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병원에 덜 가면 보험료를 깎아주고, 자주 가면 보험료가 최대 4배 뛰는 새 실손보험 상품이 나온다. 과잉 진료로 인해 보험사들이 손해를 많이 보면서 실손보험을 개편하게 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혜택을 줄이는 대신, 보험료 부담도 줄이는 방향이다.

보험연구원은 27일 ‘실손의료보험 제도 개선’ 공청회를 열고 이 같은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공청회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후원으로 열렸으며, 사실상 정부 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보면 된다. 새 실손보험 상품은 내년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실손보험 상품을 개편하는 이유는 보험사 입장에서 ‘팔면 팔수록 손해나는’ 보험이 됐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실손보험 손해율은 131.7%다. 손해율이란 고객한테 받은 보험료 대비 내준 보험금의 비율을 뜻한다. 적자 상품으로 전락한 이유는 일부 환자와 의사들이 비급여 위주로 과잉 진료를 받거나 유도하기 때문이다. 비급여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 행위를 말한다. 가격이 비싸거나 비필수 의료 행위인 경우가 많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우선 실손보험에서 급여만 보장하는 ‘기본형’과 비급여만을 보장하는 ‘특약’으로 분리하자고 제안했다. 급여 항목만 보장받을지, 아니면 비급여까지 함께 보장받을지 소비자 선택에 맡기자는 취지다.

또 비급여 특약의 보험료는 매년 비급여 의료를 얼마나 이용했는지에 따라 정하는 ‘보험료 차등제’를 도입하자고 했다. 비급여 청구가 많은 소비자에게는 이듬해 보험료를 할증하고, 덜 받은 소비자 보험료는 깎아주자는 것이다.

할인·할증 구간을 5단계 또는 9단계로 나누는 방법이 예시로 제시됐다. 예컨대 5단계로 구분할 때 1년에 한 차례도 비급여 진료를 안 받는 가입자 71.5%에게는 보험료를 5% 깎아준다. 병원을 가끔 가는 가입자 26.5%는 그대로다. 나머지 2%는 보험료가 오르고, 비급여 진료를 자주 받는 상위 0.4%는 보험료를 최대 4배로 올린다. 다만 아픈데 병원 못 가는 일이 없도록, 자주 병원에 갈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는 보험료 차등제 적용을 제외해야 한다고 했다. 예컨대 4대 중증 질환자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또 실손보험 자기 부담금을 상향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현재 실손보험 자기 부담률은 급여 10~20%, 비급여 20%다. 예컨대 병원비가 10만원 나오면 보험금이 8만~9만원쯤 나온다는 것이다. 이를 각각 20%와 30%로 높여, 소비자 부담을 높이자고 제안했다. 또 실손보험 재가입 주기도 15년에서 5년으로 줄이자고 했다. 현재 실손보험은 한번 가입하면 새 상품이 나와도 15년간 상품 보장 내용 등을 바꿀 수 없다. 의료 환경 변화 등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5년으로 단축하자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실손보험에서 받는 혜택이 줄어드는 편이다. 다만 보험료 부담도 낮아진다. 보험연구원은 비급여를 보장하는 ‘특약’까지 함께 가입하면 현재 상품 대비 약 10.3% 낮아지고, 급여만 보장하는 ‘기본형’으로 가입하면 현재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 당국은 공청회 후 의견 수렴을 거쳐 빠르면 연내 실손보험 상품 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