 TV, 상업용 대형 모니터인 사이니지에 서울반도체 특허를 침해한 LED를 사용했다가 미국 법원에서 모두 패소해 매대에서 물건이 치워진 바 있다.

서울반도체는 매출 기준 세계 4위의 LED 전문 제조업체로, 업계 최다인 1만4000여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매년 매출의 10%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1만건 넘는 특허 유지에만 연간 수백억원을 쓴다.

고려대 물리학과를 나와 삼신전기 부사장으로 일하던 이정훈(67) 대표는 1992년 서울반도체를 인수했다. 미국 반도체 회사 페어차일드 출신 연구원들이 세운 매출 3000만원대 회사를 인수해, 현재 매출 1조원대의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특허 침해 기업 뿌리뽑겠다”...두 번째 장발 투혼

서울반도체는 글로벌 기업들과 20여건의 특허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 대표는 2018년 말부터 “특허 침해 기업을 뿌리 뽑을 때까지 머리를 자르지 않겠다”며 2년 가까이 머리를 자르지 않고 있다.

이 대표가 처음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7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반도체는 세계 LED 업계 1위인 일본 니치아와 특허 소송전이 한창이었다. 소송 시작 3년 만인 2009년 니치아가 양사의 특허를 상호 공유하는 영구 계약을 맺고 물러났다. 이 대표는 그제야 어깨까지 자란 머리를 잘랐다.

지금의 장발은 두 번쨰다. 서울반도체 관계자는 “힘들게 축적한 기술이 무단 침해당하자 이들을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 대표가) 머리를 기르기로 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 대표의 특허에 대한 집념은 남다르다. 그는 "지식재산은 어려운 중소기업과 젊은 창업자들이 생존하고 계층 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 사다리”라며 “회사를 책임진 리더로서 직원과 투자자를 지키고, 나아가 대한민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투혼을 (장발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독일 법원의 판결과 관련, 그는 “지식 재산권이 존중될 때 대학에 재정적 도움을 주고, 연구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생활비 지원도 할 수 있어 연구개발이 더 활성화되는 선순환을 낳는다”면서 “현재뿐 아니라 향후 인공지능(AI) 시대에서도 특허는 필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