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검토 중인 추가 가계부채 관리 방안에는 ‘집 사는 사람’을 겨냥한 내용만 담길 것으로 보인다. 주택 구입 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을 써서다. 이를 ‘핀셋 규제’라고 이름 붙였다. 당분간 주택 구입과 무관한 신용대출에 대해 대책이 나올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금융 당국은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내놓을지는 가계부채 증가세를 신중히 모니터링해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경제부처 수장들 일제히 “DSR 강화”… DSR이 뭐길래
앞서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은성수 위원장,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등이 일제히 ‘DSR 확대’를 언급한 바 있다.
DSR이 뭐길래 경제 부처 수장들이 일제히 ‘DSR 강화’를 외치는 걸까. DSR이란 소득 대비 갚아야 할 원리금 비율을 뜻하는 지표다. 예컨대 한 해 5000만원 버는데 갚아야 할 원리금이 2500만원이면, DSR은 50%로 계산된다.
DSR 규제는 LTV(담보인정비율)보다 더 무서운 규제라 불린다. 주택담보대출 한도만 계산하는 LTV와 달리, DSR은 주담대뿐만 아니라 신용대출 등 대부분 가계 대출을 포함해 계산하기 때문이다. 요즘 주담대 한도가 팍팍하기 때문에 집 사면서 신용대출 등도 받는 경우가 많은데 DSR 규제가 강화되면 그러기 어려워진다. 반대로 평소 신용대출을 많이 받아 쓰고 있다면, 주택 구입 시 주담대 한도가 줄어들 수 있다.
금융권에서는 “주담대와 관련해선 상상할 수 있는 규제를 다 해뒀다”고 말한다. 무주택자라도 서울에선 LTV가 40%까지만 나온다. 시가 15억원 넘는 아파트에 대해선 주담대 한도가 ‘0원’이다. 전세대출을 활용하는 ‘갭투자’도 사용할 여지를 거의 다 막았다. 이제 부동산과 관련해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대출 규제가 DSR 강화인 이유다.
현재는 은행권에 대한 DSR 규제는 ‘평균 DSR’ 기준을 40%로 맞추는 방식으로 적용되고 있다. 예컨대 A씨에게 DSR 60%까지 대출을 내주더라도, B씨에게 DSR 20%까지만 대출해주는 식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①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 ②시가 9억원 넘는 주택을 신규로 구입하려고 주담대를 받을 때는, 개인 단위로 DSR 40%(비은행권 60%) 규제가 적용된다. 아무리 은행이 자체 평균 DSR을 낮게 관리했다고 하더라도 DSR 40%가 넘는 대출을 못 내준다는 뜻이다.
◇DSR 강화, 집 사는 사람만 때린다
그래서 DSR 규제를 어떻게 강화한다는 걸까. 지난 27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DSR 규제 강화와 관련해 입을 뗐다. 그는 DSR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① 은행권 평균 DSR 관리기준(현행 40%)을 낮추는 방안 ②차주 단위 DSR 규제가 적용되는 지역을 넓히는 방안 ③ 차주 단위 DSR 규제가 적용되는 주택 가격의 기준을 낮추는 방안 등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DSR 규제가 40%에서 30%로 강화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28일 설명자료를 내고 “(그런 방법이 가능하지만) 일반 서민에게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전반적인 DSR 관리기준을 낮추는 방안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취지였다”고 했다. 신용대출에 대한 규제가 꼭 필요하다면 ‘핀셋 규제’ 방식으로 할 것이며, 평균 DSR 관리기준을 40%에서 30%로 낮추는 방안은 전혀 논의된 바 없다는 것이다. ②와 ③은 검토 대상에 있지만 ①은 전혀 아니라는 설명이다.
만약 ①을 통해 은행 평균 DSR 기준을 낮추면, 실제 누구의 대출한도를 줄일지는 은행 재량에 맡겨진다. 코로나 사태로 피해를 보는 소상공인 등에 대한 대출은 줄이고 부동산 ‘영끌’에 쓰려는 대출은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신용대출 규제 강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주택 구입과 무관한 이들에게도 적용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했다.
◇수도권 대부분 집 살 때 대출 줄 수도…“당장은 아냐”
그러면 DSR 강화를 통한 대출 규제는 △차주 단위 DSR 규제가 적용되는 지역을 넓히거나 △주택 가격의 기준을 낮추는 방안으로 좁혀진다.
지금까지는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에 있는 집을 살 때만 DSR 규제가 차주 단위로 적용됐다. 그러나 앞으로는 조정대상지역에 있는 주택도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수도권 대부분 지역은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여 있다. 주택 가격의 기준도 낮아질 수 있다. 현재는 시가 9억원 초과 아파트에만 차주 단위 DSR 규제가 적용된다. 그러나 앞으로는 6억원 정도로 이 기준이 낮아질 수 있다. 현재 서울 아파트 가운데 75~80% 정도가 시가 6억원보다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부는 “가계부채 관리대책을 당장 내놓을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 최근 들어 가계부채 증가세가 다소 진정됐기 때문이다. 5대 시중은행인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22일 현재 가계대출 잔액은 654조4936억원으로 9월 말 대비 4조6027억원 늘었다. 이 같은 증가 폭은 9월(6조5757억원) 대비 30%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던 8월(8조4098억원)과 비교하면 45% 정도 적다.
금융위 관계자는 “가계부채 증가세를 신중히 모니터링하면서 추가 대책이 필요한지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