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라임자산운용 핵심 문건을 통째로 빼돌려 김모 전 금융감독원 팀장(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넘긴 금감원 직원에 대해 ‘비밀엄수 위반’ 이유로 경징계(감봉)했지만, 과거엔 같은 사유로 면직 처분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해당 직원이 룸살롱에 간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윤석헌 원장은 “접대는 없었다”고 주장하고 수사 계획도 없다고 밝히는 등 조직적으로 사태를 은폐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마포 스타트업 지원센터 '프론트원'에서 열린 은행연합회 정기이사회 만찬에 참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술집서 김봉현이 650만원 결제했는데 “접대 아니다”라는 금감원

26일 법원 등에 따르면, 김 전 팀장은 지난해 8월 21일 서울 강남 룸살롱에서 라임 검사 관련 부서에 있던 A선임과 만났다. A선임은 ‘라임의 불건전 운용행위 등 검사계획 보고’ 문건을 건넸고, 김 전 팀장은 바로 옆방에 있던 ‘라임 배후’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게 문건을 줬다. 술값 650만원은 김 전 회장이 전액 냈다. A선임은 다음 날에도 청와대 인근 도로에서 김 전 팀장에게 직무상 비밀인 ‘전문투자형 사모펀드의 차입 현황 및 향후 대응 방안’ 문건도 줬다. 금감원은 이런 사실을 파악하고도 국정감사를 불과 6일 앞둔 지난 7일, A선임에게 ‘감봉’이란 경징계를 내리며 사건을 정리했다. A선임은 자료를 건네기 전에 담당 국·팀장에게 아무 보고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에 자료를 줄 때는 정부 메일이나 인편으로 직접 전달한다”면서 “업무 시간 외에 술집에서 준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업무상 자료 요구가 아니라 사적 부탁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감원은 “청와대 파견 직원에게 문서를 전달하는 게 외부 유출에 해당한다고 인식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23일 국정감사에서 “구체적인 감찰 결과를 밝힐 수 없다”고 했고, 이후 “문건을 건넸지만 접대는 없었다. 검찰 수사 의뢰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도 했다.

판결문에서 공개된 금감원 직원 행각

◇5년 전엔 비밀 유지 위반하면 ‘면직’… 100만원 이상 접대받았으면 예외 없이 면직

윤 원장은 라임 사태와 관련된 금융사 CEO들에게 사실상 옷을 벗으라는 중징계를 예고한 반면, 정작 술접대까지 받은 내부 직원 비위엔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A선임에 대해 금감원 인사윤리위원회는 감봉 처분을 내리면서 ‘비밀엄수 위반’ 사유를 적용했다. 그러나 2015년 같은 사유로 징계받은 한 금감원 직원은 당시 ‘면직’ 처분을 받았다.

더 심각한 건 ‘접대'받은 데 대해선 징계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금감원 내규에 따르면, 금품 수수 등이 100만원 이상일 경우 예외 없이 ‘면직’되고, 100만원 이하라도 직무 관련 사안을 제공했다면 대체로 면직된다. A씨처럼 감봉을 받기 위해선 직무와 관련 없는 정보를 윗선의 지시를 받아 제공한 뒤 100만원 미만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았어야 하는데, A씨의 경우 금액적으로나 비위 유형을 감안하면 이를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금감원 관계자는 “(징계 수위를 결정한) 인사윤리위 위원 절반이 외부 인사”라면서 “제 식구 감싸기는 아니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는 “사실상 범행에 가담한 현직 금감원 직원에게까지 관대한 건 사실상 조직적으로 잘못을 은폐하고 감독 당국으로서도 지위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