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컴포트슈즈 1위 업체로 연 매출 300억원을 내는 중소기업인 바이네르도 코로나 사태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지난 2월 코로나가 본격 확산하자 매출이 한꺼번에 70~80% 빠졌다. 전국 70여 매장 가운데 하루 매출 1원도 올리지 못한 곳이 속출했다.
바이네르의 김원길(59) 대표는 ’45년 구두 외길'만 걸었다. 작년 매출은 240억원. 중졸 학력으로 충남 당진서 무작정 상경, 영등포의 한 구둣방 견습공으로 시작했다. ‘안토니’란 이름의 자기 회사를 만들었고, 2011년 이탈리아 구두 브랜드 바이네르까지 인수했다.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에 선정됐고 국무총리 표창, 철탑산업훈장도 받았다.
“구두만 제대로 만들면 불경기란 없다. 외부 탓하지 말자”며 ‘불경기’란 말을 사내 금기어로 삼고, 2년 전에는 ‘힘들어도 괜찮아’란 자서전까지 펴냈다. 코로나는 이런 그도 생존 위기에 몰아넣었다.
◇'45년 구두 외길' CEO에 닥친 코로나
지난 13일 경기도 일산 본사에서 만난 김 대표는 “하루 이틀이라면 버티겠지만 그런 상황이 3개월 계속되자 회사 유동자금이 싹 빠져나갔다”며 “돈 쓸 데는 고정적인데 들어오는 돈이 없으니 ‘아 이렇게 망하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저녁에 잠들면서 ‘내일 아침이 안 오면 좋겠다’ ‘이대로 영원히 잠들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했을 정도”라고 했다.
가장 급한 건 현금 확보였다. 2월부터 대표 월급을 안 받기 시작했다. 노후 연금, 보험까지 깨 썼다. 골프선수인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마련했던 골프장 회원권도 팔았다.
5월에는 회사 마당에 대형 텐트 20동을 치고 전 직원과 나흘간 창고에 쌓여 있던 구두를 직접 팔았다. 김 대표는 “현금이 너무 급해 원가 밑지는 가격에 모두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나흘간 1만6000켤레의 구두를 팔았다. 현금 7억여원을 겨우 확보했다. 구두 6600켤레를 판 마지막 날 김 대표는 회사 뒤편에서 홀로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그는 “젊을 때 케리부룩(구두 브랜드) 영업사원 시절, 하루 780켤레 판매 신기록 세운 게 내 자랑이었다”며 “35년 만에 내 브랜드로 그 10배 가까이 팔았다는 게 참 고맙기도 하고, ‘열심히 살았구나’ ‘세상이 그래도 도와주는구나’ 싶고…. 만감이 교차하며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지금은 생존 투쟁 중"
자신이 직접 영업을 뛰고, 은행 문을 두드려 간신히 40억원가량 비상 자금을 마련했다. 매출도 조금 늘리면서 한숨 돌린 듯했지만 8월 중순 코로나가 재확산하며 손님이 뚝 끊겼다. 지금도 매출은 여전히 작년 대비 반 토막 수준이다. 그는 “매달 3억원 이상 적자가 나는 중”이라고 했다. 어렵게 마련한 비상 자금을 하루하루 까먹는 것이다.
김 대표는 최근 공장 한쪽에 유튜브용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구두 디자이너·개발자와 함께 출연해 비대면으로 소비자들에게 신제품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구두를 팔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보겠다는 심산이다.
◇"더 열심히 뛰는 것만이 살길"
김 대표는 매년 수억원을 들여 효도 잔치, 불우 학생 장학금, 우수 병사 해외 연수 등 봉사활동을 해왔다. 궁지에 몰리자 “봉사활동은 왜 했나, 돈 쌓아 놓고 대비할걸, ‘힘들어도 괜찮아’란 책도 잘못 썼구나, 내가 바보였다”고 자책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엔 주변에서 그를 돕는 손길이 왔다. 사람들이 마스크 사려고 약국 앞에 길게 줄 늘어서던 때, 한 여성 기업인이 면 마스크 5000장을 지원해줘 ‘매장 방문하면 마스크 드리겠다’고 해 손님을 끌 수 있었다. 사업하며 인연을 맺었던 유명 유튜버가 구두를 팔아줬고, 친분 있던 중견·중소기업인들도 ‘직원들 구두 바꿔 주겠다’며 흔쾌히 수백 켤레씩을 사줬다고 한다. 그는 “더 열심히 뛰지 않으면 지금까지 이뤄온 게 다 사라질 수 있다는 것, 그게 코로나를 겪으며 느끼는 교훈”이라고 말했다.
“백화점 가보면 코로나에도 명품 매장엔 사람들이 수십미터씩 줄 서 있더라고요. 어려울 때일수록 국내 기업들 도와줘야 일자리 생기고, 기업이 세금도 내고, 한국 경제도 지키지 않겠습니까. 우리 중소기업 물건들도 국민들이 많이 사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